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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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람
치유의 힘을 가진 것
영아
이번 에세이는 쓰기가 참 어려웠다. 이유는 이 에세이가 내 삶의 중심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리리 세미나를 하면서 여러 가지 고민들이 있었는데, 그 고민의 출발점은 존재를 거울처럼 비추는 나의 삶의 방식 때문이었던 듯하다. 어느 자리에 놓이느냐에 따라 사람의 가치관 세계관 움직임 호흡과 진동까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듯한데, 나는 그 중에서도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디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예민하게 상대를 비춘다. 책을 읽을 때도 지식을 알려주는 내용보다는 감정이나 정서나 정신의 흐름을 따라 읽는 것이 더 편안하고 기쁘다.
그런 나에게 중세에 대한 글은 특별한 경험이었는데도, 이 에세이는 내 삶의 변두리에 놓였다. 아무래도 좌충우돌한 나의 시기와 일리리의 부침이 맞닿아 있는 듯하다.
‘후고에게도 지혜는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었‘으며, ’읽기를 존재론적인 치료 테크닉으로 인식하고 해석했다.‘ ’책 중심적인 사람일 것으로 예상되는 나의 독자와, 그가 나를 읽는 동안 하게 되는 활동 사이의 거리를 늘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이번 에세이는 잠시 갔다 온 몽골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때울까 하는데, 이 여행기에서 나를 읽어줬으면 한다.
코로나 19가 종식되면 나는 첫 여행지로 몽골을 갈 거라고 생각했었고, 주변에도 꽤나 그렇게 이야기 하고 다녔다. 코로나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요새, 한동안 떠나지 못했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사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충분한 일상이었기에 그리 간절하지는 않았지만, 작년 우리 부서 선생님과 학년을 마무리 지을 때, 우리 여행 같이 가자. 몽골을 가자 했기에, 약속을 지키는 의미로 진행된 면이 크다. 그런데 간절하지 않았고, 본래 나의 여행 스타일은 항공권과 첫날 숙소만 예약하고 아무것도 미리 준비해 가지 않으며, 그날 그날 땡기는 곳이 있으면 가고, 더 머무르고 싶으면 더 머무르고 떠나고 싶으면 그냥 떠나는 방식의 여행을 했기에, 준비가 더뎠다. 그러다가 6월 말이 되었는데, 여행이 파투 난 것 같다고 다른 선생님에게 함께 가기로 했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올해 우리 부서 선생님들께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제안했다고 기억하는데, 우리 부서 선생님은 내가 ’몽골 여행 가야지.‘라고 그냥 가는 것을 정해줬다고 한다.) 그렇게 구성된 우리는 10여 일 만에 준비를 마치고, 항공권을 끊고 몽골 내의 여행사를 선택하고 방학식 당일 밤 비행기로 몽골에 갔다. 우리는 4명이었는데, 6명이 되면 금액이 뚝뚝 떨어지는 마법 같은 여행사였기에, 외부 사람들을 2명 더 모집해서 갔다. (그들은 추후에 우리에게 이렇게 대책 없는 사람들인 줄 모르고 함께 했는데, 잠시 지내보니 우리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여행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실토했다.)
새벽 4시쯤 공항에 도착하여, 몽골의 하늘을 보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우리는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그날은 유독 하루가 길었는데, 몽골 1일차에 우리는 벌써 3일처럼 느꼈다. 그 이유는 하루를 일찍 시작한 것도 있지만, 가는 중간중간 푸르공(몽골에서 여행할 때 많이 타고 다니는 승합차)이 퍼졌기에,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3번째 푸르공이 퍼졌을 때, 그 푸르공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우리는 초원에서 7시간을 다른 푸르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사실 함께간 우리 부서 선생님들은 도라이 성향이 짙었기에, 그 시간을 춤을 추며 릴스를 찍으며 즐겁게 보냈다. 우리는 댄스 배틀을 하기로 하고, 둘 둘 짝이 되어 춤 연습을 했다. 마지막 날, 처음 우리를 만난 외부인 두 명의 표정을 찍은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허허벌판에서 둘둘 짝을 지어 춤을 맹연습하는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모든 것을 잃은 듯하다. 특히 그중 한 분은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생각을 정리하러 오신 분이라 더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차가 퍼져 어디 가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춤 연습을 하며 희희덕 대는 인간군상이라니….
7시간을 기다렸기에, 우리는 첫날 예정되었던 여행지는 가지 못하고 바로 숙소로 향해야 했다. 여행지를 건너 뛰었어도 너무 깊은 밤. 깜깜하고 비는 너무 많이 내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오프로드를 달렸다. 그때, 우리들은 사고 날 것을 걱정하면서도 ’죄짓고 몽골 온 사람 누구냐며, 돌아가며 회개의 고해성사를 하여, 악귀의 원한을 풀자‘며 푸르공 안에서 요 근래 잘못한 것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며 낄낄 댔다. 도착한 게르는 밤 9시부터 12시까지만 전기가 태양광으로 공급되는데, 밤 11시에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비까지 와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공간을 랜턴과 핸드폰 랜턴으로 비추며 게르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너무 참혹했다. 랜턴을 비추자마자 바퀴벌레 100마리가 촥~ 도망가는데 우리는 그 게르에서 잠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 바퀴벌레와 공생해야 했는데, 그때 나는 흰옷을 입고 있었기에, 바퀴벌레가 기어올라오는 게 너무 잘 보였다. 내가 서 있는 동안 바퀴벌레 6마리 정도가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지켜본 선생님들은 기겁했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어두운 색상의 옷을 꺼내 입었다. 바퀴벌레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서 잘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모두 침낭에 들어가서 누웠는데, 서로 ’잘 자요‘라고 한 이후에는 기억이 없다. 그 와중에도 꿀잠 잤다.
당연히 씻지 못한 채로 2일차가 시작되었고, 침낭 꺼내 흙 위에 누워 밤 하늘을 보며 나누었던 이야기들, 고비 사막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고 고비 사막 중턱에 누워 낮잠 잤던 이야기, 무엇보다도 함께 갔던 사람들과 웃었던 일들, 실연으로 몽골여행을 택했던 친구가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 너무 재미있어서, 첫날을 빼고는 여자친구 생각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음을 마지막 날 헤어질 때 고백했던 일. 모든 잡념과 슬픔을 몽골에 떨어내고 오게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들. 추억들은 너무 많지만, 한 페이지가 넘었기에, 이만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나에게 글은 치유하는 약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늘 책 읽는 공간을 맴돌았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같은 것이기에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