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간에는 자크 르 고프의 『서양 중세 문명』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자크 르 고프는 아날학파의 3세대 역사가라고 하는데요. 1세대인 뤼시앵 페브르, 마르크 블로크가 사조를 제시했고 2세대의 대표격인 페르낭 브로델이 ‘물질문명’의 역사를 기술했다면 3세대인 자크 르 고프와 조르주 뒤비, 엠마뉘엘 라뒤리 같은 사람들은 심성사(histoire des mentalités)를 연구하고 기술했다고 합니다.
아날학파는 랑케 식의 연대기적 역사를 거부했습니다. 역사를 단선적인 인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아날학파는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복수적인 시간의 층들을 제안합니다.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두드러진 정치적 사건들만이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 거의 변함없이 지속되는 지리나 기후, 경작의 리듬, 의복과 요리법과 거주의 관습 등의 형성과 변화 등등 복수적인 요인들이지요. 그리고 이것들은 동일한 시간선을 따르지 않고 상이한 리듬을 지니면서 공존하고 서로 얽혀 있습니다.
(자크 르 고프 , 1924~2014)
이러한 관점이 르 고프의 『서양 중세 문명』에도 담겨 있는 듯합니다. 그는 통념과는 다른 ‘장기 중세’를 제안합니다. 그가 말하는 장기 중세란 4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1,500년 동안의 시간입니다. 그가 이렇게 보게 된 것은 중세와 르네상스 간의 표면상의 대립을 근본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장기지속하는 구조들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를 특징짓는 경제적 시스템은 봉건 지대가 잉여가치를 흡수하며 확대 생산보다는 단순 재생산을 지향하는 봉건제 생산양식이었습니다.
또한 중세사회는 기독교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요. “장기 중세는 인간 속에서 또는 인간을 중심으로 사탄과 신이라는 거의 동등하게(물론 이론상으로는 사탄이 신에게 종속되었지만) 큰 힘을 지닌 두 권능 사이의 투쟁으로 점철”(23쪽) 되었다고 합니다. 좀더 미시적으로 보더라도 장기 중세는 ‘기도하는 자’ ‘싸우는 자’ ‘일하는 자’로 구분되는 3분 기능체계(조르주 뒤메질)가 지배하던 시기였으며, 짐수레와 말이 이용되었고, 병원이 탄생했으며, 점진적으로 문자 해독력이 증가했고, 이야기(사막의 교구들의 경구부터 민속학자들의 콩트 모음까지)가 만개했던 시대였다고 합니다.
『서양 중세 문명』의 1~4장은 연대기적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2~3세기에 시작된 로마의 붕위기와 붕괴에서부터 14세기 기독교 세계의 위기까지. 1,000년이 넘는 기간의 유럽사를 속도감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첫째로 로마와 야만족의 관계였습니다. 보통은 로마를 ‘문명’으로 게르만이나 고트족, 훈족 같은 이방인들을 ‘야만’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마련인데, 르 고프가 들려주는 로마사에서는 문명과 야만이 마치 일종의 파트너처럼 서로를 변형하고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항상 야만족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농민이나 노예로 만듦으로서 로마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왔고요. 또 역으로 로마 내부 사정이 좋지 않을 때에는 로마의 민중들이 야만화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반대로 야만족의 경우에는 그들 나름으로 지식과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었고, 로마를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로마가 붕괴되기 이전부터, 로마가 정복을 마친 직후부터 로마인들과 야만족들은 평화롭지만은 않은 공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또 한 가지는 ‘칸막이’라는 이미지였습니다. 로마 붕괴 이후 도시가 황폐화되면서 사람들은 촌락으로 이주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촌락화된 경제 체제에서는 사람들을 떠돌아다니게 둬서는 안 되고 땅에 붙들어서 뿌리내리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수직적으로는 위계적으로 계층화되고 수평적으로는 칸막이화된 사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토박이들의 세상이 온 것이죠. 상식적으로는 이것을 퇴보라고 말합니다. 르 고프는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이 전면적인 퇴조를 나타냈다고 말합니다. 생산능력이 떨어지면서 양적으로 퇴보했고, 예술적 취향과 도덕이 퇴보했으며, 정부의 행정력과 위엄도 퇴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퇴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교역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생산이 증대되고, 장엄한 건축물들이 지어지는 것이 진보이자 바람직한 상태라고 전제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를 퇴보라고 당연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고대에서 중세로의 진입은 퇴보가 맞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중세 세계의 형성이란 단순히 전보다 상대적으로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을 넘어서 전혀 다른 합리성과 삶의 방식과 심성의 탄생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르 고프가 보여주는 중세 세계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집니다.
다음 시간에는 『서양 중세 문명』을 7장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 『텍스트의 포도밭』은 1장을 읽어오시면 되고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요새 엄청 바쁘시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시고 세미나 진행하시고, 강의하시느냐 노고가 크세요~
이번 일리리 세미나는 중세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재미있는 시간이예요~좋은 세미나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우리 간식 순서, 후기 순서 정해주소서~♥
요새 엄청 바쁘시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시고 세미나 진행하시고, 강의하시느냐 노고가 크세요~
이번 일리리 세미나는 중세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재미있는 시간이예요~좋은 세미나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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