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7주차)는 루시 리파드 『오버레이』 3장 시간의 형태(땅과 하늘, 단어와 숫자), 4장 되풀이하여(지도와 장소와 여행)을 읽었어요. 여기서 루시 리파드는 70년대 미니멀리스트, 개념미술가들이 대지미술에서 여러 방식으로 행한 예술 행위들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선사시대 거석유적이나 환상열석도 넓은 언덕에 있는 것처럼, 이들의 예술도 거대한 땅이나 하늘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지요. 이들이 행한 예술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수 있을까요?
○ 우리조 샘들은 대지미술에 대한 놀라움, 색다름을 장소(길, 걷기)에서 느낀다고 했어요!
월터 드 마리아는 캔자스 도시 공원의 모든 보도를 주황색 천으로 덮어, 걷기를 시각적 기억으로 바꾸었고, 리처드 디마르코는 정신과 시공을 연결하는 12,000킬로미터의 ‘에딘버러 미술여행’을 기획하였죠. 걷기가 예술로 이어진 것이죠. 길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스티븐 롱은 길을 직선으로 형상화하였는데요. 우리는 구불구불하고 휘어진 길을 원시적인 것. 직선을 현대적인 것으로 여기는데요. 고대 페루에서는 직선이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고 하네요. 페루, 칠레, 볼리비아의 안데스 산맥은 곧고 규모가 거대한 선들이 발견되었는데요. 17세기 쿠스코의 코보 신부는 우아카(터의 기운)가 있다고 했죠. <어핑턴의 백마>는 영국 퍼크셔, 후기 철기시대 언덕위에 새겨진 길이 111미터 형상인데요, 언덕의 백마 형상들이 지하수의 패턴을 따라 그려졌다고 하네요. 놀랍지 않나요. <반미로> 나스카 평원은 기원전400-9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비행기를 통해 볼때에야 미로라는 그 형상이 드러나죠. 미궁 “중심이 기본적인 방향 전환을 요구할 정도로 너무나 근본적인 지각에 필요한 장소와 기회를 의미한다. 미궁에서 빠져나오려면 돌아서야 한다. (…) 180도의 방향전환은 과거와 분리될수 있는 가장 훌륭한 가능성을 시사” 하는 것이며, 중심을 향하는 율동적인 길이라고 하는데요. 현대미술은 그 미궁을 미로로 변형시켰다 할수 있는데요. 미로는 “얽힌 길, 막다른 골목, 다양한 정도의 혼란”한 길이죠. 많은 작가들이 미로(헬게이트, 숲, 잔디, 철사로 엮은, 번개무늬, 곰 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의 여러 현상을 미로로 표현한 것 아닐까요.
○ 다음은 예술은 어떤 것인가?인데요, 이런 질문엔 이미 ‘예술이 ~다’라고 전제하고 있지요.
우리는 태풍이 지나가 파괴된 자리에 돌을 쌓기만 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보러오는 장소가 된 것이나, 시골우체부가 돌을 쌓아 만든 <슈발의 이상적인 궁전>처럼. 사람들이 어떤 행위가 예술이 되기도 하는거 아닌가? 라는 거였는데요. 하지만 무조건 돌을 갖다 놓는다고 예술이라 할수 있을까요? 현대미술은 60~70년대 시작되었는데요. 지금까지 보존하고 전시하는 개념을 깨기 시작한 것인데요. 예술이 뭐야? 예술은 예술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요.(영화는 영화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듯) 다시 말해 예술의 존재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예술가가 만드는 것이니 작품은 예술가의 것일까요? 예술가 이전에 돌이나 안료와 물질이 있죠. 이처럼 개념, 상품, 제도, 관념을 모두 의심하는 것으로, 최대한 미니멀하게, 물성이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죠. 누구도 팔수 없고 전시할 수 없는 것, 컨셉만 있는 것이죠. 루시 리파드도 이런 관점에서 예술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예술의 규정성을 벗어나는 질문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술은 ‘~다’가 아니라, 예술이 뭘할 수 있을까? 이그림이 누구에게 말을 건넬수 있을까? 그리고 대중은 자신의 질문 속에서 의미를 생산하게 되죠.
○ 마지막으로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지금 우리에게 시간은 마샬 맥루한은 “파편화”된 시간이라고 하는데요. 즉 “모든 시대가 우리와 동시대인 듯 느끼게 만들어,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감각을 갖지 못하게”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시간은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것과 밀접하죠. 시간의 공간, 공간의 시간이 만나는 순간이 동시성, 찰나와도 같은데요. 이런 동시성을 우리가 체험할수 있는 것이 걷기와 같은 운동이 아닐까라는 거였는데요. 왜냐하면 걷기는 끊임없는 움직임에 대한 일시성, 영원성, 긴장이 함께 한다는 것이죠. 이래도 동시성에 대한 감이 멀게 느껴지는데요. 시간에 대한 기존의 관념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1시간, 1시간이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일까요? A,B가 느끼는 시간이 같다고 할수 없다는 것이죠. 베르그손이 설탕물이 녹는 시간은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인데요. 거기에는 설탕의시간, 컵의 시간, 물의 시간, 나의 시간, 그 모든 것이 공존하는 시간이라는 것이죠. 단일한 시간으로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과 공존하는 시간이라는 것이죠. 가령 걷기를 한다면, 나의시간, 땅의 시간, 숲의 시간, 공기의 시간 그 모든 것이 공존하는 시간인 것이죠. 나 만의 시간으로 내 신체가 무엇을 경험한다는 것이 아닌 것이죠. 숲과 땅과 공기와 빛과 모든 것이 상호작용 속에 서로가 변용되는 것으로 시간이죠. 그럴 때 시간(생성)인 것이죠. 그러니 무엇을 하든 우리는 서로에게 녹아드는 과정의 시간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생성이나 변화없이 무관하게 시간 자체가 있는 게 아니랍니다!!
○ 시간과 공간을 사유하기란 정말 어려운데요. 공간이란, 어떤 사물이 놓이는 순간 공간이 출현하죠. 그러니 시간이 그 공간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 공간속에서 서로가 뒤섞이는 과정, 변용이 일어나는 한에서 시간이라는 것!
시간과 공간의 문제는 풀기 어려운 매듭같지만, 그만큼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조별 토론에서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죠. ^^ 전 예술가들이 시간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형상화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갔는데, 고대 유물이나 유적의 영향을 받아 숫자나 달력 등을 통해 형상화하거나 과정을 담는다거나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하는데요. 대지미술, 개념미술 등 우리에게는 낯설고, 가끔은 '이게 예술이야?'(이건 예술에 대한 강한 전제가 이미 있다는 것)라는 질문을 유발하지만,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하여 글을 통해 새로운 길로 나아가보아요.^^ 빠르면서도 핵심적이고 깊이 있는 후기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주 토론에서 성지쌤의 오버레이 간증체험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ㅎㅎㅎ 책을 읽고 현대예술에 대해 깨달은 것들을 어찌나 신나게 말씀하시던지 이래서 크크랩을 하는 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냥 무심코 보았던 것들이 여기의 배움으로 다시 과거의 이미지가 새롭게 해석되며 느낄 수 있다는게 동시적이라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지난년도 종합에세이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시 떠올리며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의 규정성을 벗어나는 질문들이 무엇인지 (들뢰즈의 'Resistance' 관련 발언에서 예술은 만들어지고 저항하고 만들어지고 저항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오버레이의 공부를 통해 우리가 보는 이 시대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다각도로 넓혀 나가보고 싶습니다. 1조 여고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수니쌤 최고!!
결석을 한스럽게 만드는 후기네요. ㅎㅎ. 거대한 하늘과 땅에 설치되는 예술이라, 우리를 우주의 일부분으로서 바라보고 만물에 조응하는 활동으로 행위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거군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통쾌함이 느껴졌습니다. 혼자 책을 읽은 후 느낌만 남고 사라졌던 말들이 조별 세미나를 거쳐 나온 이야기들을 보니 다시 살아나네요. 걷기와,미궁, 시간과 공간 등.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저의 감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수니샘이 이야기하시는 출현하는 것으로서 시공간이라는 차원은 뭘까 궁금해집니다. 잘 읽고 갑니다.
1조에서는 구체적인 작품으로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오갔네요 ^^ 성지샘의 오버레이 간증이 매우 궁금합니다!! 동시성을 걷기의 체험과 연관해서 나누신 얘기들도 흥미롭네요 ~ 순이샘 후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