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에 뒤따른 날씨는 무지 덥고, 그런 와중에 칼부림 사건으로 세상은 혼란스러운 것 같고, 게다가 칸딘스키의 책은 어렵고, 이런 삼중의 고통에도 세미나 시간은 지나갔네요^^ 저는 유독 이번 과제를 하는 시간이 힘들게 느껴졌는데요. 생각해보니 칸디스키의 말이 현실과는 거리가 너무 먼 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의 책무로서 “인간의 영혼을 발전시키고 순화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이라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암튼 칸딘스키의 이런 생각이 어떤 방법으로든 영향을 준다면 의미 있는 것이겠죠. 그리고 칸딘스키의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이 회화에 국한 된 것만도 아니니까요^^ 저희 2조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 내적 필연성(객관성) – 보편성 획득!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내적 필연성”인데요. 칸딘스키는 “내적 필연성”의 3가지 토대는 개인의 개성, 예술의 시대성, 영원성이라고 해요. 이 중 마지막, 개인과 시대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 순수예술, 영원성을 획득한 예술이라 할수 있는데요. 이것이 예술의 고유성, 보편성이 이른 작품이라 할수 있지요. 가령 이집트 조각이 그 시대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감응을 주는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이런 “내적 필연성”, 인간의 깊은 심성에 가닿는 회화의 구축방식이 무엇일까요? 모든 형태에는 각각의 악기처럼 고유한 내적음향이 있고, 색에도 색조라는 음향이 있죠. 피아노 건반이 들려주는 리듬과 같은 것이죠. 이런 형태와 색채를 어떻게 결합하는가는 중요한 화음의 요소가 되는데요. 형태를 배열, 방향, 크기에도 달라지며, 이런 형태에 어떤 색이 이웃하느냐에 따라 음향이 달라지기도 하죠. 노랑색 원인가, 노랑색 삼각형인가? 같은 색이지만 느낌이 달라지죠. 이전 그림의 형태를 보면 인물이나 풍경등 대상이 명확히 표현된 그림들이었는데, 칸딘스키의 회화에서는, 모두 원이나 삼각형, 직선 이런 것으로 그려진 추상형식이죠. 기하학적 형태에 색을 구성적으로 구성한 회화인데요. 대상을 재현하던 ‘구상적 형태’에서 ‘기하학적 형태’로 변화라 할 수 있죠. 대상을 주로 그리던 것에서 추상의 형태로 변화라 할 수 있는데요.
○ 칸디스키는 왜 추상회화로?
칸딘스키에게 ‘추상’의 회화가 왜 중요했을까? 이런 추상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정화 시키고 고양시키는 것으로 작동한다는 걸까? 왜 형태가 추상이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남는데요. 괴테는 <색채론>에 대한 연구에서 색채를 체계화하고 종합분석하였는데요. 여기서 이런 의문점을 다소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있는데요. 괴테는 색을 탐구하기 위해 자연에 대해서도 깊이 관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 그 자체의 속성 있다고 보았는데요. 양극성, 즉 끌어당김과 밀침과 같은 추진력의 운동 같은 것이죠. 그런데 대상이라는 형태(규정된 형태)에서는 그런 속성을 소멸하게 된다고 하네요. 가령 ‘사과’를 그렸다고 할 때, 사과의 형상에서는 그런 운동성이 소멸된다고 합니다. 사과라는 형상은 이미 알고 있는 표상이죠. 그리고 지성이 대상을 물질로 고정 시키는 것에는 자연이 지닌 그 자체의 상호작용의 운동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기존의 관념이 제거된 상태에서 무심하게 보아야 하는데, 어떤 형상에서는 그것을 떠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고... (알듯 말듯^^)
○ 칸딘스키는 색에 대해 제멋대로(주관적) 쓴 건 아닐까?
칸디스키가 도식(‘노랑과 파랑, 하양과 검정이 대립적으로 심성작용을 일으키는 색의 내적 성격과 빨강과 초록, 주황과 보라의 보색관계로서 색의 물리적 성격’이라는 4가지 대립구도)을 통해 설명하는 색에 대한 논리는 전반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는데요. 그러나 어떤 샘이 초록색에 대한 설명에서는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 라고 했어요.
“초록색은 지루한 효과(그러므로 수동적 작용)을 가져온다. 이 성질에서는 일종의 비만과 자기 만족의 냄새가 풍긴다. 그렇기 때문에 색의 영역에서 절대적 초록은 마치 인간세계에서 소위 부르주아 계급에 해당한다. 즉 그것은 부동적이고, 자기만족적이고 모든 방향에서 제한을 받는 요소인 것이다. 이 초록은 뚱뚱하고 매우 건강해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암소와 같다. (91쪽)
비만, 자기 만족적 냄새, 암소 초록색이 이런 음향이라니! 사실 저도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 그런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색채론>을 쓴 괴테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예를 들면 보라색의 경우, 나라마다 보라색이 약간씩 다르다고 하는데요. 칸딘스키의 주관성이 개입된 것으로 객관성이 없는 것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 칸딘스키의 3가지 그림 <인상>, <즉흥>, <구성>
<인상>은 세잔처럼 보자마자 대상을 감각적으로 그린 것이며, <즉흥>은 대상이 모호하며 꿈처럼 떠오르는 상을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내면적 과정을 무의식에서, 갑작스럽게 표현한 것이며, <구성>은 내적 가치의 논리로 구성한 것으로 “감정”, 영혼을 촉발하는 교향악으로 이해되는데요. 그림에서 <구성>은 딱 보아도 구분이 되는데, <인상>과 <즉흥>이 어떻게 다른가? 구분하기 어렵다! 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즉 인상이라고 해도 화가의 감정이 개입되어 내적 영혼이 그림에 드러 날텐데, <인상>을 외적인 것으로만 볼 수 있는가? 그림으로 ‘<인상>과 <즉흥>을 구분하기 힘들다. 제목 빼고 볼 때 구분이 안 된다’는 이런 의견이 있었어요^^ (사실 이건 질문하려고...했던 것)
☞ 더운 날씨가 계속되네요.. 규문을 몇 번만 왔다 갔다 하면 가을이 오겠지요! 샘들!! 건강한 모습으로 토욜에 만나요^^
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삼중고가 있었지만, 그래도 토론시간에 얘기하면서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 풀리기도 하고 같이 헤매는 재미가 있었던 같아요.^^ 1조에서도 내적 필연성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이는 예술가의 작업 논리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칸딘스키가 구축한 작업 논리가 굉장히 엄격하고 지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색에 대한 규정은 주관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색채를 코드, 언어처럼 사용한 것이 실험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색채언어와 형태언어의 다양한 구성과 조합을 통해 대상을 벗어나 회화의 가능성을 더 확대하였는데, 이는 정신성을 고양시키도 했지요. 감정에서 출발하여 지성의 방식을 활용하면서 영성으로 향하는 길을 보여준 칸딘스키의 이론과 작업을 통해 지성과 영성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핵심적인 주제에 대해 논의한 토론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기 덕분에 저번주 수업 내용 복습 잘 했습니다.👍 감사해요.😊
지난 시간에 두서없이 여러가지로 오간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적필연성을 저는 화면 논리라고 할 때 그게 표면적인 형식논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 것 같아요. 칸딘스키가 인상 즉흥 구성을 구분하며 구성이 논리나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구성이다라고 말한 측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지지난 시간에 칸딘스키의 정신성이 영성의 측면과 닿아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고 느껴요. 감정에 주목한 것이 저는 칸딘스키가 끊임없이 초월이나 본질 등의 말로 설명하고자 했던 어떤 보편성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적필연성은 그러한 보편성에 가닿을 수 있는 회화의 화성론 - 회화의 기본언어를 정립하고자 한 시도가 아닐까란 생각이 드네요. 순이샘께서 잘 정리해 주신 덕분에 토론 내용들이 훨씬 구체화되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