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초현실주의 선언-> 브르통의 선언이지 모두의 생각과 동일한 건 아님을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브르통의 글을 읽을 때는 마치 초현실주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받아들여 졌지만, 다른 선생님들과의 대화와 수업을 통해 10년도 지속되지 못한 운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혁명적이었던 행위가 권력지향으로 가면서 주변에서 밀어 붙여주는 동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은 브르통이 생각하는 "초현실주의란 이러해야 한다."는 것이지 다른 예술가들도 전적으로 동의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이 운동의 초석을 닦고 이끌었던 한 인물이 생각한 초현실주의의 개념으로 다시 이해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답답함 마음에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주변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을 볼 때 막연한 불안감도 느낍니다. 브르통이 살던 시대는 우리 세대가 경험한 적 없는 세계1차대전(전쟁)을 겪었습니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일들이 일어났지요.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로 생겨난 게 초현실주의 운동이 아닐까요. 이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한 지성인들이 제시하는 삶의 방향으로 보입니다. 저희 조는 브르통이 삶에 상상력을 통한 경이를 강조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한 분은 상상력이 자기 구원으로 이어지는 통로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늘 유용성에 입각해 익숙하고 안전한 방향으로만 해석하며 현재의 층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당대의 현실에 봉착한 것이죠.
그러므로, 현실에 유용성을 따지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과 경이로움이 함께 해야 현실의 삶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다고 브르통이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브르통이 이야기하는 초현실주의란 무엇일까요?
"초현실주의. 남성 명사. 순수 상태의 심리적 자동운동으로, 사고의 실제 작용을 때로는 구두로, 때로는 필기로, 때로는 여타의 모든 수단으로, 표현하기를 꾀하는 방법이 된다. 이성이 행사하는 모든 통제가 부재하는 가운데, 미학적이거나 도덕적인 모든 배려에서 벗어난, 사고의 받아쓰기."(88쪽)
브르통의 초현실주의는 "남성명사"에서부터 알 수 있듯 중심지향적이고 권력지향적이며, 특히, 순수 상태의~ 부분에서는 의심해보아야한다고 채운샘이 말씀주셨어요. 순수를 추구한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가 파시스트적인 지향(우월하고 열등한 존재로 나뉜다는 등의 사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세미나 시간에 순수 상태라는 게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요. 그 결론은 의도적으로 관념을 배제하고 보려는 시도나 순수하려고 애쓸 뿐 가능하지 않은 상태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초/현실주의/선언을 나누어 생각해보겠습니다.
처음엔 초가 "현실을 부정하는, 뛰어넘는"의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강의를 통해, 초[超](뛰어넘을 초): 극한의 표현 / 벗어난, 넘어선/ 궁극적 기원, 근원/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의미 로 여러 의미가 복합적으로 혼재된 개념으로, 가장 근접한 것이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의미"입니다. 또 현실주의(Realism)란 시대마다 사람마다 "현실"에 대한 감각이 다르기에 다르게 보자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시대에 진로 선택을 할때는, 현실적으로 돈이 되는 과에 가야한다 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는거죠. 개인마다는 오늘 수업에서 이야기 나왔던 것 처럼, 다비드가 상식적으로 멀리에 있는 것조차 아주 세밀하게 그런 것이 리얼하다고 느끼는 반면 쿠르베처럼 눈에 멀리 보이는 것은 흐릿하게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 리얼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선언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넘어갔었는데, 선언: ~와 싸우겠다! 우린 다르다! 라는 걸 공표하는 행위입니다. 브르통과 아이들(?)은 이성과 논리로 합리성을 내세우던 기성세대에 대항하겠다는 것을 공표한겁니다. 즉 초현실주의 선언은 기성세대의 논리, 합리주의, 과학과 철학으로 신봉하던 이성에 대한 믿음에 대항하겠다는 외침이지요.
세상은 요지경... 그런 시대를 유머와 경이(감탄)(으)로 살아내려한 초현실주의의 태도를 이해하고 나니
아무말 대잔치 같았던 <초현실주의 선언>이 자기 확신에 대한 의심을 해보게끔하는 뱡향성 제시글로 달리 보입니다.
오~~ 핵심적인 내용을 깔끔하게 잘 정리한 후기를 신속하게 올려주셨네요.^^👍👍 저희 조에서도 브르통의 글이 산만하고 하나로 꿰어지지 않아서 어렵다고 하신 분들 많았는데요. 아무래도 자동기술법, 연상을 강조하셔서 그런지, 글에서도 본인의 철학이 잘 드러났지요. 우리는 기존의 규정, 관념에 얽매여 있고, 자신도 모르게 검열하거나 기존의 틀로 조직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어진 것을 거부하고 의심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의 태도는 견지해야 할 것 같고요. 뭉크의 그림이 잘 보여준, 모든 것이 균질적이고 동일화되어 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의식 등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와 통찰은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측면에서 초현실주의가 잊히지 않고 회자되는 건 아닐까요? 빠르게 올려준 후기 덕분에 복습 잘 했습니다.😉
뭉크가 그린 사람들의 퇴근 길 표정을 생각하니, 지금 제 표정은 어떤가 싶네요 ㅎㅎ 집에 갈 때 미소 지어야겠어요 🙂
미애샘께서 빛의 속도로 2조 후기를 올려 주셨네요! 텍스트가 막 읽기에 어렵다기 보다는 이런 식의 실험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 생소함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진 샘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조별 토론에 스텔라샘께서 초현실주의가 예술을 확장했다고 볼 수 있는가?란 질문을 주셨었고, 연희샘께서 추상표현주의 등의 많은 현대 회화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의견 주신 부분이 - 채운샘께서 강의 중에 말씀하신 태도로써의 초현실주의와도 연결되는 지점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이샘과 저는 초현실주의가 언어를 일상적인 방식과 다르게 보고 있단 얘기를 했었는데 (가령, 대화를 한다는 게 무엇인가... 내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대화의 본질 아닐까... 이런 얘기를 하면서요~~) 이 부분도 시적 언어와 관련해서 흥미로웠어요. 채운샘 강의에서 초현실주의가 문학에서 처음 일어난 운동이니만큼 무엇보다 '언어'가 중요한 도구였단 말씀도 연관되어 상기됩니다~ 산만했던 토론 내용을 산뜻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해요 미애샘 👍👍👍 🙂
이해가 어려웠던 만큼 감흥을 잊기 전에 적는다고 빠르게 적어봤어요! ㅎㅎ 샘의 글을 통해 저희가 나누었던 내용이 더 떠오르네요~ 추가 내용 짚어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