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의 밤』(자크 랑시에르 지음, 문학동네) 5차시 후기_엘리(0316)
- 6장 노동군대, 7장 인류를 사랑하는 이들
『프롤레타리아의 밤』 2부 6장 <노동 군대>와 7장 <인류를 사랑하는 이들>을 우리 조원들은 읽기 쉬웠다고 했습니다. 전 이번엔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읽어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생시몽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생시몽주의에 여러 결이 있었다는 것은 모두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다만 종교적인 색채를 띠는 걸 어떻게 봐야 하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먼저 공부한 샘은 찾아봤더니 교리가 있고 선교를 했던 종교 같은 것이었다는 의견이 있었던 반면, 텍스트에 나와 있듯이 기독교가 싫어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생시몽주의자들‘은 무언가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었고, 정부에 의해 해산되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것 같고, 그 중에 ’앙팡탱‘같은 사람은 살아남아 왕의 중요 직책을 맡는 기득권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생시몽주의‘와 연관해서 채운샘은 ’노동의 신성함‘을 말씀하셨는데요. 우린 언제 스스로 존엄하다고 느낄까요? 나의 존엄함을 어떻게 지킬까요? 그러기 위해 난 뭘하고 있을까? 생각해봐야 합니다. 1830년대 전후 땅은 빼앗겨 ’탈영토화‘되고 기존에 작동하던 여러 규범과 같은 기존 코드들은 사라지고-’탈코드화‘- 공동체는 와해되고 자기 몸 하나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던 노동자들은 현실에서 비참함, 절망 속에 살았습니다. 자기 존엄함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어떤 돌파구가 보였을까요? 생시몽주의자들에게서 보였는데, 그들이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자신들 처지를 긍정할 수 없던 존재들에게 생시몽주의가 육화해 주었습니다. 생시몽주의는 노동하는 존재들에게서 ’신성함‘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신성함‘이란 개념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거룩함‘이나 ’신성함‘은 ’종교성‘과 연관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종교성‘이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초월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노동의 추상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16~217쪽을 참고하여 보면, 예전에는 잘하는 것,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작업복 입은 이와 예복 입는 이가 달라서 노동의 특성이 있었습니다. 재단사가 예복 안으로 사라지며 작업복과 예복이 호환이 되면서 노동에 균질화가 일어나고 오히려 차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달리 설명하면, 일에 대한 관념인데, 장인은 자기 일과 결과물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일을 통해 자기를 실현합니다. 그런데 노동의 추상성은 일의 활동과 존재가 분리됩니다. 노동 자체와 결과물이 분리되어 노동 조건이 같아져 평등화된 듯 보이지만 노동의 추상화로 가치가 화폐로만 등가되어 얼마 받느냐에 따라 차등이 발생합니다. 채운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폐 개념으로 추상화됨. 이것이 자본주의의 시작입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화폐로 가치매김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어졌던 논의는
’보편 연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한 샘은 254쪽에서 보듯이 ‘생시몽주의’는 여러 위치의 사람들이 들어왔고, 상반된 지점들을 가진이들이 공존했던 지점이며, 분할선이 흔들리던 지점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샘은 ’보편연합‘이 엄청난 비전을 줄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합쳐질 수 없습니다. 합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럴 수도 있다고 전제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생시몽주의의 공과 과를 다 이야기하는 것같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공’은 인류애적 사랑이고 ‘과’는 262쪽의 루셀이 느낀 모순입니다. 생시몽주의 안에서는 더없이 따뜻함을 느꼈지만 자신들의 일터에서는 다시 냉기를 확인하게 될 때 느끼는 간극. 그런 모순과 간극을 다 극복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2. 『필름메이커의 눈』 (구스타보 메르카도 지음 / 비즈앤비즈)
우리 조의 영화학도인 제현샘은 20~27쪽에 걸쳐 소개된 「올드보이」에 대해 왜 저자가 극찬하면서 다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감독의 시선에서 써졌다고 합니다. 우리 조원들은 이 책에서 영화 개념-언어-를 읽으며 ’렌즈‘ 부분은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렌즈,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와 각도, 촬영장 분위기, 우연 등을 모두 통제해야하는 감독은 대단하다는 말에 대부분 공감하였습니다. 감독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한 바를 관객들이 영화 전반에 지속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영화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즉, 다양한 비주얼 전략, 이를테면 인물이 프레임 화면 치우친 곳에 위치했다가 점차 균형잡힌 화면 구성으로 이끌어가거나 초반부에 광각렌즈를 사용하다 망원렌즈로 변화시키기도하고 얕은 심도에서 점차 깊은 심도로 또는 핸드핼드샷에서 고정된 샷으로 전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모든 단계-각각의 샷으로부터 각각의 씬과 모든 시퀀스-와 전체 영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나눴던 의견 중 ‘감독이 A를 의도하고 영화를 만들었으나, 관객이 B,C,D를 생각하면 실패다.’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인데, 감독이 통제된 의도 속에서 찍은 것을 관객이 B,C,D로 해석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감독의 주제와 일관성있는 샷이 통제되지 않는 것이 문제란 의견이 있었습니다. “규칙을 배워라! 그러면 그 규칙을 적절할 때 어기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란 오랜 속담의 의미를 갖고 우선 규칙을 배우자는 데 의견을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언어를 배우고 있는 우리는 옛날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은데, 이유는 영화를 예술의 장르로 끌어올리려던 노력이 더 철저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어렵다던 ’렌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표준렌즈는 초점거리가 50mm이고, 광각렌즈는 초점거리가 표준렌즈보다 짧고, 망원렌즈는 표준렌즈보다 초점거리가 긴 렌즈입니다. 광각렌즈는 넓은 시야를 담을 수 있고 z축을 따라 움직이는 속도를 과장되게 인식하기 때문에 인물이 렌즈에서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때 정상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망원렌즈는 공간을 압축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기술적인 것들이 서사적 맥락 속에 잘 배치되어야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엘리샘~ 지난 시간 조별 토론 내용 빠르게 잘 정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 랑시에르가 언제나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기에 ^^ 여러 의견들이 펼쳐지고 그걸 나누며 세미나의 묘미가 더해지는 것 같아요~ 영화팀 B조 토론 내용도 궁금했었는데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름메이커의 눈>이 영화 장면 예시와 함께 영화 언어의 개념들을 훨씬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A조에서도 흥미롭게 읽고 있는데요. 서두에서도 작가가 언급했지만, 영화를 직접 찍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쓰여져서, 우리가 장면 분석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A조에서는 규칙을 잘 지킨 것보다 규칙을 어긴 영화들에게서 때론 규칙을 더 잘 배우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단 얘기도 나왔었어요. 후기 감사해요 엘리샘 🙂
엘리샘 <프롤레타리아의 밤>의 2조 토론 내용과 영화 B팀에서 나눈 얘기들을 빠르고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랑시에르의 글이 애매하고 다양한 사유를 낳는 만큼 샘들이 써오는 공통과제도 각자 문제의식처럼 다채롭네요.^^ 1조에서도 생시몽주의의 종교성과 지속가능성, 노동자들의 역량,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다양함, 노동의 추상성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지요.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이 책은 샘들과 함께 읽어서 풍부하게 이해를 하고 느끼게 됩니다. 영화 또한 아직 걸음마단계인데요. 책과 함께 영상을 보면서 영화의 언어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네요. <올드보이>에서 활용된 클로즈업과 몽타주, 프레임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샘 후기 덕분에 복습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