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레이>를 끝마치며
<오버레이> 마지막 챕터에서 의식와 집,무덤,그리고 공원을 주제로 이야기 나눴다.
여고반 조에서 토의한 내용과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두 가지 틀에서 정리해보았다.
1. Ritual(의식, 의례)
첫째, 의식을 대하는 색다른 인식
나는 의식 행위라 하면 축원(희망하는 바를 기원하는)을 떠올렸다. 기우제하면 비올때까지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했고, 과학에 기반한 기상예측이 가능하지만 자치단체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곤 한다. 그런데 마오리족은 "첫번째 것을 내줄 수 없으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며 첫번째 것을 땅에 묻어 내어주는데, 여기에는 "주고받는다"는 개념이 담겨있었다. 원하는 걸 달라고만 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지점이다.
둘째, 의례는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써 제도화 되었다고 이야기 나누었다.
즉 의례행사가 당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형식이라는 점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점차 의식/의례가 해체되고 있는가?하는 질문도 나왔다. 왜냐하면 허례허식이라 생각해 점점 편리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문상을 가도 일가친척이 다 모이는게 아니라 직계가족과 상조업체가 일처리를 해주니 가족의 집단적 행사로써의 기능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지역축제도 집단적 경험을 가능케해주던 것에서 지역 경제를 살리는 목적의 소비의 장으로써 기능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달집태우기를 하면 예전엔 마을 주민들이 모여 새끼를 꼬고 놀면서 함께 행사를 준비했지만 요새는 자치단체에서 주도하고 마을 대표가 의무적으로 참여하여 행사를 이끌어가고 있기 모양새다.
2, 미술관에 대한 3가지 비유
첫째, 미술관과 백화점의 경계 해체
요사이 백화점이 물건을 파는 데서 더 나아가 문화 예술의 장을 제공하여 미술관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 예가 많지만 현재 현대(백화점)에서 <라울 뒤피전>을 하고있다.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미술 작품을 쇼핑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예술에 관심 없는 대중도 백화점에는 가니까 왔다가 전시 관람을 할 수 있게끔 하여 미술에 대한 접근 문턱을 낮춰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런 전시가 백화점의 직접적 수익창출보다 길게 보고 이미지 세탁(?)에 이용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둘째, 미술관과 몸에 대한 비유
수업 중에 채운샘이 질문하셨듯 미술품이 감상자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는 경우는 잘 없다. 내 경험 속에도 인생을 바꾼 책, 큰 울림을 준 음악은 있어도 인생에 영향을 준 그림?은 아직 없다. 한때는 예술은 배부른 예술가가 하는 거고 일반인은 생업에 바빠 예술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고 치부되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책에서 "우리 몸이 미술관이다"는 부분을 짚어내신 분이 있었다. 특히 개간예술을 보면 농사짓는 행동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농사는 인간이 필요해서 한 행동이지만 씨 뿌리고 키우고 수확까지의 과정이 수행(Performance)로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포도 농사를 지으시면서 "힘이 들어도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고 같은 종의 나무라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에 예술가나 다름없다."하고 말씀하셨던 게 떠오른다. 이 책의 초반에 언급했던,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던 시대의 예술"과 개간예술이 가장 일치하는 것 같다. 예술의 결과물인 농산품을 우리가 섭취하면 미술 작품을 품고 있는 미술관처럼 우리 몸도 미술관이 되는 것이다.
셋째, 미술관과 무덤(묘지)
책에서 "미술관과 공원은 지상의 묘지이다"(314)고 한 부분에 생각이 머물렀다. 미술관은 수장고에 소장품을 보관한다.(대게 지하에 수장고가 있다.) 그리고 미술 작품이 작가가 남긴 유품으로 본다면 미술관은 미술의 묘지인셈이다. 두번째 논의와도 이어지는 데, 미술관이라 하면 고급지고 예술을 꽤나 아는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현대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관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묘지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줄면서 웃음이 난다.
<한국실험미술1960-1970>전시에서 알게 된 한국의 실험미술가 김구림이 1970년에 열린 제1회<한국미술대상전>에서 <현상에서흔적으로>라는 작품을 선보인 게 떠올랐다. 당시 전시장소였던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건물을 흰 광목천으로 감싸는 작업을 했다. 기성 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관을 마치 시신을 염하듯이 천으로 묶고, 그 천을 다시 관을 묻듯이 매장하는 작업이었다. 한국에도 70년에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예술가가 있다니 신기하다. 크크랩 첫시간에 채운샘이 "예술가는 당대의 중심에서 벗어나 금기시 하는 선, 한계까지 접근한 자들"이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일금900만원'이라는 작품값도 함께 매겨 놓았고, 설치 26시간 만에 철거되었다. 그 이유는 초상집 같아 보인다라나. ㅎ
<오버레이>를 같이 읽고 얘기를 나눈 3주 동안 예술에 대한 지평을 넓힌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결과물이 있는 미술의 특성상 상품화가 쉽고, 실험적인 것일지라도 금방 자본에 포획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를 넘어가고 저항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에 다루었던 의식을 비롯하여 이런것도 예술이 가능할까 싶은 농장예술, 개간예술 등을 통해 예술은 예술의 한계를 넘어가고 그 동안 분리되었던 것들과 접속하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미애샘이 소개한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에 전시된 김구림 선생님 등 한국 실험미술가들이 펼친 다양한 퍼포먼스와 작품보면서 서슬퍼런 시대에도 예술의 실험이 시도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산만하게 떠든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후기 감사해요.😊
여고반에서 텍스트의 구체적인 지점들을 짚어가며 흥미로운 얘기들을 많이 나누셨네요 ^^ 저도 미애샘처럼 의식을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만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고 느꼈어요 ㅎㅎ 의식의 간절함이는 가장 소중한 걸 기꺼이 내줄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또 배우게 되네요. 미애샘 덕에 전시 소식을 발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해요 😊 명료하고 깔끔한 후기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