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에서는 백남준 선생의 나머지 글을 읽고서 불확정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눴었습니다. 마리 바우어마이스터는 “일단 완성된 화폭에서 오랜 작업의 흔적과 수없이 많은 시도를 깨끗하게 지워버리는데 성공한다.”(260), “메시지의 개연성이 높을수록 그 안에 포함된 정보량은 적다”(262)와 같은 인용문을 통해 우리가 명확하게 뭔가를 말하려고 할수록 한가지로 환원이 되는데 불확정성은 정보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강의에서도 우리가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해석의 문제를 말씀해주셨는데 빨리 내가 알고 있는 코드로 환원하여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관객을 참여시키는 퍼포먼스가 진짜 참여가 될 수 있는가, 삶의 변화까지 추동하는 지 의문이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었고 여러 선생님들이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것 아닌가 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가 지난번 참여했던 핵오염수 반대 집회가 그런 것은 아닌가. 그것으로 결과가 바뀔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예술에서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관객이라는 것에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그러면서 조금씩 바뀌는 것 아닐까 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백남준 선생의 악보를 보면서 통쾌함까지 느꼈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백남준 선생은 뭔가를 하기 위해서 작업을 한 게 아니라(이 때의 뭔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작가의 내면세계 같은 것) 하지 않음로써 경계를 해체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나아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후기를 쓰려고 고민하다가 음악을 듣는다는 것,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음악이라는 것이 뭘까? 오선지 위에 그려진 음만이 음악일까? 존 케이지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4분 33초 동안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르는 시간과 공간을 연주자 자신과 관객에게 던져놓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나지 않는 시간을 우리는 연주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피아노 소리가 나지 않는 그 시간에도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 기침 소리, 심지어 기계 소리 마저도(이었을 것 같다). 내가 음악이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짓고 있었는지 돌아보게도 되었고 우리는 이런 것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이들이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출석률도 좋고 화기애애한 3조에서 조 분위기만큼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나눴네요. 😉 1조에서도 불확정성, 메시지의 개연성과 정보량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규정적이고 명확할수록 정보량이 적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고, 생각해보니 들뢰즈나 푸코 등 우리를 헤매게하는 철학자들 글이나 백남준 선생님을 비롯 이번에 배운 화가들의 그림도 바로 이해할 수도 없고 정의할수도 없지요. 이들의 그림과 작품은 그만큼 풍부하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린 게으름으로 인해 뭔가 딱 명쾌하게 주어진 걸 선호하는 것 같아요. 이번 에세이 주제도 뭘 해야될지 머르겠는 답답함이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사유의 길을 만들어야하는 거겠죠? 다들 에세이 홧팅입니다. 조별 토론내용 및 샘의 공부에 대한 질문을 잘 정리한 후기 감사해요.😊
혜령샘,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선 지난 시간에 조원들의 논의 주제를 모아 길을 만들어 서로 이야기가 통하게 하는 일을 혜령샘이 맡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b( ̄▽ ̄)d
토론하다 보면 어디에서는 막히고 어디에서는 헤매고... 또 머릿속이 하얗게 됩니다. 어쩌면 그 덕분에 혜령샘 말처럼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매주 배웁니다.
이 과정 중에 얻는 것이 있다면 혜령샘의 질문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요? 또 주영샘 말처럼 바로 이해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는 지난한 고민 끝에 만나는 질문이 정말 소중한 것 같아요.
그래서 존 케이지와 백남준 작가의 퍼포먼스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그림을 본다는 게 뭘까? 음악이 뭘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는 헤령샘의 느낌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이전과 다른 느낌 가운데 질문의 형식으로 기존의 자기 규정과 마주할 때, 기존 관념에 균열을 조금씩 내어볼 때, 배움이 시작된다고 하기 때문이죠. 또 예술가들로부터 마음을 배우고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우리와 함께 있는 사소한 것들도 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각자의 배움 가운데 열심히 자기 질문과 씨름하고 있을 크크랩 팀원들, 우리 모두 함께 파이팅해요~~\( ̄︶ ̄*\))
3조에서 불확정성의 정보 개념을 예술 작품의 해석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얘기들이 오갔군요~ 뭔가가 복집할 수록 정보의 양은 적다는 것 - 종종 일상에서 반대로 착각하는 - 은 많은 시사점이 있는 것 같아요. 혜렴샘께서 마지막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뭘까? 하고 심오하고 근원적인 질문을 해주셨는데 우리의 많은 활동들이 익숙할수록 그 습을 벗어나지 못한 채 행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모든 질문을 안고 에세이! 화이팅 하시길 바라며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