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미나에서는 1960년대라는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임상의학의 탄생>을 비롯해 다음 학기에 우리가 공부할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이 출간되어 이 책들에 관련한 내용과 논쟁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또 이 시기에 푸코는 튀니지 대학에 철학교수로 부임을 하게 되는데요. 이 때 튀니지 학생들의 격렬한 학생운동을 접하고 다시 현실 정치 운동에 참여하는 푸코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죠. 정해진 시간을 넘길 정도로 열띤 토론이 이어졌는데, 건화샘은 보충자료를 미리 준비해서 ‘고고학’이나 ‘에피스테메’ 같은 개념과 막히는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도와 주셨죠. 고맙기도 하고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답니다.^^
푸코가 말하는 고고학의 목적은 ‘어느 주어진 시대를 대상으로 지식 담론이 출현하는 조건을 알아내는 것’인데요. <임상의학의 탄생>의 부제가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이었죠. 푸코는 시체 해부의 필요성과 함께 커다란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의학적 시선 안에서 인간은 대상화되고 표준화할 수 있는 객체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였죠. 이런 의학적 시선이란 근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푸코의 고고학적 탐구는 <말과 사물>에서도 이어집니다. ‘인간 과학의 고고학’이 왜 푸코에게는 필요했을까요? ‘인간’이란 존재를 객체로 놓고 표준화한다면 거기에 미치지 못한 존재라는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푸코는 “서양문화에서 인간에 대한 질문이 어느 순간에 나타났으며, 인간이 인식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어느 순간인지”(미셸 푸코, 1926~1984, 282쪽)를 주제로 책을 썼다고 합니다. 푸코는 우리에게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라고 하는데요. 지금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인간’이라는 언어도, 근대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19세기 이후에나 발명되었다고 말합니다. 참 새삼 섬뜩해지네요.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역사적 선험성(a priori)’, 즉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해주고 있는데요. 푸코는 “모든 시대는 그 문화를 형성하는 심층적 윤곽에 의해 특징지어진다.”(282쪽)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조건, 즉 세계와 사물을 이해하는 인식의 무의식적인 지반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한데요. 모든 과학 역시 에피스테메의 테두리 안에서 발명됐다고 하죠. 하지만 푸코에게 중요한 것은 ‘에피스테메’가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인데요. 이는 시대마다 고유한 담론의 질서와 이에 입각한 지식이 있다는 겁니다.
‘모닝빵 같은 푸코’. <말과 사물>은 출간되면서 수많은 논쟁으로 인해 모닝빵처럼 팔려 나갔다고 합니다. 특히 1950년~60년대 철학분야에서 양대 산맥이었다는 사르트르와 캉길렘의 구조주의 논쟁은 흥미진진했지요. 세미나에서 구조주의의 ‘구조’는 실재 존재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갖고 작용하는 체계와 비슷한 힘이며 에피스테메도 막혀 있는 게 아니라, 움직임과 함께 변이하면서 만들어가는 거라고 얘기를 나누었죠. 이는 인간의 경험에 선험적인 것으로 감각, 인식을 규정하는 거라고요. 해서 진보라거나 발전, 합리성 등등의 경우도 어떤 조건 속에서 그런 개념에 접근하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요.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엄청난 충격 속에서 획기적인 성찰을 통해 인간 존재로서 ‘의미’를 복원하는 문제에 직면했다고 보았는데요. 이는 인간의 실천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거겠죠. 하지만 푸코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의미가 있어야 살 수 있는 건지, 의미를 세우면 우리는 실천적으로 살 수 있는 건지, 사실 인간이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 등의 질문들이 나올 수 있다고요. 푸코는 사회변혁을 이데올로기나 밖에서 주어지는 진리 같은 정당성에 두지 않았고 실천에 두었다고요. 해서 푸코는 사르트르와 타협할 수 없었을 거라는 의견을 나누었지요.
수년 째 하고 있는 푸코 공부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채운샘은 공부가 어렵다는 것은 공부를 더 할 이유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알듯 말듯 한 개념이나 내용을 행여 세미나 시간에 놓칠까봐 안간힘을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번 푸코 세미나는 기다려집니다. 이제 푸코 평전 후반부로 들어가는데요. 역시 드라마틱한 푸코의 후반기 삶 속에서 푸코가 자신의 후기 저작에서 펼쳐 보여줄 사유(실천)들과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렘이 가득해집니다.
표준화, 대상화된 인간의 삶에 자신을 규정하며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되어버린 근대, 그러한 힘의 근거인 지식, 권력, 주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 후 정상/비정상, 등의 사유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연결이 되네요. 60년대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분출하는 여러 철학적 논의들과 그 속에서 머물지 않고 늘 변모하는 푸코의 여정이 새롭게 읽힙니다. 2022년 오늘 이 시점에 60년대의 그 공간이 부러운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ㅠ
후남샘의 설렘 가득한 후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저도 구조주의 논쟁이 흥미로웠습니다. 인식론적인 논쟁이 정치와 문화의 중심에 놓였던 시대... 이러면 안 되지만 왠지 낭만적으로 보게 되네요 ㅎㅎ 공부의 어려움은 공부를 할 이유다! 푸코 세미나가 기다려진다는 후남샘 말씀에 저도 덩달아 설렘이 더해지네요~~
후남쌤~~후기 잘 읽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세미나를 복기하시는 모습이 그려지네요. 저는 이번 대선을 결과를 보면서, 푸코가 튀니지에서 한 경험으로 새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을 고민하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같은 맑시즘인데 프랑스에서는 수만갈래 가지를 치면서 이론논쟁을 하는 현실과는 달리, 튀니지에서는 그 맑시즘이 현실을 변혁시키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 작용하는 것을 보면서 푸코가 했던 고민 말이죠. 사르트르의 '의미'에 기반한 실천이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사유도 어떤 국면에서는 도구로서의 힘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 역시 텍스트를 대할 때마다 매번"어렵다!"가 후렴구처럼 나오는 사람인데 샘 글 보고 "뭐임?" 했어요. 어쨌든 푸코의 맥락은 놓지 않고 가는구나~ 감탄해서요. 샘글을 통해 "서양 문화에서 인간에 대한 질문이 어느 순간에 나타났으며 인간이 인식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어느 순간인지" "모든 시대는 그 문화를 형성하는 심층적 윤곽에 의해 특징 지어진다" 이 문장을 잊지 않게 복기해야겠다~ 는 생각을 합니다. 이 맥락을 놓지 않고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읽으랴, 과제하랴, 할 게 많다 보니 마음은 부산하고 기억장애가 있어서 뻔한 것도 자꾸 놓치게 되더라구요.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 돌아보랴 마음이 어수선할텐데 그 와중에 비움 반장 역할 까지 "아후 힘들어" 하면서도 그래도 공부 욕심은 많은 샘. 올해도 힘내서 해봅시다요. 언제까지일진 모르지만 끝까지 함께 해야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