본 게시글은 규문 선생님들께서 그리는 청년들의 작업에 대해 자유롭게 해석하고, 비평하고, 질문하는 장으로서, 9월 한 달간 공개될 예정입니다. 그림이 주는 인상, 자의적인 해석, 방향에 대한 질문 등… 어떤 내용이든 좋습니다! 댓글로 300자 내외의 토막 리뷰를 달아주세요. 그리는 청년들은 바깥을 만나는 방법이 되고, 규문 선생님들께서는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1. 소개
이승욱(@su_head)은 경희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있다. 그림은 당시의 감정을 담은 일기와도 같다 여기며 휴대가 용이한 펜과 종이를 사용하여 일기와도 같은 그림을 그린다. 군대에 있던 지난 1년간 블로그에 100여 개의 글을 올렸는데, 솔직하고 과감한 문체로 자기와 타자의 이중성, 죄와 죄책감의 문제를 회의하곤 했다. 별 의미 없는 말과 선들도 모아 놓고 보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손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가운데에서부터 시작하여 화폭 전반을 선으로 가득 채우는 방식을 선호한다. 승욱의 그림에는 드러내기 원치 않는 것들을 들추는 모호한 선들이 신체의 안에서, 혹은 안과 바깥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엉켜있다.
2. 전시 작품
위치 소개: 형亨-규문홀, 이利-규문각, 정貞-규문각 안쪽
머릿속, 2023, 도화지에 볼펜, 14.8×21cm. 위치: 형亨
끝없이 끝을 기다리며, 2022, 도화지에 볼펜, 21x29.7cm. 위치: 형亨
작별, 2021, 도화지에 볼펜, 39.7×29.5cm. 위치: 이利
잠 못 이루는 밤, 2022, 도화지에 볼펜, 25.7×18cm. 위치: 이利
생, 2021, 도화지에 볼펜, 39.7×29.5cm. 위치: 이利
이해, 2022, 도화지에 볼펜, 39.7×29.5cm. 위치: 정貞
본능, 2021, 도화지에 볼펜, 39.7×29.5cm. 위치: 정貞
(1부 전시 전경)
3. 인터뷰 및 포트폴리오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U56VK4XmUpWZru8h7PnFn5BXA9IEzfLy?usp=drive_link
도화지와 모나미 볼펜으로 만들어낸 세계가 흥미롭다. 볼펜의 가느다란 선이 모여 면을 이루고 이들의 운동은 마치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잡음, 소리들, 이미지로 떠오르지 않는 흐릿한 무언가로서, 끊임없이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것들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듯하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불면증, 생기, 고통 등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무의미한 볼펜의 날갯짓이 유의미한 세계를 구현했다.
‘냉혈한 그림 일기’ 시리즈에서 펜이 면을 만들어 가고 그것이 입체를 형성해 나가는 방식의 드로잉이 흥미롭다. <표상>, <끝없이 끝을 기다리며> 제목의 작품들은 굉장히 명상적이다. 특히 <표상>의 작품들은 외부에서 내부로 내부에서 외부로 이어지며 마치 실을 잣듯 엮어져 형성되어 가는 중인 신체 표현이, 제목이 말하는 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표상’으로 구성되어 가는 과정과 오버랩된다. 김신영 작가가 붓펜의 장인이듯, 이승욱 작가는 모나미펜의 가히 장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가장 심플하고 소박한 재료의 무한한 창의적 사용을 보여준다. 경이롭다.
크지 않은 시간차지만 순서대로 보는 맛이 있다. 살을 덮던 여백을 벗겨내는 과정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흰색. 그것을 벗겨내면 덩굴도, 연기도, 내장도 아닌 어떤 형상들이 쏟아져 나온다.
행동하는 자기를 의식하면 무엇이든 수월하지 못하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본능을 좇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비밀을 간직하는 것도, 심지어는 살아가는 것조차도. 주체가 머릿속에서 겨우 잊혀야 일말의 즐거움을 느끼던 경험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부끄러워져 버리거나 '왜?'라는 질문이 꼬투리를 잡고 넘어지기 마련이다.
일기를 쓸 땐, 괜히 남들이 자기 글을 읽는 상상을 하다가 비밀을 털어내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게 응어리진 마음, 비밀을 말하고 싶어 근질거리게 만드는 그 실지렁이같은 아이러니를 형상화한다면 승욱의 선이 아닐까. 내내 꿈틀거리는 것이 배회와 증식을 거듭하며 금방이라도 그림 바깥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다.
뒤로 갈수록 그림은 여백이 없어지고 그나마 남아있던 흰 색의 살점 또한 벗겨냄으로써 감상자가 그림 안에 머물 공간은 점차 줄어든다. 화폭이 자기 표현으로 가득 찬 순간에는 감상자가 그림에 얼마동안 머무는지가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그림의 크기는 작을지라도 그것은 강하게 자기의 영역을 지키고, 심지어는 자기를 외치는 중으로도 보인다.
이승욱의 볼펜똥
<이해, 2022, 도화지에 볼펜, 39.7×29.5cm.><머릿속, 2023, 도화지에 볼펜, 14.8×21cm.>
작가의 볼펜똥에서 묻어나는 향취였을까. 세미나 공간에 오래 걸려있었을 것 같은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그림이 내 눈길을 자꾸 끌어당기는 것이다. 작가의 <이해>는 그 자체로 내게 들어왔다. 내가 그 작품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그림이 나를 주목했달까. 작가는 블로그에서 “사실 잘 모르겠다. 이해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림은 나한테 이해를 해달라는 듯 나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떻게 형상화될까? 머리통을 어딘가 막 디밀어넣는 듯한 이 그림은 볼수록 이상하다. <머릿속>에서 저 형상은 부처의 형상인가. 이런 부처의 형상을 처음 본다. 번뇌덩어리 부처.
화폭의 가운데에서부터 그리기 시작할 때 매번 다른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이 흥미롭다. 점과 선, 면이 만나는 다양한 조합이 작가의 당시 생각과 의도와 호흡과 세상과의 마주침에서 다른 형상으로 태어나는 것이. 문득 체크나 오목두기를 할때 매번 놓는 자리에 말을 습관적으로 놓기에 그림도 내게는 그러할 것 같기에 작가의 시도가 더 새롭다.
우선 도화지와 볼펜이라는 가장 보통의 소재로 일관한 작가의 뚝심이 대단하다. 그림의 첫 인상은 ’넬‘이라는 밴드의 앨범 표지와 닮았다는 것인데, 고독과 불안, 그 너머의 세계와 소통하고자 했던 그들의 음악이 환기하는 감흥과 비슷해서였을까. 소묘와 채색이 동시에 진행되는 터치는 주로 원을 그리며 이어지는데, 그것이 몽글몽글 피어나 어디론가 향하는 기분을 환기한다. 그 ’향함‘의 방향이 소멸일까, 승천일까. 작품안에서 형성되는 시선은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걸까
전체적으로 펜을 이용하여 선으로 명암과 형태를 구성하여 화면구성에서 강한 운동성이 느껴져 흥미롭다. 반면에 화면을 가득차게 하는 <머릿속> <끝없이 끝을기다리며> 수많은 선들이 조금은 플러스 한 느낌이든다. 그리고 이런 것은 닫힌 느낌을 전달한다. 조금은 덜어내는 것으로 형태의 단순한 운동을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간단한 도구인 볼펜으로 그린 작품이 특이합니다. 그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은 삶, 죽음,의례,잠(?)입니다. 간단한 재료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음에 놀랐습니다. 청년의 미래 가능성과 예술의 다양성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배경을 빽빽한 검정칠로, 형상을 칠하지 않은 흰색으로 표현하는 게 형상과 비형상의 경계를 사유하게 하고 공간은 물질에 선행하지 않는 다는 원리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넣었다면 생각해 볼 수 없는 지점이었습니다. 배경이 검정인 세상은 밤인데, 그렇다고 우리의 현실속의 밤은 검지 않죠.. 늘 빛을 끌어들이니까요.. 점하나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어둠은 경험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빛이 곧 형상이 되는 세계, 어둠이 빽빽한 밀도를 드러내는 세계.. 그속을 스치는 무수한 선들은 힘의 흐름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