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읽은 『미셸 푸코 1926~1984』 3부 1~5장에서 푸코의 삶은 특히나 파란만장했습니다. 68혁명에 대한 대처로 마련된 ‘뱅센 실험대학’ 철학과 대표교수를 맡아서 외부적으로는 언론의 포화를, 내부적으로는 학생들의 반항을 맞닥뜨려야 했지요. 그 와중에 콜레주 드 프랑스에 부임하기 위해 그의 측근들과 함께 바쁘게 움직여야 했고요. 또 감옥정보그룹을 창설하여 ‘감옥 문 앞’에서 투쟁을 하는가 하면 그러한 정치적 실천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감시와 처벌』을 쓰기도 했습니다. 여러 진영에서 다양한 사안을 놓고 투쟁을 벌였고, 권력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쇄신하는 책 『앎의 의지』를 출간했죠.
좀 뜬금없지만 체력이 곧 재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설문을 쓰고, 조사를 하러 다니고, 문서고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그 와중에 연애도 하고. 제가 몸이 열 개라도 못할 일들을 혼자서 척척 해내는 모습을 상상하니 푸코가 어떤 강도로 삶을 살았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도 높고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날카로운 문장들을 쓸 수 있었던 거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오랫동안 ‘사변적’·이론적 성찰은 역사에 대해서 소원한, 어쩌면 약간 오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철학자들은 생생하고 ‘정밀한’ 1차자료로 간주되는, 그리고 가끔은 매우 수준 높은 역사서를 읽고는 잠시 성찰한 후 자신이 직접 얻은 것이 아닌 진실과 의미를 거기에 부여하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게 용납되는 관행이었다. 너무나 손쉽게 용납되었으므로 그 누구도 이미 되어 있는 연구 결과를 기초로 자신이 연구를 한다는 것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그것을 인용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푸코, 「역사 제조자들에 대하여」 『리베라시옹』, 1983년)
그 와중에 제가 꽂혔던 건, 역사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에 대한 푸코의 말이었습니다. 푸코는 ‘역사연구라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암묵적인 시대적 가설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상식의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대상에 직접 접근할 길을 찾아내야 한다고, 이것이야말로 “우리 자신, 우리의 사상, 우리의 행동에 대한 성찰에 실질적인 내용을 부여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누군가가 쓴 역사서를 읽고 잠시 성찰하고는 그것을 인용하여 자기 것이 아닌 진실과 의미를 거기에 부여하는 철학적 성찰의 관행을 비판합니다.
저는 몹시 찔렸습니다...... 그 역사서조차도 찾아 읽지 않으면서 ‘문제의식이 없다’느니 ‘생각이 같은 곳을 맴돈다’느니 우는 소리를 해댔던 게 부끄러워진 것이죠. 그리고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고,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끼워 말이 되도록 끼워 맞추는 것을 ‘제 생각’이라고 착각해왔는다는 각성을 했습니다. 푸코는 말합니다. “자기가 광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것은 많은 시간과 고통을 요하는 일이다.”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과 글과 공부에 내용과 실질을 부여하기 위한 나름의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가장 가까이 있는 것부터 시도해보아야겠죠. 제 수준에서는 푸코의 텍스트를 ‘능동적으로’, 그러니까 거기에서 언급되는 책들을 읽어보고 관련된 논문들을 찾아보면서 하나의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읽는 것, 그리하여 독서의 경험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 시간에는 『미셸 푸코 1926~1984』를 3부 끝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과제인 푸코 연표는 꼼꼼히 작성해서 숙제방에 올려주시고요, 인상 깊게 읽은 두 개의 대목을 선정하고 그와 관련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해오시면 됩니다. 다음 시간 간식은 미영샘, 후기는 진아샘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봬요!
'역사적 대상에 직접 접근할 길'을 저도 함께 찾아보고 싶습니다.
독서의 경험을 스스로의 것으로 저도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제 공부에 대해 재점검하는 시간이 되네요.
텍스트 따로 일상 따로다보니 사유는 온데간데없네요.
“자기가 광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것은 많은 시간과 고통을 요하는 일이다.”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다시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