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 당번이라 모처럼 일찍 규문에 도착했는데, 부지런하신 지민, 미애쌤과 다른 선생님들께서 도움주신 덕분에 준비가 일찍 끝나있더군요. 덕분에 할 것도 없이 그냥 빨리 온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보시는 분들마다 왜이렇게 일찍 왔냐며 반겨주셨는데, 그간 제 출석 행태를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ㅇ 초현실주의 선언의 문제의식(이성에서 정신으로)
3조는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선언하게 된 배경, 문제 의식에 대한 이야기로 세미나를 시작하였습니다. 초현실주의 등장 전과 후를 구조화하여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잠시 ‘이성’이라는 단어의 늪에 빠지고 말았답니다. '초현실주의는 반이성주의인가, 그래도 자기표현을 위한 일정한 형식을 갖출텐데 이성의 관장이 필요하지 않았겠느냐, 그래도 이성보다는 무의식의 영역을 중시했다, 그럼 자동기술은 이성적인 상태인것이냐, 무의식의 상태인 것이냐' 등 치열한 논쟁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성'이라는 단어의 일상적 용례와 앙드레 브르통이 사용한 용례를 분리하여 따져보게 되었고, 초현실주의의 문제의식이란 근대적(데카르트적) 합리주의의 세계에서 인간의 정신은 억압되고 획일화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관습적인 이성의 작동을 중지 시키고, 우리의 정신이 다르게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예술이 필요하다는 점, 이를 위해 무의식, 꿈과 같은 비이성의 영역에 대한 관심과 자동기술과 같은 방법론을 통해 생성된 이미지들을 색다르게 병치하며 경이를 느끼고 새로운 현실을 인식하여 자유를 찾기 위함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ㅇ 초현실주의가 바라본 소설
앙드레 브르통은 현실주의 소설과 그 속에서 사용된 구체적인 묘사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또는 누구나 다르게 바라볼 정경을 묘사하는 작업의 무의미성과 획일성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몇몇 조원들이 이에 크게 공감해주셨습니다. 그 동안 책의 한페이지 가까이 할애된 묘사를 읽으며 지루하게 느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소설읽기의 새로운 자유를 얻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묘사들에도 다 의미가 있다고 하는 반박도 있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주석 10을 함께 읽으며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주석 10 “브르통은 <선언> 이전부터 묘사를 거부해왔다. 그의 저작에 사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묘사가 무력하다는 그의 생각과 관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브르통이 관심을 갖는 것은 사물의 외관이 아니라, 사물에 내재하는 이해할 수 없는암시들이며, 인간에 대해,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 어떤 계시를 약속해주는 기호들이다.”)
ㅇ 초현실주의회화의 목적?
이번에도 어김없이 초현실주의 회화가 와닿지 않는다는, 초현실주의 회화를 통해 무엇을 느껴야 할 지 몰라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수련을 오래하다보면 느껴질 것'이라는 농담을 시작으로, 실제로 초현실주의작품을 만나 느낀 경의의 순간에 대한 상세한 경험도 공유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회화를 통해 양의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이우환 선생님이나, 자신만의 회화언어로 정동을 일으킨 칸딘스키, 클레 처럼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를 알기 어려웠습니다. 초현실주의의 출발점은 알겠는데, 그 도착지는 어디냐는 것이었죠. 그러나 이 역시 특정한 목표를 정해놓으면 그 자체도 세계를 획일화 시키는 것이므로, 초현실주의는 어떤 도달점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파문, 균열을 일으키는 것 까지가 목표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점을 남겼습니다.
ㅇ ‘부조리’를 통해 드러나는 것
마지막으로 책에서 언급된 '부조리'라는 용어에 대해 다들 이해가 어려웠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마침 경희쌤께서 '부조리'를 주제로 써주신 과제를 실마리로 다음과 같이 이해해보았습니다.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적 언어 형식이 가장 적절하게 들어맞는 것으로 '대화'를 꼽는데요, 우리가 보통 대화라고 하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대화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생각이 대면하는 것이죠. '낱말들, 이미지들은 듣는 사람의 정신에 도약대로서만 제공된다(104쪽)'는 문장을 이해해보면, 우리는 결국 서로 이해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상대가 말하는 낱말들을 도약대 삼아 자신의 혼잣말을 계속할 뿐이라는 것이죠.
이는 책과 독자의 관계로 비약해서 해석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책과 저자가 갖고 있는 권위의 자장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 책을 읽고 어떻게 이해할 지는 결국 독자의 몫이 되는 것이니, 권위란 책이나 저자가 아닌 독자에게 있으며, 독자는 해석에 얽매일수록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 부조리의 특성이란, 보다 깊이 검토해 보면, 이 세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모든 것, 정당한 모든 것에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결국 다른 것들 못지 않게 객관적인 약간의 특질들과 사실들을 드러내 보인다.(87~88쪽)'
이번 세미나를 통해 용어를 보다 엄밀하게 사용하여 세미나에 임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보았으며,(그러면 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워 세미나가 위축된다는 부작용이 있긴하지만.. 내공을 쌓아보시죠.) 초현실주의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추신. 채운쌤의 피드백을 반영하지 못하여 부조리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며, 독자에게 자유롭게 해석할 권위가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중구난방 기억되던 이야기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좀더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됩니다. 잘 읽고 갑니다.
3조에서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그리고 유쾌하게 이야기는 나눈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할 때 개념의 의미와 제시된 맥락 등을 잘 봐야하는데, 우린 각자의 전제에 기반하여 접근하는 경우가 많지요. 가장 흔한 경우는 저번에 읽은 학자나 예술가가 쓴 개념과 의미를 다음 번에 읽을 책에 적용하는 것이고, 그래서 망각의 능력이 필요하다는..ㅋㅋ 초현실주의자들이 얘기하는 무의식, 연상 등은 기존의 개념이나 틀을 깨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전 이들이 얘기한 수동성과 수용성도 와닿았는데요. 지성을 통해 기존의 습대로 규정하기에 앞서 무의식 등을 통해 떠오르는 걸 듣고 보면서 규정성을 해체하고 다른 길로 나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측면에서 말이죠. 수빈샘의 공부에 대한 다짐과 함께 깔끔하게 잘 정리한 후기 감사해요.👍😊
부조리한 내용 전혀 없이 초현실주의를 현실적으로 잘 정리해 주셨다!는 소감 적습니다 ㅎㅎㅎ 소설의 묘사에 관해 나눈 내용이 2조와 사뭇 달라 흥미로워요. 우리는 죄와 벌은 그런게 아니다 묘사가 아무 의미없는 나열이 아니다 이거슨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일 뿐이다 - 이런 어조로 ㅋㅋ 소설 방어에 한마음이었네요. 이번 학기 '거의' 올 출석을 달리는 3조 열의는, 3조 만능키인 '수련을 오래하다보면 느껴질 것' 이란 태도 (칸딘스키 때 버전 '열심히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에서 보다 진하게 느껴집니다. (최고) 재밌게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해요 🙂
( ̄︶ ̄)↗ 수빈샘, 수고 많으셨어요~~
세미나 시간에 조원들의 중구난방 흘러가는 토론을 교통 정리해 주고, 논의할 주요 키워드를 잘 붙들고 질문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생각이 앞서 나가거나 맥락에 맞지 않은 의식의 흐름을 주체하지 못하는 게 늘 고민거리입니다.
그래서 거리를 두고 맥락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수빈샘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반성-열의-재미-다짐 모든 게 다 들어간 이번 후기까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균열, 파문, 부조리의 논의가 이번 세미나에세 다시금 기억이 나네요. 초현실주의가 가지고 있던 비전은 그 시대의 상황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단 생각이 드네요 후기를 읽으며 예술은 균열과 부조리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서 창조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생기세미나를 하며 공부하는 이 순간 동시에 후쿠시마에서 바다에 방류되는 어마어마한 오염수와 맞닺트리는 부조리의 순간. 과연 예술적인 선택은 무엇일까요? 집회에 나가 행동하는 것. 고흐를 보며 사유하는 것, 아님 둘다? 쓰다보니 자동기술처럼 되버렸네요 ㅎ 나의 신체를 관통하는 힘을 찾아가면 되겠지요! 잠깐 결혼식도 가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이래저래 바쁜 날이 될 듯. 댓글이 왜 이러지 후기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