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텍스트가 신체를 고깃덩어리로 다루는 베이컨의 그림에 대한 것이여서 그런지 이전의 칸딘스키나 클레와는 다르게 불편하게 느끼는 샘들도 있었고 잔혹성에 대한 찬사와 피부 아래의 진실을 탐구해야 한다는 샘들도 있어서 토론을 흥미롭게 이어갔습니다. 이미지가 주는 느낌은 즉각적이지만 이 느낌의 원천을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는데 그건 언어 이전의 신념이나 무의식적인 반응들, 또는 개인의 취향 같은 것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런 지점들은 뿌리 깊은 것이어서 수긍하기도 어렵고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우연히 드러납니다. 이걸 대화로 짧게 구성해보았습니다.
A : 베이컨의 그림이 불편하다. 고통인지 절규인지 모를 얼굴, 고깃덩어리라니?
B : 꼭 얼굴의 껍질을 벗겨야 하는가? 감각의 생생한 변화를 왜 이런 식으로 표현했을까? 연쇄살인범과의 차이는?
C : 만약 자신을 불편하게 건드린다면 그건 무언가를 정상이라고 놓고 보는 문제일 것이다.
D: 화가가 의도하는 건 무엇일까? 자화상이나 사람의 머리, 신체는 사회적인 가면을 벗겨내려는 것 아닐까? 머리는 얼굴과는 다르다. 표상이 아닌 물질에서 꿈틀거리는 힘.
B : 그림이 왜 잔혹성으로 표현되는가? 다른 아름다운 방식이 있지 않는가?
C : 그 잔혹성이라는 말이 코드화되었다. 실제로는 삶에 넘쳐나는 것이 잔혹성 아닌가? 클로소프스키를 보면 삶이 포장되었기 때문에 진실이 잔혹스럽게 느껴진다고 한다.
A : 이 감정의 원인은 무엇인가? 베이컨을 만나며 남겨진 숙제이다.
E : 자신의 코드를 살펴봐야겠다. 감각을 여는 잔혹성이 필요하다.
정상성이란 무엇일까요? 나를 나로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지만 결국 그 틀안에 자신을 가두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상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비정상이 되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주영샘은 인간의 ‘피냄새’가 상징하는 건 우리가 상식적으로 떠올리는 전쟁과 같은 폭력이 아니라 닫힌 감각을 여는 잔혹성을 의미한다고 보셨고 난희샘은 이제 옷도 아닌 ‘피부’가 명함이 되고 있는 세상에서 이것이 문명의 마지막 껍질처럼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신동엽의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장식적인 것에 대한 거부, 리얼한 것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A : 임상적인 회화가 리얼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B : 베이컨의 그림은 촉각적이다. 실재란 감각의 강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C : 철학도 임상이다. 이건 신체성을 동반하며 그 활동을 추동하는 것이다. 예술을 보는 관점에 적용해보자.
A : 그가 말하는 낙관적인 허무주의가 리얼리티로 가는가?
C : 종교나 신, 이런 실체를 거부하는 것이 허무주의다. 그의 삶은 능동적이고 낙관적이다.
D : 표류(drift)는 세상을 견디며 실존을 넘어 생성 변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인가? 카오스적 삶이 다가오는 것이 창조와 사랑인가?
E : 표류는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코드화되어 있다. 창조나 사랑이라는 말도..
D : 형상은 일그러져 있지만 추상표현주의로 나아가지 않았다. 왜일까?
B : 그것은 물질성이 주는 힘 때문이다. 고깃덩어리.. 신체적이고 촉각적인 것, 무질서속 생성되는 질서.
C : 감각의 다발과 힘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피냄새는 음악의 질서가 아니라 비명이다..
E : 눈보다 입이 아닌가? 감정의 움직임이 더 잘 드러난다. 치아를 보고 삶의 이력을 추적한다. 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을 그려낼 수 있다.
세계는 신체를 투과하지 않고 아무런 저항 없이 저절로 출현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감각에만 반응하고 다른 것들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신체는 내가 스스로 그런식으로 기호화되어 있기 때문입입니다. 우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세계가 특수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하면 해체할 수 있을까요? 다른 신체를 만들어 내는 것, 닫힌 감각을 여는 것은 기존의 신체를 형성하는 힘과 동일한 강도로 어쩌면 더 센 강도를 가지고 반대 방향으로 부딪혀야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만큼 고통이 따르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고 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고통을 통과해보면 ‘나는 엉터리였고 눈뜬 장님이었다’ 이런 각성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베이컨의 그림은 우리가 보지 못한 감각을 파헤칩니다. ‘진정한 자아’로 가기 위해 파괴나 균열을 만들어내는 힘이야말로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폭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와~~ 토론 내용을 질문과 대화로 깔끔하고 알차게 구성했네요.😉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베이컨의 그림과 인터뷰를 통해 감각, 잔혹성, 정상성 등 주요 질문을 기반으로 다양한 얘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우리가 선호하는 안정, 편안함은 우리를 오히려 더 나아가게 하지 못하고, 고통이나 불편함 등이 균열을 낸다는 측면에서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그림과 텍스트가 우리로 하여금 한걸음 더 움직이게 합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건들, 나와 부딪히는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습관과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고 사유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고,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 이런 기회는 자주 오네요. ㅋㅋ 여러 힘들이 오갔던 토론내용을 잘 엮은 후기 감사해요.😊
반디샘. 시나리오 한 편을 쓰셨네요. 크크랩의 수준이 범상치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매주 머리를 맞대연 평타정도는 치는 경지에 이른다는 느낌~~^^
"진정한 자아" 알맹이, 본질, 인간성 ᆢ이런 지푸라기를 놓아버려야한다고, 베이컨이 시뻘건 고기ㅡ머리를 내민게 아닐까요?
그리고 한가지 더, 베이컨의 낙관적 허무주의는 뭔가를 실체화 혹은 코드화하려는 것에 대해 계속 작업하겠다는 의지로 읽혔습니다.
세미나현장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1조 토론 내용이 매우 궁금했는데 반디샘께서 이렇게 한편의 극을 보는 것처럼 멋지게 써주셨네요~ '낯선' 베이컨의 그림을 보며 샘들 각자 느낀 지점들이 생생하게 전달되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매번 놓치곤 하지만 어떤 개념을 기존에 알던 것에서 시작하지 말고 새롭게 재정의할 필요가 있음을 느껴요. 폭력과 잔혹, 진실, 또 아름다움의 개념들이 베이컨 그림을 통해 해체, 재구성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사유도 초큼이라도 말랑해지길... 혹은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붕괴'되는 체험에 이르길 기대해 봅니다 ㅎㅎ 🙂 후기 감사해요~!
다른 방식으로 후기 쓰기를 시도하셨군요.. 신선하고 좋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주제를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베이컨의 말이 인상깊게 다가오는데요.. 저는 비록 예술가는 아니지만 어떤 주제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질문해 보게 되는데요.. 그 주제를 감각이라는 차원에서 세계와 소통하고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신체를 만들어 내는 것, 닫힌 감각을 여는 것과도 연결되지 않나 싶습니다.. 저에게도 그 주제가 정동을 일으키고 세계(외-부)를 기민하게 인지하는 능력과 역량으로 나아갈 수 있게 균열과 해체를 거듭해 보겠습니다. 크크랩 식구들과 함께!! 색다른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