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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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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를 사는 것
이번주는 2학기 에세이 발표를 위해 에세이 개요를 가지고 만났습니다. 2학기동안 배운 4명의 철학자들의 사유개념을 가지고 6명의 화가 작품을 분석해 보는 작업인데요. 조원들의 개념을 선택하게 된 사연을 나누는 시간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우선 저는 ‘청개구리 마인드’로 아무도 안할것 같은 개념을 선택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벤야민을 택했는데요. (역시 저만의 생각이었는지 다른 조에서 무려 2분이나 더 벤야민을 택하셨죠) 부수적으로는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나오는 내용들(대중,아우라,예술의 기능변화,예술의 정치화등등)이 흥미롭게 다가온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타유’를 선택하신 경희샘은 2학기 첫번째로 다룬 개념이었기에 초반에 가장 집중해서 책을 볼 수 있어 택하셨다고 합니다. 미애샘은 ‘푸코’ 상사개념으로 원본과 이미지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서로의 연결고리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림중에 마네의 <아스파라거스>를 가져왔는데, 이게 생선인지(저와 수니쌤은 그렇게 보였답니다) 아스파라거스인지 불명확한 이 이미지와 그림의 제목사이에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지 함께 얘기나눠보았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다수의 선택을 받은 것은 ‘메를로-퐁티’의 개념이었습니다. 두 반장님들 모두 ‘메를로-퐁티’를 택해서 역시 반장님들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구나 하는 좀 유치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수니쌤도 메를로-퐁티를 선택하셨는데 낯설게 지각하는 방식과 본다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근원적 물음으로 시작하셨고 혜령쌤은 어느날 문득, 내가 듣던 같은 음악이 어떤 날에는 마음에 와닿게 들리고 어떤 날에는 그닥 큰 감흥없이 들리는지 이 알 수 없는 현상을 메를로-퐁티의 ‘현상학과 예술’이라는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책의 간증체험을 공유해주셨습니다. 산푸른샘은 세계의 객관과 주관의 분리에 의문을 품고 둘은 나뉠 수 없으며 감각하는 몸과 대상과의 관계맺기에 주목하셨는데 쉽게 안풀리진 않는다며 고충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우리 성지쌤은 메를로-퐁티로 집에서 글을 썼는데, 규문와서 바타유로 급선회를 하시는 신기를 보여주셨습니다. 하하하~~
어떻게 해야 개념을 올라타서 작품에 작동시키는 걸까요? 여러 팁들을 주셨지만 결국은 우리가 부딪혀야 하는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안되는 걸 해보는 게 바로 실험이자 미션이지요. 되는 걸 하는건 그저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예술은 불편한 자기와의 지난한 싸움을 벌이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에게는 마네가 어떻게 그렸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며 우리가 가진 무기가 없으니 철학자의 개념을 빌려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보려고 하는 우리의 몸짓이자 동일성을 해체하려는 투쟁이라고 합니다. 에세이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매학기를 마무리하는 행위로서 으레 글을 써야하는 관례처럼 당위의 문제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매주마다 겪는 숙제의 고비를 겨우 넘기고 매주마다 쏟아지는 개념을 습득하고 9주가 쌓이면 그것을 종합적으로 엮어서 3장의 글을 내면 그전의 나와 작은 차이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배운 개념들과 (저의) 안되는 머리로 싸움을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글을 쓰는게 괴롭습니다.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작업입니다. 붕붕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 뭉치들을 가져다가 조리있게 잘 정리한다는게 여간 쉽지 않고 그런 글을 사람들과 함께 읽고 내어보인다는게 마치 맨몸을 보여주는 것처럼 창피하기도 합니다. 이 불편함이 늘 저와 부딪히는 걸 느끼고 한계가 뚜렷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피함과 지난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을 일단 선택했기 때문에 매번 가지마~~ 하지마~~ 유혹의 목소리들과 싸우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미나에 오곤 합니다. (지난년도와 비교하면 비교적 잘 싸워서 이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단 오면 나만 괴로웠던게 아니구나 하면서 위안을 얻네요.
이번학기 마지막 화가인 모네는 그의 작품 <해돋이>1878년작 를 발표했을 당시에 이게 무슨 그림이야 인상이지 라는 혹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그림의 부제는 <인상주의>라고 하기도 합니다. Impression이라는 말은 이런 그림을 폄하하여 붙인 이름인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근현대 미술에서 인상주의라는 사조가 핵심으로 여겨지며 감각이 진리의 기준이 되어버린 시대가 되었습니다. 감각을 사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세계의 거대한 틀을 짚어나가는 작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는 한마디로 내가 보는게 진리이다 라는 의미로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이제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자기의 감관을 자부하며 모네는 같은 사물을 하루 중 해의 움직임에 따라 또는 날씨에 따라 보이는 대로 여러번을 그리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보는 물체의 달라지는 인상을 그린다는 것은 지금 보이는 존재를 의심하며 그 존재의 근원적 가치를 되묻는 것 같습니다. 이제 더이상 세계가 기존 감각대로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의 조건 자체(자본주의의 역동성, 안료의 변화등)가 바뀌니 예술 자체도 변화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술가라는 존재는 자기가 알고 있는 관념과 늘 부딪히며 근원적 경험을 향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역시 보는 자들도 내가 아는 것들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을 보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감각적 습관의 해체는 예술의 첫번째 관문입니다. 테크닉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어떤 정상성, 중심성의 힘을 뚫고 새로운 경계로 나아가는 몸부림. 습관의 자동 작용에 반해 자신(동일성)을 와해시켜 변화하는 힘을 사는 것이 차이를 사는 것입니다.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우리의 하루하루의 사유와 몸짓들이 차이를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여고반은 메를로-퐁티반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퐁티를 많이 선택했지요.^^ 애매한 명료성을 말씀하신 분 답게 규정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지만, 그런 만큼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 선택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ㅋㅋ 휵샘도 말씀하셨지만, 글을 쓰는 건 참 괴롭고, 가지 말라는 유혹의 목소리가 매번 들려오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휵샘은 금년에 더 강해졌고(유혹의 목소리를 물리침 ㅋ), 공부에 더 재미를 붙이신듯요. 숙제, 출석, 토론, 강의 듣기, 에세이를 꾸준히 해나가는게 쉽지는 않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동일성을 해체하며 차이를 사는 것은 참으로 충만한 것 같습니다. 이런 매력때문에 다들 공부하시는 거겠죠? 에세이 홧팅입니다. 발랄하면서도 깊이있는 후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붕붕떠다니는 생각의 뭉치들에 급 공감! 이말도 맞는것같고 저말도 말도 맞는것 같아, 하나로 꿰지지 않는데요. 이럴땐 생각의 가지들을 쳐내고 다시 생각해보고 반복해야하는데, 그런거에 게으른거 같아요^^
휵샘의 활발한 에너지로 쓴 벤야민으로 에세이 기대할께요. 토욜봐요^^
ㅎㅎㅎ 휵샘께서 여고반 토론을 친절하게 잘 정리해 주셔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 늘 느끼지만 여고반샘들은 배치가 그래서 그런지 구체적인 지점들을 세심하게 논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 쓰는거 나만 힘들게 쓰는거 같은데 오면 다 그렇구나 느끼시는 점에 오백프로 공감합니다 ㅎㅎ 9주전의 나와 아주 작은 차이라도 만들어 낸다면 성공이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 정성껏 써주신 휵샘 후기 덕에 힘 얻고 갑니다 감사해요 👍
청개구리 마인드, 귀한 마음이네요. 다른 사람에 견주어 그런 선택을 하는 것도, 자신의 감각 속에서 익숙한 것과 다른 것을 고르려는 차원에서도. 어찌 됐든 인연이 되어 에세이를 쓰기 위해 공부하게 된 개념들을 마음에 품고 일주일을 보내야겠습니다. 주영샘이 앞서 말한 대로 메를로- 퐁티반의 퐁티와 푸코, 바타유, 그리고 벤쟈민까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