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강타하는 코멘트도 하루만 지나면 잊는 크리틱 회복력을 저희들이 가졌다고 채운샘은 말씀하셨었는데요. 이미 두 주가 넘게 지나서 그럴까요? 좋았던 기억만 남아있는 그날을 되짚어 봅니다.
10시부터 시작된, 첫 조의 코멘트에서부터 채운샘과 도반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채운샘은 규문에서의 에세이는 처음 만난 이가 아닌, 벗들 사이에서 책선하고 있는 서로를 독자로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주중에는 과제 읽기와 쓰기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주말에는 하루를 온전히 만나 종일 연결되는 루틴을 짧게는 3학기, 길게는 몇 년을 함께한 사이기에 건넬 수 있는 진한 코멘트들로 합평이 채워졌습니다. 이번 학기 에세이에 새롭게 쓰인 부분도 있었지만, 서로 그간 나눴던 글을 바탕으로 해야 알아차릴 수 있는 지점들을 함께 찾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특별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던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 에세이를 쓸 수 있을지 망설였습니다. 아마 작년이었다면 마지막에 나타나 읽으나 마나일 에세이로 선생님들의 시간을 뺏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핑계로 미제출을 택했을 듯합니다. 이번 학기에 오가던 토론 내용을 (녹음으로) 들으며 선생님들의 에세이에 대한 궁금증이 있기도 했고, 무작정 합평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샘들, 감사합니다:)
수업 초반 2주차에, 채운샘이 '현행적 역량,' 즉 지금 자신이 행위할 수 있는 것을 통한 역량에 대해 이야기주신 적이 있었는데요. (구체적인 맥락은 기억이 희미합니다.) 그 이후로, 크크랩의 공부가 제 현행적인 것과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종종 고민해 보았습니다. 올 초, 자리를 옮기면서, 몇 년 동안 노력했던 일과 생활 사이에 선 긋기에 다른 방향이 필요하단 생각이 있었거든요. 일과 생활 사이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고요. 그래서 일단 렌즈는 교체한 것 같은데, 어떤 것을 보게 될지는 아직입니다.
2주에 걸쳐 진행된 에세이 동안, 선생님들께서 한 학기 동안 같이 예술가들의 글에서 읽고 나눴던 범위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연결하셨는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배움이나 신성, 감동, 순수로 채워진 1조 선생님들의 솔직한 글들과 채운 샘의 호평으로 시작해, 늦은 시간까지 차분히 선생님들의 에세이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채운샘이 각자에게 주신 코멘트는, 예술과 관련된 에세이임에도 우리들 각자가 그동안 생활에서 생각해 온 전제들을 드러내고, 다시 보고, 질문하게 도와주셨던 것 같아요.
저는 제 에세이를 통해 은연중에 대중을 소수로 여겨왔고, 지안샘의 글을 통해 표현의 영역은, 아무리 관객 중심이나 참여형이라 강조되는 작업이라도, 작가가 주체라고 생각해 온 것을 알아차렸어요. 꽤 오랜 기간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 왔다고 여긴 지점들의 오류가 일단 발견되고 흔들리긴 했는데 앞으로가 고민입니다.
툭툭 지나가듯 오가는 정감 있는 말들과 끝까지 서로의 글에 집중하는 크크랩 기운이 참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4학기 평론에서는, 갑자기가 아닌 성실하게 구슬 하나라도 더 잘 꿰어 구체적으로 언어화해 보겠다고 다짐하며, 다음 학기도 반갑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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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샘들의 소중한 후기들 공유해 드립니다!
“글쓰기는 왜 이리 힘든 것인지요 ㅎㅎ 항상 느끼지만, 함께 하는 힘으로 매번의 산을 넘습니다. 각자가 가진 고민과 번뇌의 지점들을 이렇게 진하게 나누는 ‘마법’ 같은 경험에 감사하며 ‘행복한’ 시지프스 되기에 동참합니다 :)”
_지안
“창작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던 굳은 관념들이 많았는데, 힌트를 얻는 경험이었습니다. 조금 더 균열을 가해봐야겠습니다. 내가 왜 부담감을 느끼는지, 혹은 내가 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요.
미완성된 글은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듣고 글은 반드시 마무리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스스로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한 에세이를 냈는데 (언제는 안 그랬냐만 ^^..) 4학기 때는 공부에 신경을 많이 써서 제 이야기를 잘 풀어쓰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_제현
“이번 에세이 발표를 돌아보니 우선 제일 반성 되는 부분은 제가 에세이를 부실하게 썼다는 점이에요. 모든 글은 현재 자기 문제를 넘어가기 위해 쓴다는 걸 늘 놓쳐요. 선생님께서 내주시는 토픽을 마치 객관식 문제처럼 생각하는 습말입니다. 예술, 작품, 관객이라는 이 질문을 내 것으로 가져온다는 의미가 뭘까. 좀 더 깊숙이, 도망치지 말고 직시해야 했어요.”
_난희
“저는 공부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글을 건달처럼 썼다고 지적을 받았습니다.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백번 옳은 말씀이셨습니다. 새로 맡은 회사 일 때문에 공부에 시간 내기가 어렵다고 내심 엄살을 떨고, 글쓰기에 소홀했음을 반성합니다. 회사 일 하는건 오로지 내 사정이고, 규문에서 하는 공부는 내 개인 사정과는 상관없이 맹진해야 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4학기, 더 부끄럽지 않게 공부와 글쓰기에 매진하리라 다짐합니다. 더불어 내가 쓴 글에 띄어쓰기, 맞춤법, 쉼표 찍기 등 형식에서도 다듬어야 할 부분이 아직 넘치게 많다는 것도 함께 가르침 주셨습니다. 지적받은 아픔만큼 공부의 의지도 커 갑니다.”
_정우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고 깨뜨리는 행위라는 것. 이 사실을 깨닫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습니다. 어찌어찌 이렇게 저렇게 생겨먹은 나를 대면하기 싫었다 해야겠습니다. 저에게는 무척 어려운 숙제이고 혼자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아픔만큼 성숙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견뎌낼 만하니 여태 게을렀던 만큼 더 치열하게 ‘지금-여기’에서 땀을 흘려봐야겠습니다.”
_산푸른
“작가-작품-관객의 관계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새로운 대중이 되기 위한 고민과 다짐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에세이 발표는 함께 공부한 시간만큼 차곡차곡 쌓인 크크랩 선생님들의 애정을 새삼 느낄 수 있었는데요, 준비기간 동안 자기 글처럼 피드백을 나누고, 2주에 걸친 발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서로의 글을 경청하며,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서로의 가장 충실한 독자가 되어주고, 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크크랩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 ~”
_수빈
“1차 팀보다 시간을 벌었음에도 제 글은 나아지질 않았어요. ㅠㅠ 이번 에세이 발표에서 2학기엔 듣기 힘들었던 칭찬이 조금-이 조금이 있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겠죠-있었는데, 칭찬받은 벗들이 부러웠어요. ‘자기 생각을 질문하고 대화할 수 있게 된 것. 놀라운 발전’이라고 채운샘이 말씀하셨어요. 제목부터 강타당한 저로서는 앞으로의 글쓰기 방향으로 삼아야겠다 싶었어요. 쓸 수 있는 만큼 내 언어로 차근차근 써가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쓸 때마다 잘 안 됩니다. 또 벗들이 들은 질책들...제게도 해당되는 말들이니 에세이 발표는 중요한 시간임에 틀림없어요.”
_스텔라
“에세이를 발표할 때는, 매번 심적 압박이 극에 달하는 시간입니다. 그러한 긴장감 속에서 여러 쌤들의 글을 만나는 시간은 막혀있었던 관념에 생기가 도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뭔가 막혀있던 게 소화되는 이 느낌은 다수의 신체가 마주치는 날것의 현장감에서 오는 게 아닐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글을 쓸 때의 압박감과 긴장이 우리를 익숙한 감각에 머물지 않게 하는 묘약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감각의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일단 꾸준히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_연희
“언제부턴가 글이 애매모호하단 조언을 계속 듣고 있어요. 이 말을 염두에 두고 제 글을 다시 읽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서야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의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문제를 명확히 나타내고 있는 문장이 정작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게다가 장황한 느낌인데 오히려 문제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내용은 너무 짧거나 빈약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지 못해 결국 사족으로 대신한 것이죠. 글에서 하고자 했던 말을 한마디나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라는 요청도 간혹 받지요. 그런데 그 말을 찾지 못해 머릿속은 하얘지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 순간 자신조차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른 채 글을 썼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앞으로는 한 마디 혹은 한 문장으로 수렴할 수 있도록 생각을 정선하고, 말하고자 했던 바를 놓치지 않고 펼쳐가는 글을 쓰겠단 마음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바꾸자 혹은 변하자고 외치는 글이 아니라 ‘던져진 돌’로 작동하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_경희
“크크랩 3번째 에세이를 마쳤는데요. 저는 이번 학기에 읽은 화가들이 쓴 글이 푸코나 메를로 퐁티와 같은 철학자의 글보다 더 예술을 알게 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예술가가 아무리 좋은 작품을 생산하더라고 그것을 향유하는 자가 없다면 무익한 것이겠죠. 예술의 영역이 예술가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이죠. 즉 관객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을 때 예술이 완성된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전 공감에 대해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샘들의 이런저런 질문과 합평이 좋았어요. 글에서 제가 놓친 부분도 있었고, 끝까지 일관성 있게 나아가지 못하는 미진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구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술적 감동이란 걸 전달 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요. 이런 노력이 이전 글쓰기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겠죠. 그리고 다른 샘들의 발표와 글을 읽는 게 어느 때보다 좋았어요. 이런 느낌도 제가 마음을 먹는다고 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어요.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다가온다는 것이죠! ㅋ 이번 학기 공부도 저를 설레게 하네요!!!”
_수니
“주제를 글로써 구현하는 것의 어려움을 깨닫는 시간이었고, 그 간극을 앞으로 메우도록 노력해야겠다.”
_희윤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 코멘트도 들으면서 그동안 질문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당연한 듯이 살아왔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깨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는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제 고질병ㅜㅜ이 글쓰기뿐만 아님을 알고 있기에 다시 한번 뜨끔했네요^^;”
_혜령
“가르침은 충분했다.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을 뿐. 우리가 습관처럼 해왔던 사고방식을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옛말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고 했던 말처럼. 책을 통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도반들과 소통하며, 스승의 가르침으로 충격을 받는다. 이럴 때 자신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에세이를 중요시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스승의 강도 높은 비평을 벌써 잊고 옛날의 자신으로 다시 돌아가는 왕성한 복원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시지프스처럼 다시 한번 산정을 향한 행복한 투쟁이 시작될 뿐이다. 심지어 시지프스는 윤회한다. 그 안에 작은 행복을 조금씩 넣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변화되는 힘이 아닐까.”
_동주
에세이 안 쓰고 쉽게 넘어갈 수 있었을텐데, 충만하지만 그만큼 힘든 에세이에 참여한 루이샘의 결정에 일단 박수를 보냅니다!!! 게다가 이렇게 샘의 공부에 대한 마음과 도반들의 에세이 소회를 담은 후기까지 아름답게 마무리하셨네요.^^ 4학기에 샘의 활동이 더욱더 기대됩니다. 에세이 2차 참여 못해서 아쉬웠지만, 샘들이 올린 글, 녹음파일, 후기에 남긴 샘들의 얘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여러가지를 얻어갑니다. 다음학기에도 각자 품은 화가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아요!!!
선생님의 소회와 크크랩 선생님들의 다짐을 다시 한번 읽으며, 4학기를 좀더 힘차게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곧 만나요!!
그러게요! 저도 루이샘이 그냥 지나갈수도 있었는데, 예세이를 들고 오신거에, 게다가 끝까지 5섯장을 채우시고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좋았었요^^ 남은 4학기에는 쭉 함께 하실거죠(^^)
루이샘 감동적인 후기 정말 감사드려요~ 이동이 잦은 업무 환경 탓에 3학기에 함께 못해 아쉬웠지만 에세이 날에 짠 하고 와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또 한번 감사드립니다 🙂 3학기 끝난지, 따지고 보면 겨우 2주인데 한 달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은 무엇일까요? ㅎㅎㅎ 강력한 회복 탄력성으로 에세이 코멘트들이 휘발되던 찰나에 샘께서 아름답게 정리해 주시니 다시 쬐금... 그날의 분위기와 향기가 떠오르네요 ^^ 여러 샘들의 코멘트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