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민중)이라는 단어와 이미지에 모두가 속고 있다.’ 지난 학기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를 노동자, 민중,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범주라는 하나의 범위로 퉁칠 수 없다는 언뜻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하지 않은 명제를 어렴풋하게 들여다 보았습니다. 19세기 혁명의 시대에 하나하나 개인의 역사와 꿈과 고난을 일일이 나열하고 설명하는 랑시에르의 난해하면서도 뭔가 진한 글을 다 읽고 난 후 어떤 텍스트로 이어질지 궁금했습니다. 이번 학기 새로운 텍스트인 <민중들의 이미지>를 펼쳐보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주제임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프.밤 이후의 공통 텍스트는 이제 무난할 거라는 채운쌤의 말씀을 철떡같이 믿은 게 잘못이라며 머리를 다시 쥐어짜내며 1장을 읽고 만났습니다. 짧고 귀한 방학 이후에 만난지라 다들 반갑기도 하고 새로운 멤버로 짜여진 조원들과 나름 신선한 분위기로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한 글을 공유하였습니다. 조원들의 글 위주로 논의할 주제를 몇개 정하고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의제 :
- ‘민중’이라는 개념의 의미, 뜻은 무엇인가?
- 왜 ‘민중'에 주목해야 하는가?
- ‘민중'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방법은?
-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
- 이미지가 정치적으로 나타나는 방법
- 디디-위베르만의 작업 세계와 예술 작품의 역할, 필요성
우리의 이야기는 경희쌤의 ‘민중들’이라는 복수명사의 복수형인 단어의 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무리 집단임을 명시하는 민중이라는 단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복수 접미사를 붙인 ‘민중들’, ‘인간들’이라고 칭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민중은 개인들의 집합명사이기 때문에 그 뜻은 하나하나의 유일함, 유일성이 탈각되고 단일한 이미지로 느껴지기 때문에 고정된 상이 만들어집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민중의 상은 굳어집니다. 우리에게는 8,90년대에나 어울리는 왠지 억압되어 저항적인 하나의 무리로서 금방 거리로 튀어나올 것 같은 구시대적인 존재의 이미지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젠 퇴색된 낱말과 이미지로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그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정되어버린 민중의 이미지는 개별성을 갖는 구체적 민중을 충분히 대변(재현)하지 못한 채 서서히 사라져갑니다.‘민중들’이라는 단어는 민중이라는 하나의 단수로 통합되지 않는 각각의 개체성을 말하는 복수의 의미를 부각한 듯합니다. 디디-위베르만은 민중들의 이미지가 사라질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케케묵은 민중의 이미지를 다시금 새롭게 드러내야 한다는 예술의 필요성과 역할을 역설적으로 피력하기 위해 강조하는 모순의 메세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민쌤은 이 부분에서 불가능한 것에서 시작하는 말하기(발언의 권리를 인정하기)와 사라짐 그 자체에서 건진 인간의 유사성(시선의 권리를 인정하기)라는 방식을 발췌하여 디디-위베르만의 작업세계에 대해 서술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민중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신 분은 정우쌤이셨습니다. 정우쌤은 책 1장을 두번을 읽으시면서도 답을 찾지 못하시다가 옮긴이의 후기를 읽으며 절반의 답을 찾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절반의 답은 ‘민중들에 대한 시대착오적 사유가 지금 우리시대에 여전히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연악한 반딧불과 같은 민중들의 잔존을 드러내는 실천이 얼마나 소중하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일인지, 또한 세상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이 책은 독자에게 이와 같은 조용히 빛나고 있는 작업과 작품을 더 많이 발견하고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갖게 한다’고 책 후반부를 발췌하셨습니다. 이와 더불어 채운쌤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왜 민중에 귀기울여 하는지를 생각해 볼 때 ‘민중은 익명의 존재들'이라는 정의를 제시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시선을 갖지 못하며 자기 몫을 가지지 못한자를 말합니다. 이런 존재들의 발언과 시선은 국가 치안의 영역에서는 발현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영역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민중들이 정치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품으신 승연쌤이 글의 주제로 삼아 써오셨습니다. 조원들은 정치는 특정한 영역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정치적인 것이며 인간과 인간사이의 모든 것이라는 의견을 주었고 바쟁의 ‘선택'이라는 모든 행위가 정치적인 것이며 인간의 의식으로 기반한 모든 관계성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채운쌤의 정치라는 정의는 기존의 생각, 집단, 실천의 경계를 강화하는 치안적 담론이 아니며 기존의 경계를 계속 교란시키고 혼란스럽게 하여 해체시키면서 세상을 해석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때 정치는 늘 현시되는 것의 편에 있으며 존재와 외양(현상)은 하나이며 외양만큼 정치적인 것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때 외양은 늘 마주침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민중들의 얼굴은 추상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얼굴,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는 하나하나의 존재입니다. 영웅이나 위인들은 자기 얼굴을 갖고 있지만 민중들은 얼굴을 갖고 있지 않아 자기의 시선을 갖지 못합니다. 수빈쌤은 이 구체적이면서 하나의 형상으로 드러나는 민중들을 기록하고 재현하며 새롭게 드러나게 하는 작업은 초상권이라는 개인의 이미지의 권리가 재현되는 대상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서술하였습니다. 이때 사라져 가는 초라하고 무방비한 상태에 놓인 민중들의 이미지의 존엄성을 어떻게 나타나야 할지 고민해야 하고 ‘존엄'의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논하고 민중들의 구체적인 얼굴을 ‘대면할 수 있는 힘’을 강조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민쌤은 한나 아렌트가 언급한 민중들의 얼굴, 다양성, 차이, 간극이라는 네 개의 패러다임을 통해 정치적으로 나타나기를 이해해야 한다고 서술하시며 인간들 사이의 공간, 차이의 공간에 대해 주목하셨습니다. 정치적으로 나타나기는 차이의 나타남을 말하는 것이며 정치적 공간을 그것들의 사이의 차이를 맞붙이는 간극들의 망으로 생각하는 것이라 하여 정치적 행위는 민중들의 얼굴을, 다양함을, 상이함을 오고가는 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때론 민중들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단일한 구조속에 단일한 이미지로 밀어넣는 미디어의 힘에 가담하기도 한다는 의견도 주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모든 것을 무릎쓰고 민중들을 노출시켜 구체적 피와 살을 가지고 있는 그러나 목소리를 갖지 못한 그들의 삶에서 불쾌한 것을 보려고 하고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민중들은 어쩌면 불편한 누군가의 초상이 바로 나임을, 그러한 공통 인류의 유사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때 하나하나의 민중들의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고 서서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와~~ 3조 토론내용을 깨알같이 잘 정리해주셔서 제가 마치 3조 토론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1조에서도 무엇이 민중이고 민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민중은 왜 사라질 위험에 처하는지 등 민중에 관한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이와 함께 한나 아렌트의 얼굴, 다양성, 차이, 간극 등 4개의 패러다임을 통해 민중들의 나타남, 정치적으로 나타나기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지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민중들을 구체적으로 접하며 나타낸 바쟁의 작업도 인상적이었네요. 휵샘이 얘기한 것처럼 디디-위베르만의 <민중들의 이미지>도 프밤처럼 쉽지 않은 텍스트인 걸로 판명!!! 그렇기에 조에서 풍성한 토론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디디님의 글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지, 우리는 또 어떻게 헤매면서 길을 만들어갈지 무척 기대됩니다. 질문과 샘들의 의견을 세심하게, 명쾌하게 잘 정리한 후기 넘넘 감사해요. 👍😊
제현
2024-05-08 21:35
쌤들의 말씀을 잘 보이게 정리해주신 후기 넘 잘 읽었습니다! 하나의 단수로 통합되지 않는 민중들, 목소리들이 고유한 대상을 보여주는게 아니라면 그 줍고 모아진 것이 무엇에 대해 떠올려볼 수 있게 만들지 생각하게 되네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그 이미지는 모두가 만들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난희
2024-05-08 23:39
대중지성, 품앗이 공부의 힘은 위대하다는 게 이 후기를 읽은 저의 소회입니다. 분명 얽히고 설켰을 토론과 디디씨의 모호한 문장과 그럼에도 비할 데 없는 (아니요, 우리는 프밤을 헤매느라 긴 밤을 지샜지요) 열기 충만을 이렇게나 훌륭하게 버무리시다니!! 휵샘의 펀치, 휵!!!
수빈
2024-05-09 10:00
디디씨의 수많은 인용과 압축적인 명문들로 실제보다 훨씬 두터운 텍스트처럼 느껴진 <민중들의 이미지>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두터운 텍스트를 함께 해석하고 나아가 민중과 이미지에 대한 각자의생각을 나누는 풍부함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새로운 멤버들과 첫 세미나에서 이야기가 방만해지지 않도록 진행해주시고, 또 다양한 이야기들을 갈무리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2학기가 더욱 기대됩니다!!
우와~~ 3조 토론내용을 깨알같이 잘 정리해주셔서 제가 마치 3조 토론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1조에서도 무엇이 민중이고 민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민중은 왜 사라질 위험에 처하는지 등 민중에 관한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이와 함께 한나 아렌트의 얼굴, 다양성, 차이, 간극 등 4개의 패러다임을 통해 민중들의 나타남, 정치적으로 나타나기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지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민중들을 구체적으로 접하며 나타낸 바쟁의 작업도 인상적이었네요. 휵샘이 얘기한 것처럼 디디-위베르만의 <민중들의 이미지>도 프밤처럼 쉽지 않은 텍스트인 걸로 판명!!! 그렇기에 조에서 풍성한 토론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디디님의 글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지, 우리는 또 어떻게 헤매면서 길을 만들어갈지 무척 기대됩니다. 질문과 샘들의 의견을 세심하게, 명쾌하게 잘 정리한 후기 넘넘 감사해요. 👍😊
쌤들의 말씀을 잘 보이게 정리해주신 후기 넘 잘 읽었습니다! 하나의 단수로 통합되지 않는 민중들, 목소리들이 고유한 대상을 보여주는게 아니라면 그 줍고 모아진 것이 무엇에 대해 떠올려볼 수 있게 만들지 생각하게 되네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그 이미지는 모두가 만들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대중지성, 품앗이 공부의 힘은 위대하다는 게 이 후기를 읽은 저의 소회입니다. 분명 얽히고 설켰을 토론과 디디씨의 모호한 문장과 그럼에도 비할 데 없는 (아니요, 우리는 프밤을 헤매느라 긴 밤을 지샜지요) 열기 충만을 이렇게나 훌륭하게 버무리시다니!! 휵샘의 펀치, 휵!!!
디디씨의 수많은 인용과 압축적인 명문들로 실제보다 훨씬 두터운 텍스트처럼 느껴진 <민중들의 이미지>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두터운 텍스트를 함께 해석하고 나아가 민중과 이미지에 대한 각자의생각을 나누는 풍부함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새로운 멤버들과 첫 세미나에서 이야기가 방만해지지 않도록 진행해주시고, 또 다양한 이야기들을 갈무리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2학기가 더욱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