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이념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이념들은 ‘정치가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적극적이고 강하며 저항적이고 열정적이다. 이념이 생겨나는 곳, 그것들이 폭발하는 현장을 목격해야만 한다. 그것을 말하는 책 속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힘이 표출되는 사건들 속에서, 그리고 그 이념들의 주변에서, 그것들에 찬성하며 또는 반대하며 펼쳐지는 투쟁들 속에서 그것을 직접 보아야 한다.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이념들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들, 또는 하나의 생각만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에 의해 세계가 수동적으로 움직이지만은 않는 것은 이 세계가 이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또는 끊임없이 이념들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481쪽)
르포르타주란 무엇인가! 푸코가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의뢰로 이란에 취재를 가면서 쓴 글입니다. 책을 읽고 기사로 접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이념들이 발생하고 힘을 분출하는 현장에 가 보아야 한다. 푸코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저는 좀 놀랍습니다. 푸코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습니다.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의 이야기, 폴란드인들의 이야기, 정치범들의 이야기, 무슬림들의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그의 역사 연구 또한 ‘듣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낯선 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번 세미나 모집 공지에서 푸코를 ‘읽기의 달인’이라고 소개 했는데, 어쩌면 ‘듣기의 달인’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푸코는 자신이 특정한 시대적·사회적·계급적 조건 속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늘 잊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늘 애를 썼던 것 같고요. 푸코는 『쾌락의 활용』 서문에서 ‘사유에 대한 비판 작업’, 그러니까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노력이 오늘 날의 철학(적 실천)의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나요? 가만히 앉아서는 불가능합니다. 푸코는 이러한 작업의 구체적 방편들을 손에 넣고 발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도서관에서 고문서들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고, 다른 한편 발로 뛰어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갔습니다.
저는 이번 세미나에서 각자의 ‘참을 수 없음’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이 좋았습니다. 현정샘은 관습적인 도덕 규범이 선생님의 행동이나 생각을 제약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고 하셨고, 청샘은 남성적 시선에 의해 규정된 여성성 앞에 노출된 경험이 참을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난희샘은 따님과의 일화를 얘기하시며 세대 간의 불통에 대해 말씀하셨고요. 설샘은 오늘날의 젠더 갈등을 둘러싼 (특히 젊은 남성들의) 발화에 깃들어 있는 편협함에 당혹감과 불편함을 느끼신다고 말씀하셨죠. (제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토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푸코에 ‘대해서’가 아니라 푸코를 ‘통해서’ 우리 각자의 구체적이고 울퉁불퉁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서로 연결된 지점들을 확인하고, 또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푸코를 읽는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말은 좀 줄이고 샘들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겠어요.
『미셸 푸코 1926~1984』를 다 읽었습니다. 푸코 삶의 마지막 시간들에 대한 기록은 뭉클했습니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무너지지 않고 몸이 허락하는 한 담담히 자기 연구를 계속해나가는 모습, 에이즈에 대한 폴 벤느의 질문에 침착하게 답하는 모습, 푸코 장례식에 모인 수천 명의 유명, 무명의 사람들. 푸코는 완전한 인격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싸웠고, 오랜 친구들과 의절하기도 했고, 남들에게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기희생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하는 것의 무례함을 일깨워 준 사람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푸코의 치열한 삶에서 어떤 자비심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처럼 치열하고 강도 높게,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자기 삶에 임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시대에 헌신하고 타인에게 유익을 행하는 일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