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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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샘 강의 일정 등으로 3학기 에세이는 2주에 걸쳐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23일에 당연히 방학이라고 생각하여 여행, 병원 등을 예약한 샘들도 있었지요. 저도 직장에 얽매여있기에 황금연휴를 놓칠 수 없어서 여행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23일에 일정이 있는 사람은 16일에, 나머지 샘들은 23일에 에세이를 발표하게 되었네요. 먼저 매를 맞는 것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에세이 완성도를 고려하면 1차 발표하신 분들의 합평을 듣고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거나 어제 대망의 3학기 에세이 1차 발표를 했습니다. 바쁜 와중에 다들 각자의 문제의식을 붙잡고 씨름한 에세이에 대해 채운샘은 세심하고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셨지요. 예상대로 1차 발표팀은 이렇게 쓰면 안 된다를 보여주는 마루타가 되었고요. 이를 반면 교사하여 2차 발표팀이 고민하며 에세이를 쓸 예정입니다.
오 이게 무슨 일이죠? 8명 발표자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에세이에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왔습니다. 저희끼리는 얘기할 때는 소통을 주제로 하겠다는 분이 거의 없었거든요. 3학기 마지막 강의에서 채운샘이 예술과 소통을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점도 있었고, 작가-작품-관객의 문제에 대해 헤아리고 고민하다 보니 소통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었던 점도 작용했는데요. 물론 이 소통은 각자가 정의한 소통이고, ‘무엇’과 ‘어떻게’가 빠져서 상식적인 결론에만 이르렀지요. 그야말로 작가, 작품, 관객이 서로 소통하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냐?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게 소통하는 것이냐? 반드시 우리는 모든 것과 소통해야 하나? 이처럼 다양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었네요. 예술가, 예술작품이 잘 다가오지 않거나, 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힌 우리에게 ‘소통’이 하나의 답처럼 내려온 건 아닌가 싶었고요. 다른 길, 다른 출구가 있는데, 모두가 상식적인 하나의 키워드로 향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유의 폭이 좁고, 예상보다 우린 균질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소통’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이를 해석하고 사용한 방식이 너무나 비슷했네요. 덕분에 2차 발표팀에서 ‘소통’은 금기어가 되었는데, 이와 비슷한 개념 몇 개가 떠오릅니다. 잘 쓰시거나 아니면 다른 주제로 방향 전환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8명을 세팀으로 나눠서 진행했고, 모두가 발표했던 1, 2차 에세이에 비하면 토론 및 코멘트 시간이 여유가 있었지요. 그런 만큼 샘들의 질문도 활발했고, 채운샘은 세부적인 문제까지 하나하나 다 지적해주셨습니다. 에세이를 먼저 올린 죄로 A팀이 된 승현샘, 저, 휵샘이 가장 먼저 매를 맞았는데요. 처음에 하는 만큼 많은 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문제점까지 포함하여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단 A팀은 자신의 구체적인 문제에서 출발하지 않다 보니 글이 겉돌고 관념적으로 흘러갔습니다. 승현샘은 매끄럽고 정갈하게 잘 썼지만, 첫 타자인 만큼 대표로 지적받은 점들이 많았네요. 주체를 넘어가는 걸 말했으나 오히려 주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요. 예술은 뒤섞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의미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상의 지적도 받았습니다. 2번째 발표자인 저 또한 관념적이라는 얘기가 있었고, 그런 만큼 비평형 네트워크, 표피를 둘러싸고 있는 지각 불가능한 힘들의 마주침 등에 관한 질문이 있었지요. 채운샘은 제 고질적인 문제를 말씀하셨는데요. 진부하고 상식적인 얘기를 그동안 배운 개념, 지식을 가지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쓴다는 점입니다. 매끄럽게 정리하는 것에서 벗어나 결론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답이 안 나오는 주제를 가지고 실험하는 게 필요한데, 참 어려운 일이지요.^^ 3번째 주자인 휵샘의 글도 관념적이라 이해력과 상상력, 매개물과 귀속물 등에 관한 질문이 있었고요. 생각의 단계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을 제목으로 가져왔고, 타인의 글을 인용할 때 해석을 하거나 내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는 코멘트가 있었죠. 질문은 있지만, 질문의 정돈이 필요하니 질문의 계열화를 해보라고 채운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팀은 자기 문제에서 시작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물론 그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지적을 받긴 했지만요. 먼저 승연샘은 왜 예술작품을 잘 봐야 하는지, 자기를 무로 하고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학인들이 질문하셨고요. 채운샘은 승연샘의 글이 정답으로 짜인 글로 공무원적인 글이라는 평을 내리셨지요. 저도 이 부분이 찔렸습니다. 조직에서 매번 답과 시사점을 찾는 습일지는 모르겠으나, 에세이도 자꾸 정답을 향해 달려갑니다. 승연샘은 감성와 이성, 감각을 대립적으로 구분하여 썼는데 이들은 분리될 수 없고 정신의 역량은 종합적이라고 채운샘이 말씀하셨지요. 이해하는 만큼 많이 느끼고, 감성과 이성은 비례합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철학, 과학 등을 통해 지성을 연마하고, 철학자들은 예술에 관심을 두었지요. 감각이 예민하지 못하고, 감성이 부족한 것 같다는 얘기를 샘들도 많이 하셨는데요. 뭘 보고 듣는 일도 중요하지만, 공부를 통해 이해를 높이고 지성을 연마하는 것도 우리의 감수성을 확장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미애샘이 발표했는데, 리뷰 쓰기와 창조에 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SNS나 블로그에 올린 음식에 대한 리뷰와 예술작품에 대한 평이 같다고 볼 수 있을까요? 채운샘은 두 행위가 과시한다는 점은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둘이 점점 비슷해지는 점을 우려했는데요. 둘은 창조라고 볼 수 있는지, 둘이 다르다면 그 이유와 함께 다름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밖에 미애샘은 분량을 지키지 않은 점, 창조와 실체 같은 개념 사용에 대한 지적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은 지은샘인데요. 글이 잘 안 풀려서 고민이 많으셨지요. 각자 글을 쓰는 버릇이 있는데, 저는 몰라도 아는 척하며 그럴듯하게 쓰는 것이 문제라면, 지은샘은 다 알고 이해해야 글을 시작할 수 있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번에 안 풀리는 지점에서 시작했는데, 채운샘은 안 좋아하는 것, 불편한 지점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이 부분을 쓰려고 한다면 그 지점을 파고들어 어떤 감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봐야 하는데, 지은샘은 갑자기 대중 문제로 갔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는 없고, 실제 다가오지 않는 작품도 꽤 많지요. 굳이 우리에게 와 닿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아도 됩니다. 좋아하는 것은 이미 좋아하지 않는 것이 같이 작동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도 충분히 문제를 파고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편해도 끌리는 것도 분명히 있고요. 채운샘은 우리가 더 나아갈 수 있는 질문에 매달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팀은 감성 충만 듀오 반디샘과 신우샘입니다. 두 분 다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칭찬을 받으셨습니다. 박수 짝짝짝. 이제 칭찬은 뒤로하고 질문과 코멘트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반디샘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을 많이 써서 개념, 문장의 의미 등과 관련된 질문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제목인 ‘관객, 작품을 이루는 마지막 힘’에서의 마지막은 뭘 뜻하는지, 금기를 넘어서는 관객에서 어떤 금기를 말하는지, 관객의 작품에 대한 생사여탈권 등. 글의 논리를 따지고, 타인이 이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등 타인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채운샘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신우샘은 정동에 관한 질문을 가져왔는데요. 정동은 여러 철학자, 예술가들이 활용한 개념인 만큼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을 가져올 때는 미리 정의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니체의 정의를 가져와서 하겠다던가, 불교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는데 이를 따르겠다던가 등 글을 읽는 이들이 각자의 개념으로 해석하거나 혼동하지 않도록 얘기해야겠지요. 신우샘 글의 정동도 여러 가지 섞여 있었습니다. 정동은 두 개의 대립적인 항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힘입니다. 이는 내가 의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서 발생하는데,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이행하도록 합니다. 이 밖에 코나투스, 물아일체, 장자의 목수 재경 일화 등 공부한 부분에서 여러 가지를 가져왔는데, 이를 맥락 없이 사용하여 의미가 잘못 전달되기도 했지요. 저를 비롯하여 많은 분이 자주 하는 실수인데, 글을 인용할 때는 꼭 필요한 부분에서 적합하게 사용합시다. 무엇보다도 개념을 잘 소화하여 자기 언어로 풀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네요.
소통팀의 에세이 합평에 대해 이상과 같이 정리했는데요. 다들 해결책으로서 소통을 들고 왔지만, 정작 나 자신과도 소통하지 못하고, 타인들에게도 공명을 일으키는 데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우린 소통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채운샘이 말씀하신 부분에서 요셉 보이스의 행위 예술과 관련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얼마나 소통이 어려운지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이를 통해 우린 소통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소통은 타자를 뚫고 가는 문제로 타자와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자와 소통한다는 건 살인자와 대화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인간 세계에서 살인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살인이 발생하는 인연 조건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지진, 전쟁, 살인, 화재 등 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데요. 우린 이걸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아무 겪음 없이 지나가고 있지요. 이런 무감각과 몰이해가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소통을 가로막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에세이 발표한 분들은 다음 학기 공부에서, 에세이를 앞둔 분들은 이번 에세이에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잘 써보아요. 홧팅!!!
<다다익선, 1988> : 우리를 소통의 길로 이끈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에세이 영감을 받고자 몇몇 샘들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오셨지요.^^
# 3학기 10-2주차(9.23) 에세이 발표에 대해 공지합니다.
1) 에세이는 22일 오후 10시까지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에세이 분량은 4~5p입니다.
2) 간식은 각자 드시고 싶은 것 조금씩 가져옵니다.
3) 1차 에세이 후기는 반디샘께 부탁드려요.
토요일에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만나요.^^
에세이 1차 발표팀이 어느 지점에서 헤맸는지, 주영샘이 꼼꼼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1차팀의 수고를 길잡이 삼아 2차 발표팀은 어찌 잘 가야 할 텐데 막막합니다.
여하튼 이번 1차 에세이 발표는 제가 겪었던 그 어떤 발표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웃음으로 넘쳤어요. 특히 마지막 순서였던 반디샘이 환하게 웃으시는 거 보고... '웃는 자가 일류' 라는 게 바로 이거시로구나!!! 반디샘~👍저는 예전에 에세이 때 도망쳤던 기억도 있고, 울었던 기억도 있는데 1차팀 샘들 덕분에 웃음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나고 고생한 팀원들과 서로 껴안고 우쭈쭈~~ 타임도 즐거웠구요 ㅋㅋㅋ 소통-불통-만사형통... 별거 없고 많이 웃을 수 있다는 게 중요 포인트! 그게 공부의 힘이 된다는 걸 배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친구이자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겪어 나아가길 응원해 봅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2차팀도 보답하는 의미로 힘껏 써 보자구여~~~아자!!! (〃 ̄︶ ̄)人( ̄︶ ̄〃)
오. 멋진 정리와 공지 감사해요!! 자세한 크리틱 내용을 보니 그 날의 아픔?이 생생하게 다가오네요 ㅋㅋ 다행인건 발표하러 앞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쌤들 얼굴 하나씩 보니까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질문도 열심히 해주시고 위안도 주시고 해서 재밌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저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도 통렬하게 아픔을 겪고 나서는 묘하게 하늘에서 땅으로 귀환하는 듯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돌아온 방랑자랄까요. ㅋㅋ 땅에서 주위를 살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2차 발표도 다함께 웃음으로 마무리해요!! 화이팅입니다 ^^
지난 시간, 선발대에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신 8분의 희생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ㅎㅎ (장수가 4-5장으로 늘어난 지금 어쩌면 지난 주 발표가 탁월한 선택이지 않았나 생각되옵니다) 주영샘 후기 덕분에 지난 시간을 제대로 잘 복기했네요~ 1차 발표 샘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2차 발표 샘들은 쓰지 말아야 할 것과 늘어난 장수로 인해 한층 더 뭔가 좁아진 느낌이지만 안되는 와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보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