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차 강의 정리]
*쾌락 원칙과 죽음 충동
이번에 공부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앞서 공부한 칸딘스키나 클레의 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베이컨의 그림은 추상도 구상도 아닌 지점에서 현대 회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특히 많이 그린 인물화의 경우 우리가 인물화에 기대하는 바-실제 인물과 얼마나 닮았는가-가 베이컨 그림에는 전혀 없습니다. 인물의 얼굴은 군데군데 뭉개져 있고 모호하여 실제 인물의 모습을 유추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볼 때 이것은 무엇이라고 확인하고 규정할 때 우리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데 베이컨 그림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인간의 형상들을 제시하며 우릴 아주 낯설게 합니다.
채운 선생님께선, 인간에게는 ‘보존 본능’ 있다고 하셨는데 이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생명체가 가진 쾌락 원칙으로 ‘나’이고자 하는 본능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시시각각 실질적으로 바뀌는 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일관성을 형성할 수 있는데요. 우리에게 확고하게 자리 잡은 주체의 개념은 이 보존과 안정 욕구에 기반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죽음 충동’ 역시 존재하는데요. 이는 내가 아니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기 동일성을 이끄는 쾌락 원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을 삶에서 마주합니다. 우리에게 쾌락 원칙만이 있다면 우리가 마음먹은 길을 그 방향 그대로 순조롭게 갈 것입니다만, 살다 보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하고 있거나 전혀 다른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는 내가 나이고 싶어 하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끝없이 미끄러짐으로써 나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 또한 공존함을 뜻하죠.
이렇게 나를 나라는 동일성으로부터 이탈시키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즉 무엇이 나를 동일성으로부터 이탈하도록 추동할까요? 이는 내가 나 이전부터 존재히왔던 많은 힘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주체로 우리 자신을 환원하지만, 그것은 우리 머릿속의 관념일 뿐, 우리 자신은 늘 주체라는 동일성을 넘쳐흐릅니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a Self-Portrait, 1979, 37.5 × 31.8 cm
베이컨의 인물화는 누구누구라고 규정된 주체를 넘쳐 흐르는 힘들, 그 이질적인 힘들로 구성된 인물들을 표현합니다. 그가 표현하는 인물화는 분명 특정한 인물 특징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거기에 흡수되지 않고 윤곽을 넘어 생동하는 힘들을 표현합니다. 즉, A라는 인물이 A를 형성하는 동시에 그것을 빠져나가는 힘들- A가 A이전에 가진 이질적인 힘들-이 펼쳐내는 광경을 포착합니다. 무엇이 그 사람인가? 무엇이 인간의 몸인가? 그림은 마치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상적 회화 - 낯섦의 침입과 해체
평소에 우리는 우리 신체가 나라는 하나의 동일한 유기체로 여기지만 사실 우리 몸은 수많은 힘들의 집합체이기에 신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환원하는 것 자체가 환상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한 번도 의도한 바 없는 방향 위에 내가 놓여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 우리 자신을 하나의 유기체이며 하나의 고정된 주체로 환원할 때에만 ‘이상한’ 일이지, 우리 자신을 여러 힘들의 결합과 해체로 인해 시시각각 구성되는 신체로서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요. 나는 내 의지가 발동되기 이전에 무의식, 즉 내 몸의 분자들이 추동하는 힘 속에 있습니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 (each: 940 × 737 mm)
베이컨이 그리는 신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가 아니라 유기체적 동일성을 깨는 해체 로써 부분의 힘들이 작동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베이컨은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를 일컬어 ‘임상적’ 회화라고 지칭하죠. 임상(clinic)이란 어떤 사람의 말, 표정, 제스처 등의 미세한 것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이 뿜어내는 모든 것을 기호로 읽고 그 기호들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을 뜻합니다.
베이컨은 자신에겐 의자도 임상적인 오브제였다고 말하는데요. 그가 말하는 임상적 태도란 모든 것을 이미 정해진 분별과 규정들 속에서 습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상적 태도‘와 구별되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습관적 지각에 종지부를 찍는 듯한 단호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명상 수행을 할 때도 관(觀) 하기 전에 먼저 지(止)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먼저 일상적/습관적 분별을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물의 미세한 기호들을 가시화한 베이컨의 그림은 그래서인지 낯설고 불편할뿐더러 때론 불쾌감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이는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익숙하여 안정과 편안함을 주는 지점을 해체했기 때문이죠. 인간의 신체를 ‘고기'라고 표현하거나 표정이라는 사회적 코드를 담고 있는 얼굴이 아닌 ‘머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Francis Bacon, Head VI, 1949, 93.2 × 76.5 cm
Francis Bacon, Painting 1946, 1949, 198 cm × 132 cm
베이컨의 그림들른 아주 미세한 곳에서 유기체의 균열이 일어나고 와해되는 지점을 예리하고 포착하고 그것의 힘을 화면에 펼치는데요. 마치 완벽한 조화 속에 달콤하고 익숙하게 들리는 화음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음들의 미세한 이탈과 균열로 아주 괴이해져가는 감각과 닮아있습니다. 그 스윗함의 붕괴는 친숙했기 때문에 더더욱 섬뜩함과 공포를 자아냅니다. 베이컨 그림이 ‘폭력적이다’라고 할 때 그 폭력의 의미는, 결코 그것이 B급 공포영화나 고어물처럼 잔인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림이 어느 순간 우리를 붕괴시키는,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토대와 우리의 듬직한 관념들을 뒤흔드는 감각적 체험을 유발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붕괴의 폐허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 우리의 욕망을 마주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죠. 완벽한 타자가 내 안으로 침입하여, 그리하여 내가 스스로 결코 볼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마주하며 존재가 흔들리는 경험 - 흔히 사랑이라 말하는 사건 역시 이러한 의미- 해체로 인한 - 폭력을 동반합니다. 들뢰즈가 사유에 수반되는 폭력을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이컨의 작업 과정의 특징을 몇 가지 정리하면, 물감을 떨어뜨리고 뿌려진 물감으로부터 형상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 우연성을 도입하고 그것을 자신이 통제해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또한 형상이 위치한 공간이나 바탕은 매우 매끈하게 평면적으로 채워져 있는데 어떤 것도 도드라지지 않는 무규정적 평면이 베이컨 식의 카오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매끈함에서 무수한 괴물적(낯선) 형상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초현실주의
끝으로 채운 선생님께서 초현실주의자들의 그림을 보여주셨는데요. 초현실주의는 특히 문학과 함께 다방면에 걸친 종합 운동이었고, 초현실주의 안에서도 상당히 다양한 결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프로이트의 영향이 매우 컸는데요. 이에 기반해 그림에 많은 성적 암시나 상징을 담았습니다.
Salvador Dalí, The Temptation of St. Anthony, 1946, 90 cm × 119.5 cm
Un Chien Andalou (An Andalusian Dog), 초현실주의 영화, 1929
Max Ernst, The Virgin Spanking the Christ Child before Three Witnesses: Andre Breton, Paul Eluard, and the Painter, 1926, 196 x 130 cm
초현실주의자들 역시 규정되지 않은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우연성을 도입하려는 많은 시도를 하였는데요. 자동기술 기법이나 연상작용을 통한 표현, 프로타주 기법 등을 활용하였습니다. 7주 차에 <초현실주의 선언>을 읽으면서 좀 더 자세히 공부해 보도록 해요.
[7주차 8/26일 공지]
1.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1924년 1차 선언문 59-126쪽을 읽으시고 공통과제 작성하셔서 8/25일 저녁 8시까지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2. 다음주 간식-후기-정리는 1조 승현샘 2조 미애샘 3조 희욱샘께 부탁드려요.
우리는 유체를 둘러싸고 있는 외관을 보고 판단하며, 외관 아래의 에너지와 운동은 보이지 않기에 지나쳐버리는데요. 외관이 아닌 힘과 에너지를 그린 베이컨의 그림은 우리에게 잔혹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만큼 감각을 여는 밸브로 작용하고 다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추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그린 인물, 사물에서는 사회적 코드와 규정을 찾아볼 수 없어서 당혹스럽기도 하면서도 생생한 힘들이 촉각적으로 다가오네요. 칸딘스키, 클레, 베이컨을 통해 다양하게 뻗어나간 회화의 실험을 배웠는데,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들과 어떻게 다르게 나아갔는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그림과 함께 강의내용을 정성스럽게 정리한 후기덕에 복습 잘 했습니다. 감사해요.😊
나이고자 하는 '보존 본능'과 나를 소멸시키고자 '죽음 충동'의 공존과 대결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고정되고 실체화되어 있는 나를 항상 탈피하고 싶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지요. 죽음이나 자살의 충동이 단순히 고체적인 신체의 해체가 아닌 정신적인 의미의 변화임을 깨닫게 되네요 베이컨이 포착하려고 했던 신체를 관통하는 힘, 그 힘을 느끼려면, 낯선 대상들-사람과 사물-의 정동을 포착할 수 있으려면 역시 나를 버리는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초현실주의 과제 작성하다 막혀서 다시 읽어보니 도움도 되고 복습이 됩니다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