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미셸 푸코 1926~1984』 2부 1~3장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우선 2부 1장은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 심사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논문심사라는 것이 그저 형식적인 과정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디디에 에리봉이 묘사하는 논문심사의 모습은 아주 긴장감이 넘치는 것이었죠. 심사위원장 앙리 구이에를 비롯하여, 장 이폴리트, 조르주 캉길렘, 다니엘 라가슈 등의 심사위원들은 적당히 봐주지 않았습니다. 푸코의 재능과 『광기와 비이성』이라는 논문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보았으면서도, 텍스트의 해석에 관한 디테일한 문제에서부터 논문의 논조와 푸코가 취하고 있는 관점 등등에 대해 강도 높은 질문들을 쏟아냅니다. 고수들이 무공을 겨루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나 할까요? 한 선생님께서는 이 장면에서 우아하고도 강력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씀해주셨죠.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푸코의 주위에는 어찌 이토록 훌륭한 스승과 동료와 제자들이 많은지. 이 지적인 치열함이 당시의 유럽인들이 겪은 비극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2장은 『광기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첫 번째는 데리다와의 논쟁입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이 논쟁에 이입하여 편파적으로 푸코 편을 드셨는데(^^), 저는 『광기의 역사』에 대한 데리다의 문제제기도 날카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카르트의 한 구절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데카르트를 읽어보지 않아서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한 텍스트를 하나의 ‘역사적 구조’ 안에, 다시 말해서 ‘역사의 전체적 기획’ 안에 집어넣으려는 이러한 독서방법은 아주 위험한 것”(218쪽)이라는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역시 참다 참다 폭발한 푸코의 반론도 멋졌습니다. 학교교육에 지나치게 물든 데리다가 “담론적 실천을 텍스트적 흔적으로 환원”하고 있다는 것, “거기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생략하고 오로지 해석을 위한 표지만을”(223쪽) 취하고 있다는 것. 텍스트를 텍스트로 한정시키는 아카데믹한 접근방식의 옹졸함에 대한 카운터 어택!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나는 혹시 텍스트적 흔적에 집중하지 않았나? 텍스트를 정보로 환원하고, 글쓰기라는 실천을 역시 어떤 결론, 정답, 정보를 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았나?
2장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광기의 역사』가 그 자신의 정치를 생성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푸코는 나중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정치에게로 간 것이 아니라 정치가 자신에게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푸코는 자신의 경험해서 출발하여 그 근원에까지 이르는 지적인 모험을 실행에 옮겼고, 그것은 그 나름대로 정치적인 실천이기도 했습니다. 푸코 자신이 학문적 담론들의 자명성과 맺고 있던 관계를 변형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한 사람의 변환은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으로 번역된 『광기의 역사』 요약본이 반(反)정신의학 운동과 만난 것이죠. 그와 더불어 제도의 억압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주권을 놓고 다투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 지배관계에 대한 투쟁도 아닌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 드러나게 됩니다. 물론 이는 기존의 정치와 저항의 형식을 참조하는 것이겠지만, 그 중심에는 정신의학의 학문적 권위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예속화의 효과에 대한 저항이 놓이게 됩니다. 정치란 무엇인지, 저항이란 무엇인지 질문해보게 되는 대목이었지요.
3장에서는 푸코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였습니다. 3장은 심리학 교수가 된 클레르몽페랑 학교 시절의 푸코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가 흥미로웠습니다. 하나는 푸코가 드골 정부의 교육부 장관인 푸셰의 교육개혁 위원회에 참여 했다는 사실입니다. 푸코처럼 급진적이고, 학문의 자명성 자체를 의심하는 철학자가... 교육부와의 협업이라니? 웁살라, 바르샤바, 함부르크에서 문화원장을 할 때에도 느꼈지만 푸코는 은근히 제도 친화적인 사람입니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실용주의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신념이나 이상에 헌신하지 않았던 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거기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설샘께서 푸코에게는 어떤 도달해야 할 이상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매번의 다음 스텝이 중요했던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저도 공감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푸코가 인격적으로 흠결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데리다와의 논쟁에서도 살짝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죠. 이번에는 클레르몽페랑 대학에 들뢰즈를 교수로 꽂으려던 계획이 좌절되자 들뢰즈 대신 부임한 로저 가로디에게 심술을 쏟아내는 푸코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이렇게 위대한 사상가는 인격자여야 한다는 우리의 편견을 깨주니, 어찌나 감사하지요(^^;).
자, 그럼 다음 주 공지를 하겠습니다. 우선 『미셸 푸코 1926~1984』를 2부 끝까지 읽으시고, 늘 그렇듯 연표를 꼼꼼히 작성합니다. 성연샘과 경혜샘께서는 인원수에 맞게 출력을 해주시고 나머지 분들은 일요일 12시까지 푸코 세미나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다음시간 간식은 청샘께서, 후기는 후남샘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담론적 실천을 텍스트적 흔적으로 환원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생략하고 오로지 해석을 위한 표지만을 취하는" ᆢ 이 부분을 어렴풋이 이해했는데, 샘의 글을 읽으며 아, 이런 뜻이구나 합니다. 맞네요. 알고나니 더 급반성이 됩니다. 달을 봐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