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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레타리아의 밤』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우리에게 삶 속에서 작동하는 분할선과 전제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크크랩에는 직장인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샘들 모두 자신의 직업 및 활동과 관련하여 사유하며 밀도 있게 책과 섞이고 있습니다. 고니를 비롯하여 이 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어떤 보편적인 개념이나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알려주는데요.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기의 삶을 긍정하고 자유를 구성해 나가는 고니와 같은 노동자들의 삶을 보면서 감동도 받고, 어떤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불화와 억압 등 속에서도 어떻게 자유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번 주 4장 <탈출로>에서 고니와 퐁티의 얘기가 흥미로웠고 1조에서는 이들의 얘기를 출발점으로 다양한 의견을 나눴는데요. 밤에 오물을 치워주는 대가로 낮에 시의 하늘로 날아오를 권리를 갖는 퐁티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전복하고 자유를 찾은 것처럼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런 퐁티에 대해 고니는 이런 자유가 최악의 예속이라고 말을 하지요. 이와 관련된 토론 내용을 정리한 후기를 읽으신 채운샘은 둘이 선택한 진실은 다르며, 고니에게는 노동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역사를 담은 책이며, 이 책을 볼 때 서문 11p의 “그들은 무엇을 대표/재현하느냐고 역사가는 묻는다.”라는 랑시에르의 문제의식을 잊지 말라고 하셨지요. 우리에게는 대통령, 학생, 노동자 등 온갖 것에 관한 표상이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수업을 빼먹고 놀러 다니는 학생에게 “학생답지 못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보편적이거나 대표적인 무엇을 상정하는데요. 그런데 어떤 시대 또는 어떤 직업을 대표하고 재현하는 무엇이 있느냐고 랑시에르는 질문합니다. 이와 함께 대표가 없이 역사를 쓸 수 있는가, 즉 역사 주체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역사가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위주로 역사를 구성해왔지요. 우린 그런 역사를 통해 왕은 이래야지, 부르주아와 노동자는 어떤 사람이라는 표상을 공고히 하고요.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고니를 비롯한 다양한 결을 나타내는 노동자들은 그 시대의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기존 역사서에 담기지 않은 셀 수 없는 목소리들이 이 책에서 들립니다. 결국 역사가는 모든 목소리를 다 취합할 수 없기에 누구의 목소리를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되지요. 그리고 이런 책을 읽는 우리에게는 내 현재를 어떤 과거와 더불어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의 밤』의 고니는 어디에도 환원할 수 없는 자입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자신이 하는 마루를 까는 노동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퐁티처럼 시를 쓰기 위해 오물을 처리한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지요. 내가 낮에 하는 일은 비록 고통스럽고 자괴감이 들더라도, 밤에 공부 또는 취미활동 등으로 보내면 충만하고 고귀해졌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이분법이 작동할뿐더러 삶의 많은 부분을 부정적으로 간주하게 되며, 무엇보다도 존재와 역량이 분리됩니다. 고니의 존재 방식, 삶의 긍정성은 니체의 철학을 떠오르게 하는데요. 고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원하며, 그것에 집중합니다. 자신의 존재와 역량이 분리되지 않는데, 우리는 니체가 얘기하는 낙타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변화를 3단계,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설명했지요. 낙타는 역량을 짐으로 여기는데,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가 낙타의 정신입니다. 이럴 때 나는 장애물로 인해 뭘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야만 한다고 느낍니다. 나의 존재를 다른 곳에 두며 존재와 역량을 분리하는데요. 낙타의 정신은 착함, 도덕, 책임감을 높이 평가합니다. 사자 단계에서 역량은 원함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나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퇴사를 꿈꾸면서 회사에 다니는 자를 떠올려보면, 그의 경제적 안정에 대한 욕망이 자유로운 시간에 관한 마음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는 회사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건 낙타의 정신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원해서 한다는 점이 사자의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는 삶을 유희로 받아들이는 것인데요. 삶은 주사위 놀이와 같은데 삶에 목적이 있지 않으며 삶의 의미는 매번 다르게 구성됩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를 주사위 눈의 숫자에 올려놓거나 숫자를 목적으로 하지요. 그러나 어린아이의 정신은 주사위를 던지는 나와 주사위 눈의 숫자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주사위 눈의 숫자와 상관없이 매번 유희로서 주사위 놀이를 합니다.
어떤 외관상의 소유. 노동자가 자기 노동에 대한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불안전을 감내하면서인데, 이러한 소유는 자신의 도구들(인 만큼이나 장인의 도구들)과 생산물 사이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시간과 맺는 관계의 전복에서 우선적으로 생긴다.(『프롤레타리아의 밤』, 116p)
여기서 정의되는 운동은, 동일한 에너지가 적에게 유리하도록 소비되는 원환들과 유사성 안에서, 다른 사회적 실존 양식을 향한 실효적 상승을 실현하는 나선운동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밤』, 121p)
고니의 노동은 숭고하다거나 비참하지도 않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것이 참으로 독특했습니다. 고니에게 노동과 고니가, 시와 고니가 구별되지 않았고요. 고니는 행위 속에서 자기의 진실을 구성했기에 노동과 시의 위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과 시의 선택 문제가 초래될 수 없었지요. 그는 마루를 깔 때 고독을 향유하였고, 노동을 소유했습니다. 고니의 전복은 삶과 행위에서 자신을 소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혁명적인 고니의 모습이 사회제도나 시스템의 변혁에서는 무력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요. 채운샘은 이런 의문이 제도와 개인을 분리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다고 답하셨어요. 여기에서 전체나 구조와는 다른 배치(Agencement)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들뢰즈는 『천개의 고원』에서 배치 개념을 얘기했고 제인 베넷, 해러웨이, 애나 칭 등 후속 학자가 이 개념을 활용하고 발전시킵니다. 배치는 복잡한 보일러 설비 등을 떠올리면 되는데, 연결 및 절단의 체계라고 보시면 되지요. 배치는 전체와 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연결 접속을 통해 바뀝니다. 밸브가 열리거나 고장이 나면 금방 전염되고 이것으로 사회도 변형하네요. 고니처럼 질문하고 생각하는 삶은 타인에게 전염되며 사회 변화를 추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나의 행위가 나를 소외하고 있는지, 내가 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내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노동과 공부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 내 질문의 장으로 삼아야 합니다. 공부의 경우 유토피아처럼 간주하거나, 다른 것과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공부를 외재화하고 있는 것인지 등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네요. 이것이 랑시에르가 얘기하는 “원을 그리며 이러한 재생산에 가장 가까운 곳을 통과하면서도 이미 결정적으로 비켜간 곡선의 도정”(『프롤레타리아의 밤』, 121p)입니다.
# 팀별 발표
이번 주에 드디어 미술사진팀과 영화팀의 비평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미술사진팀이 선정한 사진을 중심으로 발표했는데, 3주 동안 치열하게 공부하고 논의한 흔적이 잘 나타났습니다. 두 팀 모두 정성스럽게 발표문도 작성하였고요. 많은 걸 담으려고 하여 두 팀 모두 발표 시간을 초과했습니다.^^ 처음 발표한 만큼 채운샘의 애정 어린 강평이 있었지요. 일단 시간 초과와 발표 연습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요. 모두 발표 전에 리허설을 해보아요. 사진에 캡션이 없어서 이 사진이 어떤 맥락에서 활용된 건지 알기 어려웠고 궁금했습니다. 보도 매체에 따라 사진의 효과도 다른데 이스라엘 여군들이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서 셀카를 찍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이스라엘 신문에 실렸다면 승리의 기쁨으로 해석될 수 있고, 팔레스타인의 보도매체에서 발표되었다면 슬픔과 분노가 유발되었겠지요. 재작년에 사진 공부한 기억을 되살려보면, 사진은 그 자체로 보편적이거나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진을 개인적인 감성으로, 주관적으로 봐도 안 됩니다. 배치를 보지 않으면 사진 내부만 파고들어서 결국 주관적인 해석으로 끝나게 되지요. 사진의 배치와 함께 누가 이사진을 어떻게 담론화하고 있는지도 탐구해야 합니다. 미술사진 팀 샘들은 의견의 차이가 많은 만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었는데요. 다음번엔 어떤 사진을 가져와 발표할지 기대됩니다.
영화팀은 모두가 봤음이 분명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분석했습니다.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이론 시리즈인 <쇼트>, <몽타주>, <시점>을 읽고 이를 적용하여 영화의 몇 장면을 선택하여 해석했지요. 아직도 문외한이지만, 영화의 언어를 좀 알고서 봤더니 <기생충>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보이지 않는 냄새, 후각적인 걸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하는지에 관심이 갔고, 특히 기택이 박사장을 살해하는 과정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지가 궁금했었습니다. 영화의 A팀, B팀 모두 줌으로 만나서 각자 인상적인 장면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이 중 많은 분이 언급한 장면들을 골라 발표했습니다. 씨네필인 수빈샘, 영화학도 제현샘이 발표를 담당했는데, 기본적인 용어 설명과 캡춰한 장면에 대한 상세한 분석 등으로 영화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술사진팀, 영화팀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 1학기 5주차(3.16) 수업 공지
1)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2부 7장(266p)까지 읽어옵니다. 5주차 발제는 1조 정우샘, 2조 해민샘, 3조 순이샘께 부탁드려요. 공통과제는 금요일 오후 8시까지 올립니다.
2) 미술사진팀은 <코끼리가 숨어 있다>를 책의 1/3, 영화팀은 <필름메이커의 눈>을 미디엄 클로즈업(46p)까지 읽어옵니다.
3) 4주차 후기는 혜령샘, 동주샘, 5주차 간식-후기-정리는 엘리샘, 난희샘께 부탁드려요.
즐거운 한 주 보내시고 다음주에 건강한 모습으로 뵐께요.
이번 5장에서 니체의 영향이 많이 느껴졌었는데 강의 때 짚어주셔서 특히 와 닿았어요~ 자기 긍정이 어떻게 전복과 맞닿아 있는지 니체가 말한 지점을 고니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는 것 같단 생각도 들었네요~ 고니랑 친구들이 하는 소모임이 규문 세미나 같단 얘기도 2조에선 나왔고요 ㅎㅎ
사진 영화 발표 정말 재밌었는데요~ 팀별로 준비하신 스타일도 방식도 달라서 재밌는 관전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 끝나고 비아이피와 함께한 뒤풀이까지 알찬 ㅋㅋㄹ의 하루였네요 ㅋㅋㅋ 이모저모 많이 바쁘시고 많이 피곤하신 와중에 이렇게 번개처럼 빠른 정성 공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