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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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을 처음으로 본 장소는 직장이었는데요. 본점 로비에 TV 및 자동차 번호판들이 쌓여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조물이 생뚱맞게 있었습니다. 이것의 전면은 오래된 나무, 철골 등으로 엮은 문처럼 보였고, 측면과 후면은 낡은 TV, 자동차 번호판들로 가득했지요. 유리를 활용하고 공간의 여백을 잘 살린 건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작품은 사람들에게 생뚱맞은 느낌을 주면서, 매우 어색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바로 백남준 선생의 <동대문(1995)>인데요. 해설에 따르면, <동대문>은 우리 역사를 상징하는 동대문을 첨단 매체인 비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재현함으로써 우리의 전통과 번영을 이룬 산업화의 현장을 보여준다고 되어있고요. 설명 뒷부분에는 이 작품이 전통과 현재의 공존과 함께 금융산업의 미래를 이끌 산업은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이 작품은 아주 드물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작동했지요. TV와 비디오들을 켜야 작품의 기능을 제대로 하는데, 직원 대부분은 실제 이를 본 적은 없고 홍보물에 찍힌 사진을 통해서만 이 작품의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리 등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채 본관에 거의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던 <동대문>은 언젠가 아무도 모르게 별관으로 옮겨졌지요. 별관에서는 더 무관심하게 배치되어, 직원들이 출입하는 길목에서 방해물로 작동 중이랍니다. 백남준 선생님은 예술에서 관객과의 소통, 관객의 참여에 그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의 작품이 사람들의 눈길도 받지 못하고 흉물처럼 방치된 일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한편으로는 예술작품이 그 자체로 본질적인 의미가 있는 유일무이의 소유물이라기보다는 관객과의 사이에서 작동하는 무엇임을 잘 보여줍니다. 관객이 없으면,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작품일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산업은행 별관에 전시 중인 동대문, 1995>
조별 토론에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백남준 선생님은 여러모로 부러운 분입니다.^^ 일단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유복한 환경, 뛰어난 재능, 게다가 작품을 만들면서 만난 숱한 인연들, 실험정신 등. 물론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그의 노력과 열정이겠지요. 우리에게 이런 조건과 상황이 놓인다면, 과연 새로운 예술적 실험에 시간과 돈, 노력을 쏟아부을지 의문입니다. 우리에게 백남준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그의 활동 영역은 더 다양하고 예술의 경계도 넘어갔습니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1950~60년대는 먹고살기도 힘들고 정치적으로도 닫혀있던 시대이기에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에게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고요. 해외에서 훨씬 더 유명했던 그는 1984년에 KBS에서 방영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말년이 되어야 국내 대중들에게 알려집니다. 백남준 선생이 어떤 분인지 얘기하려면 존 케이지와 1960년대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Fluxus)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네요. 먼저 존 케이지는 음악이란 무엇인지 원론적인 걸 질문하게 만드는 예술가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연장의 소음, 관객의 웃음과 숨소리 등으로 구성된, 그러나 악장별로 나누어져 있는 <4분 33초>나 존 케이지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하여 실연한 <Water Walk>를 보면 “이건 뭐지?”, “이런 것도 음악인가?”, “웃기고 재밌네.” 등의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연주, 활동 등을 통해 근원적인 걸 질문합니다. 음악이 무엇이고, 어떤 것들이 소리를 구성하는가, 피아노는 현악기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음악과 소음을 구분 짓는 건 무엇인지, 소리와 침묵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사유를 촉발하며 음악과 음악이 아닌 영역의 경계를 해체해버리는데요. 우리는 생각보다 소리, 음악에도 규정적인데 평소에는 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지요. 존 케이지의 음악과 공연은 음악과 소리, 침묵은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님을 얘기해주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합니다.
<Water Walk, 존 케이지, 1960>
존 케이지는 스즈키 다이세츠(1870~1966)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로 서양에 선(禪)을 전파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분입니다. 선불교는 중국의 독특한 불교로 표상의 질서가 작동하지 않음을 말하고, 이분법의 경계를 넘어가는 사상입니다. 우리가 가장 익숙한 질문인 부처는 무엇인가를 보면, 여기에는 이미 부처가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하게 되지요. 이런 질문을 한 제자에게 “부처는 똥 막대기”라고 동문서답 같은 답을 하거나 아니면 제자를 매로 때리는 행위 등을 통해 질문을 다시 구성하도록 합니다. 선(禪) 사상은 존 케이지와 백남준 선생을 이어주는데요. 그는 어떤 대상을 탈영토화하는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예컨대 1961년에 선보인 <머리를 위한 禪(1961)>에서 그는 머리카락과 손, 넥타이 등에 붓처럼 잉크를 묻혀 바닥에 놓인 종이 위에 기어가면서 천천히 선을 그으며 신체의 미세한 움직임의 흔적들까지 나타냅니다. 이럴 때 머리, 손, 넥타이는 뭘까요? 들뢰즈식 표현으로 하면 어떤 기계로 작동하는 걸까요? 이외에도 백남준 선생은 <TV를 위한 禪(1963)>, <걸음을 위한 禪(1963)>, <필름을 위한 禪(1965)> 등 선(禪) 사상을 담은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머리를 위한 禪, 1961>
백남준 선생을 얘기할 때 플럭서스 운동을 빼놓을 수 없지요. 1960년대 초 독일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는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플럭서스는 근대적 예술 체제를 해체하고 예술의 존재 방식을 바꾸려고 하는 운동인데요. 근대에는 예술이 상품화되면서 작품이 예술가로부터 분리되고 창작 과정은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소외된 활동이 되었지요. 자본에서 아예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하고 이걸 배제하는 것도 답은 아니지만, 이들은 현금을 내고 사가는 작품, 순전히 과시하고 경쟁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예술의 세계에서 새로운 길을 내고자 했습니다. 다양한 실험적 퍼포먼스 등을 통해 예술의 다른 존재 양식을 구현합니다. 퍼포먼스는 상황적 맥락을 떠날 수 없고 우발적이면서 재생 불가능하며, 관객의 참여가 중요하기에 플럭서스 운동에서 특히 중시되었죠. 플럭서스(Fluxus)는 어원적으로 ‘변동’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인간 내부의 잠재적인 힘, 항상 유동적이며 움직이는 힘 등을 뜻합니다. 이 운동은 물리학, 전자기술, 프로이트, 마르크스, 선불교 등 다양한 것들과 접속하면서 진행되었고요. 예술을 더 이상 대상의 재현이나 오브제 구성의 활동으로 보지 않으며, 실험, 발명, 관계, 창조, 유희의 관점으로 바라봤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은 마음의 움직임과 마음의 네트워크로 이해되기도 했지요. 백남준 선생이 말씀하신 심령력과 관련되는 부분이네요.^^
백남준 선생도 1958~1960년경 독일에서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등을 만나면서 플럭서스 운동과 결합하는데요. 이 시기에 그도 기존 예술개념을 어떻게 넘어갈 것이며, 예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모색합니다. 그는 플럭서스 운동의 예술적 실천에 부합하기도 했지만, 특히 매체적, 기술적, 문화적 실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TV 수상기 등을 활용한 그의 작품에서 이를 엿 볼 수 있지요. 또한 그는 변동성, 비결정성을 확장할 때 몽골의 유목주의, 타타르족 등의 샤머니즘도 큰 역할을 합니다. 몽골제국은 특이하게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는 등 하나의 체계로 통일하려고 하지 않는 제국인데요. 이를 진정한 세계제국의 탄생으로 봐도 될 것 같아요. 조별 토론에서도 유목에 관한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유목은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지요. 유목은 어디에도 중심을 형성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몽골제국이 하나의 종교나 체제로 통일하지 않는 것처럼 중심으로 동일화하려는 욕망이 없는 거지요. 몽골인들은 어떤 장소를 떠날 때 무로 만들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정주민의 눈에는 파괴로 보이겠지만요. 이들은 집착이 없어서 가로지를 수 있었고, 백남준 선생은 매체도 가로지르는 것이 가능한 유목의 관점에서 봤습니다. 한편 그는 샤머니즘 등 고대적 가치에도 주목했는데요. 무당은 보이지 않는 것을 이어주는 매개자로 예술의 존재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의 문제의식은 그를 매체와 함께 다양한 시도를 하도록 추동했습니다. 그는 영상매체 등 과학기술을 넘어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심령력을 들었는데요. 우리에게 예술은 보고 듣고 감상하는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예술을 소통과 작동으로 보는 관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백남준 선생은 어떤 틀과 경계에 갇히지 않고 그야말로 퍼포먼스,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했지요. 이 중에서 몇 개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는 가장 오래된 빛의 원천 중 하나인 달을 TV 화면으로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백남준 선생은 비디오를 통해 시간을 공간적으로 재조합하기를 즐겼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시간을 잘 보여줍니다. TV가 없던 시절 달을 보면서 이미지를 보고 이야기를 상상하던 상황을 TV 시청으로 비유한 것 같네요. <TV Buddha(1974)>는 불상, TV, 캠코더로 이루어진 설치작품인데요. 캠코더는 실시간으로 부처를 계속 찍어 TV 화면으로 송출하며, 부처는 이를 바라봅니다. 이때 찍는 순간과 송출된 이미지가 화면에 뜨는 순간 사이에는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요. 부처가 지금 보고 있는 그 이미지는 과거의 이미지입니다. 여기에서 부처는 시시각각으로 소멸해가는 현재를 보고 있는데,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순간인 무상을 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화면 속 부처의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불상 자체도 아니고 부처 이미지도 아니며, 그저 전파가 만들어낸 환영인데요. 이 작품은 과거, 현재, 미래도 우리의 상일 뿐이며 실체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이와 함께 나와 상, 시간도 실체적 존재가 아님을 잘 보여줍니다. <TV 정원(1974)>은 우거진 수풀 속에 TV가 꽃처럼 피어있는 정원입니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영상은 정원과 일체가 되면서, 계속 변화하는 전자적 영상과 자연이 내뿜는 초록색이 어우러지도록 했는데요. 이 작품은 자연과 문명의 경계를 묻지요. TV는 자연일까요? 자연과 문명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백남준 선생의 작품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규정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경계를 넘어섭니다. 그는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아베를 떠올리며 창조성은 어느 분야에서도 가능함을 강조했는데요. 엔지니어의 창조성은 자주 드러나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지요. 경계를 넘어가고 창조를 하는 건 어느 분야에서도 가능하기에, 우리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충분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고요. 재능이 없고,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건 우리의 게으름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요. 승현샘이 후기에 남겼듯이 백남준 선생의 예술 및 실험 등을 공부하고 그에 걸맞게(?) 크크랩팀도 오염수 방류 규탄 집회에 가서 크크랩 퍼포먼스를 펼쳤답니다.^^ 앞으로도 공부를 통해 다양한 실험과 실천을 시도하겠노라고 다짐해봅니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 1965>
<TV Buddha, 1974>
<TV 정원, 1974>
# 3학기 9주차(9.9) 수업 공지
1) 백남준 선생님의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를 다 읽어옵니다. 새롭게 캐치한 부분, 같이 얘기하고 싶은 내용에 대해 공통과제를 A4 반장 이상 작성하여 금요일 저녁 8시까지 올려주세요. 그리고 에세이를 어떤 주제로 쓸 것인지 공통과제 아래에 작성합니다.
2) 에세이 주제는 작가, 작품, 관객의 관계 등과 관련하여 잡아봅니다. 예컨대 백남준 선생님의 경우 작품에서 관객의 참여를 중요하게 보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관객의 참여인지, 관객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질문이 나올 수 있지요.
3) 에세이 발표는 2주에 걸쳐, 9.16, 9.23에 걸쳐 진행합니다. 대신 10.7에 방학이고요. 16일엔 오후 1시부터 오후 8시까지 10명 발표, 23일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나머지 샘들 발표할 예정이니 참고하세요.
4) 9주차 간식/정리/후기는 주영, 희윤샘, 혜령샘이 담당입니다.
토요일에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만나요.^^
와우 !!!‘ 전공도 아니신 주영샘의 백남준 관련 이야기에 저도 급반성모드 ㅠㅠ
공지 잘읽었어요 넘나 감사해요. 그나저나 에세이는 ㅠ
덧 , 에세이 발표 일자가 9. 16, 9월 23 아닌가요 ? ㅎㅎ
어머나....ㅎㅎㅎ 제가 10월이라고 했네요.. 에세이를 미루고 싶은 무의식 작동했나봐요.^^ 9.16, 9.23입니당...ㅋㅋ 다시 수정할께요.😉
조별 토론에서도 샘들의 첫 마디가 백남준 선생님은 그냥 완전 우리랑 다른 분인거 같다. 그냥 천재다 .. 였을 정도로, 백남준 선생님의 그 방대한 지식과 사유, 너무도 선지자적인 비전 등이 놀라웠습니다.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이야기들이 선문답같기도 했고 한편으론 근원적 차원에서 꿰어지는 듯한 느낌도 받았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텍스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독특한 시간 - 백남준 선생님은 비디오가 실을 잣는 것처럼 시간을 만들어낸다고 하셨는데 어쩌면 그와 비슷하게 - 을 체험하는 것으로써의 이 책과 접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산업은행에 설치된 작품과 더불어 수업 내용을 차분하고 명쾌하게 잘 정리해 주시고 게다가 이렇게 따끈따끈하게 빠르게 올려 주셔서 토욜 강의를 잘 복습했네요. 감사합니다 🙂
꼼꼼한 정리 감사합니다. 그런데 산업은행의 <동대문>이 다시 켜질 날이 있을까요? 그것도 로비가 아닌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공예술로 가면 어떨지.. 제가 은행장이 되면 시도해볼텐데요 ㅋㅋ . 이생망이니 다음에 기회 있으면 하겠습니다~~ 백남준 선생님은 금기와 경계를 넘어 말처럼 세상을 달리신 분 같아요. 65년에 클뤼버에 보낸 편지에서 핸드폰을 언급하셨다니.. 놀랍습니다. 이 정도의 혜안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으면 엘론 머스크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셨을 듯.. 앞으론 신체화된 미디어 아트가 등장하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흥미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