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에 와 푸코 공부를 한 지 햇수로 3년째 들어섭니다. 철학의 ‘철’자도 모르고 시작한 공부입니다. 이름 석 자 들어본 것 외에는 푸코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어쩌다 하게 된 공부였지요. 시작은 친구의 권유로 채운 샘의 강의를 듣고 그 유려한 강의 내용에 홀렸던 게 출발점이었습니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절치부심한 순간들이 많았지요. 잘못 말했다간 주위에서 비웃지나 않을까, 실제 비웃는 것 같아 괜한 말을 했나 자기 점검을 반복하면서 꾸역꾸역 이어왔습니다. 돌이켜보니 푸코의 책들은 『주체의 해석학』을 비롯하여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주옥같은 책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푸코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아직도 “그건 이렇습니다!”라고 턱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내가 공부가 늦된 사람이구나 하면서 갈 뿐입니다. ㅎㅎㅎ
별로 진척되는 것 없이 지지부진해 보이지만 푸코 공부를 놓을 수 없었던 건 “능동적 주체화”에 꽂혀서였습니다. 주체화란 말하자면 ‘나답게 살자’ 아닌가요. 나답게 살자니? 눈이 번쩍 뜨이는 듯했습니다. 나답게 살고 싶었지만 진정으로 나답게 살아본 적이 있는가? 어릴 때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결혼해서는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역할 수행하기 바빠 정작 나는 어디로 실종됐는지도 모르는 채 ‘가치화’를 추구하는 경제 우선주의의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게 나다운 건지 알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내 하고 싶은대로 살면 그게 나다운 걸까? 그것이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일까? 그러면 해방이 될까? 그렇다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이 사회가 옳다고 하는 규범화된 제도와 도덕, 상식과 고정관념들, 이것이 우리를 구속하는 장애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으려면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장치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보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엇이 진실일까.
푸코는 진리와 진실은 어디 외부에 있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현재 자신이 보여주는 행동들 그것이 실체이며 진실이고 그 실천 행위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기 변형을 하는 것. 그것이 진리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공부는 지금처럼 학교 교육과 같은 스펙쌓기, 축적이나 소유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앎이 아니라 자신을 미학적 존재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앎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관계망 안에서 자신의 고유성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부, 그것이 진정한 앎이라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 자유와 해방으로 가는 길이 있다,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왜 공부하느냐고 물으면 특별한 목적이 없다고 대답했는데 사실은 제 공부의 목적은 여기에 있었네요. 지금까지 나답게 살아본 적이 별로 없으니 이제는 ‘단 한 번도 되어본 적 없는 나’가 되어보자!
요즘 대선후보들 간에 한쪽에선 정권교체를 해야 국민이 잘 살 수 있다 하고, 다른 쪽에선 오만한 검찰 출신 후보에게 권력의 칼자루를 주어 검찰 공화국을 만들 수는 없다고 맞받아칩니다. 두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양분화되어 치열한 공방을 벌입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이 나라의 수장이 되면 국민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바뀔 거라고 믿는가 봅니다. 저 역시 푸코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정치인들을 욕하면서도 은근히 그들에게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건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가 내 진실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앎과 행위를 통해서 변혁이 가능하고 그것이 나의 혁명을 사유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진리에 다가가고자 연마하고 수련하는 과정이며 이런 행위의 실천들이 구체적인 삶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한 과정들이라는 것도요.
후기를 쓰라고 했더니 정작 공부한 내용은 없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을 새삼스럽게 반복하나 하실지 모르겠는데 ‘푸코’ 하면 ’주체화‘가 각인돼 있어서 나도 모르게 한 줌도 안 되는 앎을 정리하는 형식이 돼버렸네요. ㅎㅎ
어쨌든 그동안 어설프게라도 푸코의 책들을 읽은 게 있어 평전 읽기가 재미는 있습니다. 현상학이니 모르는 용어가 발목을 붙잡는 건 여전합니다만, 평전을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푸코의 의외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ㅎㅎ
대단한 지적 역량을 가진 인물로만 생각했는데 상상 밖의 괴팍함, 베일 것처럼 예민한 감각, 재규어를 덥석 사들여 도시를 질주하는 부르주아인가 하면 공산당에 가입을 하고. (뒤에 탈당하지만) 대학교육 위원회에 참여하는 제도권 면모나 행정 업무를 활동적으로 완수하는 모습, 문학, 음악, 미술에 대한 풍부한 소양, 댄디하기까지 해. 종횡무진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도 놀랍지만 의외의 반전을 보여주는 모습이 많아 제게는 드라마틱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네, 푸코에 대한 후기는 여기까지만 쓰기로 하고요.
지난해까지는 재미보다 부담감이 느껴지는 공부였는데 올해는 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달까? 지난해보다는 재미있게 공부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꾸준히 하는 게 공부라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러니 새로 참여하신 샘들도 걱정 붙들어 매시기를요. 함께 하다 보면 차츰 알게 되더군요. 꾸준히 함께 하시면 됩니다.^^
채운샘 강의에 홀리(?)고, 규문에서 뭔지 모르는 철학 공부를 한 경험도 저랑 똑같군요, 헤헤! 정치에 대해서도 샘과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어서 샘의 후기가 매우매우 공감이 됩니다^^ 마지막에 '꾸준히 하는 게 공부다, 함께 하다 보면 차츰 알게 되고, 꾸준히 하시면 된다'는 말이 넘 좋아요~~ 왠지 힘이 나네요. 다른 팀이지만 함께 꾸준히 공부해요! 파이팅!!
모르는 게 얼마나인지를 또 새삼스럽게 알게 하는 공부 ㅋㅋ 그럼에도 모르면 모르는 대로 꾸준히 하는 공부ㅎㅎ
후기에서 샘 목소리가 들려요! '나답게 살자!' 정말 심플하고 좋으네요 ㅎㅎ
" 내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건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가 내 진실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앎과 행위를 통해서 변혁이 가능하고 그것이 나의 혁명을 사유하는 방법이라는 것" ! 혁명을 사유하는 방법!! 청샘 후기 너무 잘 읽었습니다.
뭘 하다 이제 후기를 읽었네요. 박력이 넘치는 글입니다. 어딜 가다가 갓길에 차를 대고 읽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글이었어요. 나답게 살자! 근데 도대체 그 나라는 게 참 거시기한 문제지요? 나이성별지역빈부지식유무 모두를 초기화시켜버리고 출발하는 공부의 길에 샘과 함께여서 완전 신납니다
일단 샘글은 읽기가 쉬워서 좋아요. 그래 그런지 공감도 엄청 많이 되고요. 참 앞으로 쓰실 글들이 기대됩니다. ㅎㅎ
저한테 주시는 글 같아요. 감동입니다. 이렇게 진솔하게 후기를 쓸 수가 있구나! 공부가 나와 나의 삶에 반성이자 실천이 되는 선생님께 많이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