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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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의 밤』 10장 및 11장에서는 우리 관념에 익숙한 노동자라는 계급과 표상이 등장합니다. 이 책 400p에 “자신들의 일손을 고용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일손을 대여해야만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부류의 일하는 이들을 우리는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라고 노동자가 정의됩니다. 채운샘께서 설명한 것처럼 노동자들은 가진 건 몸뚱이뿐이며, 밖으로 내몰린 자들이죠. 땅, 자본은 물론이요 숙련된 기술도 없으며 정처 없이 떠도는 자들, 영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1848년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라고 말한 바에 부합할 정도로 노동자들은 가진 게 없는 자들이었죠.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적 정체성이 선언되기 이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줬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 시를 쓰는 목수 고니를 비롯하여 프롤레타리아 산파로 육체의 보살핌과 인도주의적인 성직을 조화시킨 쉬잔 부알캥, 은행가이자 사회주의자로서 물질적·정신적 진보와 세계의 통합이이라는 이상을 가졌던 생시몽주의자 앙팡탱, 사회적 해방을 위해 도덕적 해방이라는 표상보다 물질적 해방의 실험적 실현을 중시한 사회주의공동생활체에서 활동했던 푸리에주의자 및 일원들 등 하나의 계급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채로운 인물들의 구체적인 얘기들이 이 책에서 펼쳐졌는데요. 후반부로 갈수록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 이전에 시도되었던 활동과 실험들이 어떤 길로 귀결되는지 보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이 더 잘 해방되기 위해 그들을 착취하는 원환이 형성되었는지 10장 및 11장에 구체적인 서사가 펼쳐지면서, 규정성에 얽매이지 않는 고니가 등장하는 양도 급격히 줄어들었네요.
『프롤레타리아의 밤』이 특별한 점은 대문자 역사에 드러나지 않는 목소리들, 소문자 역사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입니다.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했다는 한 줄 안에는 셀 수 없는 얘기, 과정들이 녹아있는데, 우린 이 문장을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지요. 이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걸까요? 내가 나를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으로 여긴다면 이를 어떻게 경험하는 걸까요? 우리가 늙어간다면 이걸 어떻게 아는 걸까요? 누군가는 회사에서 퇴직하면서, 어떤 이는 병이 들면서 나의 나이를 실감합니다. 각자 처한 시공간적 조건, 욕망, 관계 등에 따라 나이를 체험하는 게 다른데요. 우리가 아무리 우정과 연대를 중시해도 실제 가까이 있는 불편한 사람을 못 견디거나 거슬리는 자들을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기에 구체적인 현장에서 좋은 관념을 실행하는 건 어렵게 다가옵니다. 또한 구체적인 현장이 다르기에 누군가가 내게 어떻게 하라고 답을 주지도 못하고, 줄 수도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특히나 매 장 읽을 때마다 처음 느낌 그대로의 애매하고 어려운 책으로 우린 미로를 헤맬 뿐 보편적인 정답이라는 열매를 가져올 수 없었네요. 병이나 고통은 복합적으로 드러나기에 서사를 모르면 어떤 병인지 알기 어려운 것처럼, 책을 통해 떠오른 문제들, 아직은 애매하고 혼란스러운 걸 붙잡고 이와 관련된 서사를 찾아 구성하는 건 각자의 몫인 듯합니다.
생시몽주의, 푸리에주의는 공상적 사회주의 운동에 속한다는 것 외에는 이들에 대해 전혀 지식도 없고 무관심했었는데요.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는 생시몽주의자들의 사상과 활동 등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생시몽주의는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점 중 하나죠. 오늘 강의에서 채운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초기 생시몽주의자들은 과학에서 출발했는데요. 어떤 사건을 신으로 설명하는 신학적 세계관과 달리 과학은 사물과 사건 등을 보편적 인과관계로 해석하면서 사람들에게 해방처럼 다가왔습니다. 이 시기에 더 합리적인 사회, 인간다운 삶을 사는 사회에 대한 문제가 출현했지요. 생시몽주의자들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삶의 수준을 개선하는 것도 중시했지만, 사랑과 우애의 기반하에서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꿨고 이를 만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생시몽주의자들의 잡지인 Globe도 그들의 이상이 잘 드러나네요. 이들이 구상한 보편연합은 취지와 동기는 좋았지만, 다들 잘 아시다시피 구체적 현장으로 들어가면 이상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사랑과 우애를 강조한 만큼 보편연합은 유사 가족의 형태를 띠면서 종교를 닮아갔지요.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는 이기주의와 헌신과 관련된 논의와 갈등이 깊이 다뤄졌는데, 물질적인 개선과 함께 조화로운 공동체의 추구에서 이기주의와 헌신의 문제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이기심이 없는 상태를 전제로 한 조화로운 세계는 과연 가능할까요? 또한 이기주의와 헌신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요?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다는 건 말은 쉽지만, 사람들의 복잡한 욕망과 관계, 능력과 필요에 관한 규정 등을 고려하면 구체적인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시몽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고 이를 구체적인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종교의 형식을 가져왔는데요. 공동체 활동을 위한 공간은 사원의 모습으로 생시몽주의 교리 전파는 설교의 형태로 교육자는 사도의 역할로 전개되었지요.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나아갔던 사랑의 보편연합은 다시 새로운 종교가 되었으며 생시몽주의는 일종의 사회 신학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사회 개혁을 위한 어떤 사상이나 활동이 그 취지가 훌륭하더라도 도그마가 되면 종교의 형태로 변모하는 것 같네요.
노동자들이 이기주의를 깨뜨릴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곳은 더 이상 전투 또는 희생의 죽음 안에서가 아니라 노동과 임금의 삶 안에서다. (『프롤레타리아의 밤』, 284p)
우리는 이기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기주의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시대마다 사람마다 규정하는 지점이 다르겠지요. 프롤레타리아들의 이기주의, 부르주아 생시몽주의자들의 이기주의도 동일하지 않았으며, 전자는 쉽게 교정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노동자들은 가진 건 몸밖에 없는 자들로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이기주의를 살펴봐야 하는데, 노동자들의 생존이 걸린 이기주의를 이상적인 관념으로 재단할 수 없습니다. 노동과 임금의 삶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조건,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이기주의를 벗어날 것인가가 논의되어야 합니다. 신앙을 버리느니 차라리 굶어 죽겠다는 바롱처럼 이기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자신이 이기적이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랑시에르는 말하죠. 이처럼 부정적인 것은 형식적이고 무기력할 뿐입니다. 채운샘은 아름다운 교리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도 아름답게 작동하는지 물어보셨어요. 요즘 선거철이라 모두 잘 사는 나라, 빈곤이 없는 세상 같은 문구가 남발하고 있는데, 이런 말들은 무력할 뿐입니다. 생존이 두렵고 중요한 문제라면 생존이 무엇인지, 내가 불안하게 여기는 생존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심도 있게 접근해야 합니다. 랑시에르는 우리에게 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과 생각, 욕망을 풀어내면서 우리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데요. 8주 동안 매번 어렵고 새롭게 느껴지는 이 책을 샘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제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에 관한 생각이 깊고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평 발표를 2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엔 팀별 비평이라 각자 작성할 분량을 생각하면 더 쉬울 것 같지만, 의견을 모아 하나로 꿰어 엮는 걸 고려하면 더 힘든 작업일 수도 있네요. 채운샘은 저번 팀별 발표처럼 주제와 상관없이 각자 의견을 붙인 패치워크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화는 통일할 수 없는 걸 하나의 글쓰기로 녹여냈을 때 의미가 있는데요. 밀고 나갈 Topic을 먼저 정해야 하고 이를 중심으로 팀원들의 다양하고 합의되지 않는 생각들을 엮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쳐내야 할 것은 쳐내야 하고요. 에세이 작성 과정에서 팀워크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들뢰즈와 과타리도 『안티 오이디푸스』, 『천개의 고원』,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함께 저술했는데, 같이 글을 쓴다는 건 어떤 활동이며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지 염두에 두며, 팀 비평에 임해 보아요. 이것 또한 우리에게 많은 배움을 주겠지요.^^ 한편, 비평할 때 묘사나 감상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사진팀, 영화팀 모두 우리에게 허구 이미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가 뭘 보고 있는 건지, 이미지가 우리의 어떤 분할선을 해체하는지 등도 파악해야 하네요. 두 팀 모두 정연두 작가,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들을 최대한 많이 감상하면서 횡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의미도 찾아봅니다. 기왕이면 종적 관계, 즉 이들에 영향을 줬던 작가, 감독들의 작품까지 더 보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시간의 제약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참고해 보아요. 이와 함께 두뇌 깊숙이 저장된 과거에 배운 개념들과 책, 예컨대 크크랩 1년차에 읽었던 수잔 손택, 하스미 시게이코 등이 언급했던 내용을 활용합니다. 무엇보다도 비평가는 그 예술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 사랑이 역량이라는 걸 명심하면서 즐겁게 팀별 에세이 작업에 정진해 봅시다!!!
# 1학기 9주차 수업 공지
1)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끝까지 읽고 발제 및 공통과제 작성하셔서 금요일 저녁 8시까지 올려주세요.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사유하게 만드는 구절(한 단락, 10줄 미만)을 가져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2) 비평토론 시간에는 팀별 에세이 관련하여 의견을 나눌 예정이니 팀별로 잘 준비하시기를요.
3) 간식-후기-정리는 반디샘, 승연샘께 부탁드립니다.
다가오는 선거 잘 하시고, 토요일에 밝은 모습으로 만나요.^^
채운샘 강의 중에 '일반적인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점이 특히 제게 기억에 남았어요. 생시몽주의의 보편연합의 경우도 어쩌면 그 보편성에의 추구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게 되는 지점이 분명 있지만, 동시에 그렇게 때문에 구체적 삶의 현장에선 벙벙하고 무력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단 생각이 드네요. 그런 측면에서 보편을 추구하는 공동체에서 이기주의와 헌신이 얼마나 다양한 양상으로 등장했는지 이번 장에서 잘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어느덧 팀 비평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한번도 글을 같이 써 본 적이 없어서 어떨지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그러네요 ^^ 바쁘신 와중에 공지 빠르고 살뜰하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