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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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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바실리 칸딘스키에 이어 파울 클레를 만났습니다. 파울 클레의 <현대미술을 찾아서>는 그가 1924년 예나 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회 개막에 즈음해 그가 발표한 강연의 초고로 준비되었던 글이라고 합니다. 이 짧은 강론은 술술 읽혔지만, 사실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미술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했던 클레의 결과물이지요. 코드에 관해 규정하고 엄격한 논리를 구성한 칸딘스키와는 다르게 클레는 시도하지 않은 형태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끊임없이 형태의 차이를 만들었는데요. 어린아이 그림 같은 순수성도 보이고, 한편으로는 선과 색채의 운동을 통한 시각적 쾌감도 주는 등 다양한 면이 존재하여 추상화지만 클레의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규정으로 꿰뚫을 수 없기에, 비평하기에는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 공감도 되고 이해가 잘 되었던 것 같지만, 개념이 뚜렷하게 잡히지 않아서 공통과제를 작성하는 게 더 어려웠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이항 대립적이고 규정이 명확하면 심판자의 위치에서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더 용이합니다. 우리가 흑백논리나 선악 구도에 기반하여 판단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의 사유 역량이 부족하고, 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으름에 기인한 건 아닐까 싶네요. 채운샘은 토론할 때나 글을 쓸 때 미세하게 보고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지요. 언어에 속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흑백의 싸움보다 흑흑(黑黑) 또는 백백(白白)의 논쟁이 더 문제가 된다고 하셨는데, 우리의 토론, 의견, 얘기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어떤 개념이나 주장에 대해 각자의 의견이 서로 흑이라고 주장할 때 싸움이 촉발되지요. 다르면 너는 흑, 나는 백이 되어 갈등이 일어날 일이 없네요. 이런 갈등에 노출되었을 때(삶에서 우린 이런 일을 자주 만나지요.^^) 서로에 대해 비난하는 대신, 싸우고 있는 개념에 대해 세밀하고 정교하게 접근하면서 차이를 만들고 갈등을 통해 개념에 더 깊이 들어가 보아요.^^
현대 철학자들이 주어진 것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물어보는 것처럼 클레도 회화의 발생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클레는 회화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즉 발생을 문제화하면서 회화의 언어와 구성에 대하여 통찰하고 실험합니다. 클레는 회화의 언어는 어디에서 오는지를 자연의 지평에서 봤는데요. 선, 명도, 색의 발생도 자연을 기반으로 설명합니다. 선은 가장 제약된 요소로 크기, 측정 가능함을 특징으로 하고요. 명도는 흑과 백 사이 농담의 위계로 무게의 특징을 보입니다. 세 번째 요소인 색은 질로 정의할 수 있지요. 클레는 선, 명도, 색을 통해 세 가지 형식적 수단인 크기, 무게, 질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클레는 현상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 에너지이고, 이 에너지가 회화 언어인 선으로 전이되며, 이 선의 운동을 통해 드러나는 게 형태라고 봤는데요. 운동 양상에 따라 선은 다양하게 형성되며 선에서 선까지 팽창하며 면이 나타납니다. 클레에게 운동은 형태의 근원으로 봤으며 운동을 통해 ‘형태 되어짐’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한편, 명도를 통해서는 에너지의 양에 의한 무게와 균형을 얘기하지요. 시각적으로 가볍거나 무겁게 느껴지는 효과를 명도로 보여줍니다. 이 명도는 개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요. 예컨대 검은색 면에서 검은색 에너지로 무거움을 나타낼 수 없는 것처럼요. 한편 색은 질이기도 하지만, 색가(色價)뿐만 아니라 명암도 지니고 있기에 무게이기도 하고, 한계와 넓이, 범위가 있어 크기이기도 합니다. 세 가지 요소는 혼합되어 있고 이들로 수많은 배합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가능성이 존재하지요. 여기에서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지 구성의 문제가 나옵니다.
<현대미술을 찾아서>에서는 구성(Construction)과 구도(Composition)를 구분하는데요. 칸딘스키도 구성(Composition)을 얘기해서 두 화가의 구성은 어떻게 다른지 질문이 나왔는데, 의미는 비슷하다고 합니다. Construction을 구축으로 Composition을 구성으로 봤을 때, 전자는 총체적인 것, 예컨대 건축물처럼 완성품에 주목합니다. 건축물은 한꺼번에 주어지고, 이것이 건축되는 과정을 볼 수 없습니다. 반면 구성은 과정을 공유합니다. 음악을 떠올리면 되는데요. 음악은 한순간에 모든 걸 펼쳐낼 수 없죠. 음악은 시간에 걸쳐 흘러나옵니다. 클레는 회화에서 구성을 중시했습니다. 그림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운동을 통해서 보게 하는 거죠. 생각해보면 우리의 눈은 한꺼번에 모든 걸 파악할 수 없는데요. 나도 모르게 눈이 운동하며 그림을 구성합니다. 재현이 명확한 그림일수록 중심을 통해 한 번에 그림을 파악할 수 있지요. 반면 클레의 그림은 시각적 운동을 통해 화면을 완성하도록 합니다. 대중의 구성하는 눈이 작품을 완성합니다. 클레는 그림의 공간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관객의 눈을 통해 형성한다고 말합니다. 작품의 구성은 작가가 아니라 대중의 몫이지요. 작품을 완성하는 궁극적인 역량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대중에게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대중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ㅋㅋ 칸딘스키와 클레 모두 대중을 중시했는데요. 대중은 작품이 작품으로서 살아가도록 하는 자로 작품은 대중을 만나면서 새롭게 탄생하기도 합니다.
<Affected Place, 파울 클레, 1922> <Dream City, 파울 클레, 1921>
그렇다면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 걸까요? 칸딘스키가 작품을 매개로 대중을 견인하는 자로 예술가를 규정했다면, 클레는 예술가를 나무의 몸통으로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 수액을 전달하는 자로 봅니다. 예술가는 신처럼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 단지 통로, 겸손한 중개자일 뿐입니다. 칸딘스키에게 예술가는 고독한 돈키호테와 같은 청기사로 상징된다면, 클레에게 예술가는 천사로 비유할 수 있는데요. 천사는 경계를 넘어가는 자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천사는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입니다. 회화에서 천사는 날개가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는데,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인 만큼 다양하게 변주되었습니다. 천사는 이곳과 저곳을 매개하는 전령과 같은데, 예술가도 이런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술가는 그 시대에 속하지 않으면서 그곳을 떠나지 않는 존재이지요. 몸은 떠 있지만, 시선은 아래로 향합니다. 즉 비가시적인 힘과 관계하면서 가시적인 세계를 떠나지 않습니다. 클레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는 발터 벤야민에게 영향을 주었는데요. 벤야민은 “이 천사가 마치 자신이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에서 금방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또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틀림없이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벤야민은 과거의 더미와 잔해들을 보며 미래를 향해 날아가는 역사가의 운명이 천사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네요.
<Angelus Novus, 파울 클레, 1920>
클레는 운동에서 형상이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형태는 운동을 통해 발생하지요. 화가는 존재하는 것들의 운동을 회화의 언어로 단순화하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클레는 그의 작업 노트가 잘 보여주듯이 우주에서 실제 어떤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균류, 식물 등 다양한 생물의 움직임을 실제 공부하고 탐구했고요. 학생들과 실험도 많이 했지요. 그의 작품 <눈 내리기 전(Before the Snow)>는 우리의 선입견에 균열을 일으키는데요. 보통 눈과 관련하여 흰색, 회색, 연한 푸른빛을 떠올리는데, 이 그림은 핑크색, 붉은색 등을 사용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생각해보면 눈을 받아들이는 땅과 내부에는 따뜻한 기운이 존재합니다. 음양의 원리처럼 눈에 보이는 것엔 보이지 않는 다른 힘의 운동이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요. <장미 가든>은 장미가 가득한 정원에서 발생한 정동을 감각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으로 여기에는 우리가 아는 장미꽃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미의 존재가 공간을 어떻게 물들이는지, 공간 에너지의 운동이 잘 드러납니다. 개인적으로 색감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편, 클레는 모든 색은 회색에서 출발한다고 얘기했는데,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으로 여겨졌던 회색을 재정의합니다. 빨강과 녹색, 노란색과 보라색, 파란색과 주황색 등 보색을 섞으면 회색이 되는데요. 그는 회색을 모든 색을 품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차원으로 봅니다. 회색은 비규정적인 상태인 카오스, 수많은 유(有)를 품은 무(無), 분화되지 않은 수정란과 같습니다.
<Before the Snow, 파울 클레, 1929>
<Rose Garden, 파울 클레, 1920>
러시아 미술은 오랫동안 이콘(Icon) 위주로 지속되어 왔었는데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후 혁명가들은 경제적, 정치적 해방뿐만 아니라 감수성의 해방에도 주목했었지요. 레닌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예술가들이 많은 실험을 했습니다. 혁명 전부터 1920년대에 걸쳐 소련에서 전개된 예술운동인 러시아 구성주의는 타틀린이 1913년에 시작한 철판이나 목판에 의한 부조를 ‘구성’이라고 부른 것을 발단으로 로드첸코 등 많은 예술가가 동참하여 진행되었습니다. 회화, 조각보다는 철과 글라스 등 공업 생산물을 사용하거나 건축물, 디자인, 무대 등 사회적으로 활용되는 분야에 집중했고요. 로드첸코는 자신을 Artist가 아니라 Worker라고 부르며 건축과 실내장식 등의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러시아 구성주의 외에도 쉬프레마티슴(Suprematism)도 눈에 띄었죠. 말레비치는 1913년 백지에 검은 정방형만 그린 작품을 발표하여 화제를 불러왔고, 이 작품을 계기로 감각의 궁극을 탐구하는 쉬프레마티슴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이 시기에 영화적 실험도 펼쳐졌는데, 대표적 작품으로는 몽타주의 활용이 잘 드러난 에이젠슈타인의<전함 포템킨>과 인간주의 시선을 넘어간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꼽을 수 있네요. 아직 이콘의 감수성에 머물렀던 러시아 민중들에게 이런 실험적 작품들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는데요.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각종 예술적 실험은 중단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갑니다. 이 시기에는 노동자의 전형, 사회주의의 이념을 담은 작품들이 형상화됩니다. 채운샘은 민중이 알 수 있는 것만 하는 것과 민중을 일깨울 수 있는 걸 하는 것, 둘 중에 뭐가 더 민중적인 거냐고 질문하셨는데요. 우리도 작품을 읽거나 글을 쓸 때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로드첸코, 사진작가 게오르기 페트루소프, 1929>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1915>
<구소련 포스터, 1933>
# 3학기 6주차(8.19) 수업에 대해 공지합니다.
1) 프랑크 모베르의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를 다 읽어옵니다. 책의 제목과 빨간색이 강렬한데요. 베이컨과의 만남이 기대됩니다. 새롭게 캐치한 부분, 같이 얘기하고 싶은 내용에 대해 공통과제를 A4 반쪽 이상 작성하여 금요일 저녁 8시까지 올려주세요.
2) 6주차 간식/정리/후기는 1조 반디샘, 2조 성지샘, 3조 정우샘께 부탁드립니다.
무더위와 함께 안전에 유의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만나요.^^
주영샘의 상쾌한 정리 덕에 지난 시간 배운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 펼쳐집니다. 저는 바우하우스 예술가들 중에서 칸딘스키와 라즐로 모홀리나기 작품은 많이 봐왔던 반면, 상대적으로 파울 클레 작품들은 유명한 몇개를 제외하곤 꼼꼼하게 보진 못했던 것 같아요. 채운 샘께서 극히 일부를 보여주셨음에도 그 다양한 실험들이 얼마나 방대한지 짐작케합니다. 자연물에 대한 형태 탐구는 지금은 디자인이나 예술 기초조형 수업 등에서 많이 해서 익숙하지만 당시 바우하우스 교육 방식은 큰 비전속에서 정말 혁신적이었던 거 같아요. 동시대의 러시아 구성주의를 보며 구성적인 것과 구축적인 것의 차이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네요~ 정성어린 꼼꼼한 정리 감사합니다 😍
오늘도 후기를 읽으며 수업의 내용을 다시 반추할 수 있었네요. 특히 "클레는 운동에서 형상이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형태는 운동을 통해 발생하지요. 화가는 존재하는 것들의 운동을 회화의 언어로 단순화하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클레가 이미지의 운동을 통해 생겨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정신과 힘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과 회화의 발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어요. 발터 벤야민이 '새로운 천사'를 '역사의 천사'로 해석해 낸 것처럼 작품과 새롭게 만남을 가지려면 클레가 기다린 도래할 대중이 되어야겠지요? ^^ 오늘도 공부가 되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