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쓰며>
이번 에세이의 과제는 2학기에 배운 철학자들의 개념을 ‘예술과 관련하여’ 잘 소화해내는 것이었습니다. 개념을 정확히 숙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해보는 것이 과제의 목표였죠. 늘 그렇지만 철학자들의 개념은 우선 이해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고, 조금 이해를 했다면 그 개념의 해로움과 위대함에 매료되어, 나만의 생각따위는 나란히 놓기엔 초라해보여 개념을 정리하는것에 그치기 쉽습니다. 그마저도 한참을 개념을 풀어보다가, 나의 문장으로는 본문이나 해제만큼 설명해내기 어려워 좌절하여 괜히 인용문만 늘어가죠. 개념을 잘 소화하자면 정리글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되고, 나만의 해석을 해보자면 내 감상이 작품을 곡해하는 엉뚱한 소리는 아닌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도 같은 어려움을 느끼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저희의 고민이 선생님께도 가닿았는지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우리가 개념의 외연에서 공통점을 찾아서 퉁치려고 한다고 지적해주셨습니다. 철학적 개념과 용어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갖고 놀 수 있으며, 인용을 메꾸는 글이 아니라 자기글에 인용을 이용해서 써야한다고 말씀해주셨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소박하다 하더라도 자기말로 자기밖에 할 수 없는 글을 쓰는 것, 배치나 단어, 표현은 그 다음의 문제라는 것, ‘나’의 언어가 잘 드러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새겨보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의 글을 나누며>
선생님들의 글을 나누며 2학기동안 공부했던 개념과 그림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볼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공지글에서 워낙 훌륭하게 정리를 해주셨기에, 채운 쌤의 피드백 중 저에게도 인상깊었던 몇 가지 내용들을 아래와 같이 공유해봅니다.(공지보다 늦은 후기 반성하겠습니다. ^^;)
ㅇ 조르주 바타유 <마네>
- 죽음과 성은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힘. 우리가 마주할 수 없는, 하고 싶지 않은, 삶속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이다. 죽음을 어떻게 경험하겠는가. 성 역시 죽음고 마찬가지이다. 섹스가 자신의 에너지, 에센스를 타인에게 전달하고 소모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신의 죽음을 전제한다. 이 두가지가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불가해한 것이며 여기서 금기라는 문화적 상징이 발생한다. 금기라는 문화로 이 불가해한 영역을 촘촘히 막아내려고 해도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자꾸 무언가를 벗어나려고 하고, 위반하려고 하는데, 그 행위의 극단에 있는 것이 예술이다.
- 그런 점에서 가령 다비드와 고야는 시대 자체가 위반의 시대인, 근대를 넘어가는 동시대의 인물이야. 더 진보적인 사람은 위반이고 덜 진보적인 사람은 위반이 아닌 것이 아니다. 둘다 계몽적인 인물이었고 그 위반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반이다.
ㅇ 미셸 푸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상사 개념을 ‘서로 닮음’, ‘상호 되기’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보다 핵심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반복’한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차이. 반복속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 모네의 그림은 수련을 그린 어떤 작품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련을 반복적으로 그린 작품들 간의 발견되는 차이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 반복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는 유희를 상사라고 한다.
- 우리의 삶도 매일 반복하며 차이를 발생시킨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닮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새 반복이 지치면 우리의 매일은 상사가 아닌 유사/재현으로 전락한다. 매일매일이 똑같게 느껴지는 것 그게 바로 권태다.(매일 매일의 차이를 포착하는 데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ㅇ 모리스 메를로-퐁티 <현상학과 예술>
- 세잔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줬다고 할 때, 보이지 않는 차원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면, 다르게 보라는 말과 같은거야. 지각은 인식을 이미 전제하기 때문에(언어권에 따라 지각되는 색의 스펙트럼이 다르듯, 단어를 통해 선험적으로 인식되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순수한 지각은 없다.
- 그래서 세잔에게 중요한 것은 망각이다. 망각을 통해 기억이 세팅해둔 기존의 인식과 다르게 보고자 했고, 그것이 (기존에)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으로 만나는 것, 체험이 중요하다. 몸은 선험적으로 습득된 관념이 없기 때문에 세상을 만나는 순수한 관문이 될 수 있다.
- 그 결과 세잔과 터너의 그림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망각, 기존의 틀을 무화시키는 노력. 계속해서 보고, 날것의 체험 혹은 죽음을 불사한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내 던졌을때 감각되는 것(이 때의 태풍은 우리가 알고 있는 태풍이나 죽음이나 공포라는 개념으로 관념화될 수 없는 피부로 맞닥뜨리는 체험이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언급이 적어 제외했습니다.)
<종합하는 소회>
올해 크크랩을 시작했던 화두가 ‘감각체험’이었기 때문일까요. 요즘 학교에서도 한 반이 넘친다는 30명이 모여 서로가 골몰한 글을 오롯이 낭독하고, 토론하며 채운샘의 소중한 피드백을 듣는 12시간의 시간 체험이 유달리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먹고 즐기는 것으로 충분치 않아 굳이 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수련을 감내하고자 모인 선생님들과의 시간이 문득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날의 사진들로 소중함을 되새기며 덕분에 생업에 바빠 소홀하며 소원해졌던 마음을 다잡고 3학기는 더욱 열심히 정진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어봅니다.(매학기 먹는 마음이지만요.. ^^)
(에세이 합평을 준비하는 경건한 자세들)
(먹고 치울 시간도 아까워 옹기종기 서서 먹는 크크랩)
(난리통에도 유교 정신은 살아있다)
(그와 대비되는 채운쌤의 혼밥..)
(그런 채운쌤을 보필하는 신우쌤)
(3학기에도 밝고 힘찬 크크랩!)
우리 모두 느끼는 개념 작동의 기쁨과 어려움을 수빈샘께서 잘 표현해 주셔서 글이 정말 와닿았어요 ^^ 개념들이 품은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내 질문 속에 녹여 새롭게 해석하기가 참으로 어렵지만 같이 연습해 나가면 또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ㅎㅎ 후기 감사합니다 😊
힘들게 쓴 에세이를 하루 종일 같이 발표하고 코멘트 듣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충만함과 기쁨이 있는 거 같아요.^^ 그 충만함에는 지적인 것도 있고,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도 포함되지요. 개념 작동을 비롯하여 핵심적인 내용을 명료하게 잘 정리해준 후기 잘 읽었습니다.👍👍 3학기에도 개념(과 간식)을 잘 먹고 잘 소화하여 우리의 신체와 삶을 변화시켜보아요.😉
와~~ 뒤늦게 정독했네요. 고지보다 늦은 후기,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세이 발표 현장을 녹이고 개념을 다시 소화하고 결과물을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하여 배치하느라 시간이 걸린 듯 하다ᆢ는 게 제 느낌입니다. 사진까지 ᆢ(같은 장면을 찍어도 포착한 시점과 구도에 따라 다른 느낌의 사진이 되는군요) 감동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크크랩이 정말로 열정적인 팀이긴 하다 싶어요. 왕성한 식욕은 왕성한 탐구욕!! 후기 잘 읽었습니다. 샘과 공부할 수 있어 행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