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1, 2강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말과 사물』을 읽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를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한 것인데요. 『푸코의 맑스』와 『미셸 푸코 1926~1984』를 보면, 푸코는 『말과 사물』을 서양 사상사에 익숙한 전문 지식인들을 위해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책을 못 읽을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운동이 필요하겠죠. 그런 차원이라 생각하고, 남은 3주 간은 가볍게 서양 지성사를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세미나를 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근대사회를 특징짓는 계몽주의는 종전에 신의 이성이 있던 자리에 인간의 이성을 놓고, 합리성의 근거를 계시 대신에 인간의 논리적 사고와 경험에서 찾았다.”(백종현,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카넷, 18쪽)
이번 주에는 칸트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다른 건 몰라도 칸트를 쉽게, 그리고 치우침 없이 해설한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책인 것 같습니다. 물론 고대인들이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은 그들에게 자연을 정복하고 경영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거나,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제목을 갖고 태클 걸면서 ‘백성을 가축 취급한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등 조금 의아한 대목들이 곳곳에 있긴 했지만요(저자인 백종현님께서는 상당히 ‘근대적’이고 ‘서양 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계신 듯 보였습니다).
어쨌든 여러 가지를 얻어갈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칸트가 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 가운데 최초의 직업 철학자였다는 것, 그가 살던 프로이센 왕국의 쾨니히스베르크는 현재 러시아에 속해 있다는 것, 그리고 칸트의 시대가 비로소 ‘휴머니즘’이 시작되는 시대였다는 것. 그런 등등의 상식들을 새롭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저는 이런 질문이 남았습니다. 휴머니즘이라는 말처럼 넓고 또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도 드물 것 같네요. 아니, 애초에 ‘인간’ 혹은 ‘인간적’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지요. 어떤 사람이 의외로 미숙하거나 허당 같은 면모를 보일 때 우리는 ‘인간적’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정이 없고 지나치게 원칙주의적이거나 이해관계에만 집착할 경우엔 ‘비인간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사실상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비인간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 ‘인간’의 모습 아닌가요? 그 와중에 니체는 ‘인간’을 투쟁과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푸코는 ‘인간’이 탄생한지 200년 밖에 안 되었고 얼마 안 있어 소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니 참으로 헛갈립니다.
칸트에게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인간 최고!’는 아닙니다. 칸트가 수행하는 휴머니즘은 인식과 윤리를 인간 자신으로부터 기초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인간의 이성을 인간 자신의 자리로 끌어내리는 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감성세계에 들어온 ‘대상’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인식은 경험적 질료들과 그것들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통합하고 마름질하는 인식주관에 의해 구성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사유를 전개할 수 있는 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참된 원리에 기대어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인식 주관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윤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원리 또한 자연세계에 주어져 있는 어떤 이치 같은 것이나 신의 계시, 공리주의적 원리 같은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 때문이라는 것이죠.
칸트는 ‘신 없이 살기’를 시도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공적이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칸트가 ‘신’이라는 절대적 일자(一者)를 배격하는 사유를 전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윤리와 인식을 어떠한 보편성 위에 정초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식 주관’이라거나 ‘정언 명령’이라고 불리는 보편적 원리 위에요.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어떤 식으로 칸트를 독해해냈을지 궁금해지네요.
공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3강과 『현상학이란 무엇인가』(피에르 테브나즈, 그린비) 1장 ‘후설의 현상학’을 읽고 오시면 됩니다. 진아샘께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발제를, 제가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발제를 맡았습니다. 간식은 진아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