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드디어 중세라는 시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계기부터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이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를 뚫고 솟구쳐 나오려 하는데요. 독수리 타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의 글쓰기 속도의 한계를 지그시 긍정하면서 타닥타닥 그 계기들을 소환해보려고 합니다. 공부를 하면서 거듭 느끼는 것은 ‘친구’가 (요즘은 ‘타자’라는 말로 우리 주변을 휩싸고 도는) 없이는 뭣도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친구 따라 강남 가고’ ‘거름 지고도 장에 가’지요. 내 의지가 결국 나만의 의지가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되네요. 일리치를 공부하다보니 일리치가 가게 된 중세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지요. 일리치가 중세로 간 까닭은? 그게 궁금해 ‘중세서양문명’을 읽다 보니 또 중세의 사유의 세계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 ‘중세철학사’를 또 읽게 되었지요. 그 시간에 만나는 새로운 친구들은 또 어떤 세계를 품고 온 사람들일지, 그 친구들, 미리 규정되지 않는 타자들이 함께 가는 길이 어디로 뻗을지, 그리고 저는 어떤 내가 되어갈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서양중세문명>을 두 번째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세는 두텁다, 예요. 우리는 그간 식빵으로 치자면 중간 하얀 속살 부분을 따로 제쳐두고 문명사의 얇은 끝부분을 돌아다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중세라는 부분은 미지의 세계라는 의미지요. 그 미지의 세계를 횡단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근대 이후라는 오늘이 좀더 풍부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겠다는 어렴풋한 희망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중세암흑기’라는 네이밍
중세의 시작과 끝도 역사가들의 견해에 따라 다른데요. 로마제국의 쇠퇴와 게르만족의 이동이 시작되는 4세기~5세기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15세기까지를 중세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그 르네상스도 중세의 일부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서양중세문명>에서는 르네상스에도 세 개의 르네상스가 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란 고대적 전통으로 복귀하자는 주장인데, 지식인들은 ‘고대 원천으로 참으로 복귀해야할 필요성’이 느껴졌던 시기가 각각 ‘카롤루스 왕조 르네상스, 12세기 르네상스, 그리고 근대 여명기의 대르네상스’로 볼수 있다는 거죠. 즉 르네상스라면 중세의 극복이라 생각하지만, ‘장기 중세’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르네상스는 앞선 ‘르네상스들’의 종합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관점에 따라 근대가 시작되는 19세기까지도 중세에 포함될 수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중세는 로마제국의 멸망에서 근대까지, 천년이 아니라 거의 1500년의 역사를 갖는 시기라는 의미입니다.
흔히 중세는 종교 이데올로기에 지배된 철학의 암흑기로 보는 견해가 팽배하죠. 그러나 사실상 ‘중세 암흑기’는 대르네상스라 불리는 계몽주의 시대 인문학자들에 의한 전략적 네이밍이었다는 겁니다. 즉 인간 이성의 빛으로 세계를 질서 짓고자 했던 계몽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중세는 기독교 세계였고 유일신의 지배를 받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세계였다는 겁니다. 일요일 아침 읽은 ‘중세철학사’에서는 그런 사정을 이런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죠. “이러한 선전은 낡은 사고방식의 사고와 행위를 반대하는 인문주의자들 및 종교개혁가들의 반동으로서 16세기에 시작되었다.”(9쪽) 그동안 저도 중세를 이 책과 같은 의식으로 접근한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중세 암흑기’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자크 로고프는 아날학파에 속하는 역사가예요. 우리들 대다수는 실제로 역사학의 대해 일정에 고정 관념을 갖고 있죠. 바꿔 말하면 역사학은 이런 성격이어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을 갖고 있는데, 이를테면 역사학은 국가나 민족, 혁명이나 전쟁, 노동과 계급투쟁 등과 같은 거대하고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맥락을 잡아주고 미래를 위한 전망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은 보편사와 총체사로서의 역사를 서술하고 일정한 목적을 행해 진보한다는 관념에 입각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아날학파 계통의 역사가들은 지금까지의 그러한 진보주의와 목적론에 입각한 역사, 보편주의와 총체사의 관점을 거부하면서, ‘장기 지속’의 관점, 즉 정치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는 역사가 아닌 저변에 그 변화를 가능케 하는 토대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를 구성하는 관점을 취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이 아주 재밌었어요. 중세인들이 시간과 공간을 느꼈던 감각, 기독교가 정론을 구성하는 과정에 끼인 수많은 이질적 요소들...등 책을 읽다가 상상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자주 들었습니다.
“강제로 개종 시켜라”
이번 시간에 읽은 부분을 복기해보면, 무엇보다 중세는 기독교 세계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제국이 팍스 로나마라는 절정기 안정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하는 4세기 후반, 게르만의 이동이 시작되는 시점과 맞물리죠. 로마가 유대교의 신앙을 국교로 공인하는 과정까지, 그러니까 기독교 교리가 정론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듯 평평한 시간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배제하는 과정 속에 우리가 아는 하나의 기독교가 성립되었는데, 거기에는 여전히 여러 갈래의 대항세력들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중세의 ‘새로운 기독교 세계’는, 수세기 동안 기독교 신앙이 황제와 일부 지배계급 등 보다 소수에게만 부과되었던 초기 기독교 세계와는 달리, 무력을 통해 위로부터 개종된 기독교 세계로 향해가게 됩니다. 13세기 말에 이르면 기독교 세계는 선교 활동을 통해 크게 신장되었고,그 캐치프레이즈는 “강제로 개종 시켜라” 였다는 겁니다. 중세 기독교세계는 결코 하나의 기독교 질서에 모두가 복종했던 고요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세계는 새로운 신자는 무력으로 받아들였지만, 비신도는 배척했고 사실상의 종교적 인종주의에 입각해 스스로를 규정하는 폐쇄된 사회’(245쪽)였다고 합니다.
유동하는 중세
저는 중세가 엄청난 유동의 시대였다는 부분이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중세의 삶의 기반은 토지였습니다. 농민에서 영주에 이르기까지 각 개인과 가문은 다소간 광범위한 임시적 소유권이나 용익권만을 갖고 있었죠. 농민의 토지는 영주의 몰수 가능한 잉여물이었고 토지도 윤작 순서에 따라 촌락 공동체에 의해 재분배되기 일쑤였기 때문에 농민들은 영주의 의지에 따라서만 정착이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농민은 탈주라는 수단을 통해, 후에는 법률적 해방을 통해 영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죠. 개인적으로건 집단적으로건 농민의 이주는 중세 사회와 인구통계학상의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였다는 겁니다. 저에게는 중세의 공간 중, 숲이 특히 흥미로웠는데요. 서양 문명에서 자주 나오는 ‘사막’은 사실 중세의 숲을 의미해요. 중세적 공간에서 숲은 이중의 의미를 띱니다. 숲은 세속으로부터 도피를 선택한 이들, 은둔자. 연인, 방랑기사. 산적, 무법자들의 도피처였습니다. 숲은 농민과 가난한 노동자에게 수익의 원천이요, 영주에게는 산림 자원으로써 자신들의 권리를 생산하는 곳이기도 했죠. ‘왕들은 왕국에서 숲을 가장 많이 소유한 지주였으며, 또 그런 지주로 남고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215쪽) 그러나 한편 숲은 상상적 혹은 현실적인 위협과 위험으로 가득한 중세 세계의 불안한 지평이었다는 겁니다. 순례자와 온갖 부류의 방랑자가 길에서 떠돌던 시대가 중세였다는 점, 떠도는 사람들이 길에서 만나고 숲이라는 여지의 공간에서 뜻하지 않은 것과 접속할 수 있었던 시대가 중세였죠. 중세의 ‘숲’ 같은 비정상인들의 도피처가 우리 시대에는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인’마저 누군가의 소유물인 ‘산’에서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버섯 하나라도 채취할 수 있는 현실, 너무나... 숨을 곳이 없는 얇고 투명한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그렇게 돈을 모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세인들의 망탈리테
중세의 물질적 생활은 오늘날 우리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처참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중세인들의 망탈리테 (심성구조) 속에서 생산은 생존을 위한 차원의 것에 한정되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오늘날처럼 생산에 따르는 당연한 관념, 즉 이윤을 남기고 그 이윤이 재투자 되는 그런 방식은 이들에게 생소했다는 겁니다. 이들의 심성 구조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듯 결핍 = 결여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점에서 중세인들에게 기독교라는 종교가 어떤 의미였을지, 좀 더 다층적으로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들의 시간관, 공간관은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그 마음의 영역이 두텁고 깊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기독교라는 신의 질서는 중세인들에게 만물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차지해야 할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감각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물이 각각 제자리에 있을 때 하느님은 기뻐하신다고 생각했겠죠. 반면 근대인의 오만, 그 질서를 관장하는 진화론의 꼭대기에 선 만물의 영장이라는 관념이 중세인들에게는 얼마나 불경스럽게 보였을까, 생각해봅니다. 중세를 지나치게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샘들과 중세 문명을 방랑하듯 거닐다 다시 돌아오니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이렇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중세, 참 낯설고도 매혹적인 세계였습니다.
중세는 식빵의 하얀부분이다! ㅋㅋㅋ 재밌는 비유네요. 독수리 타법 덕분일까요? 샘 후기에서 우리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확인한 중세의 다층적인 면모들이 여유롭게 펼쳐지는 듯합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듯하지만 유동성을 포함하고 있고, 궁핍으로 물들어 있는 것 같으나 결여를 모르는 세계… 중세는 아주 잔잔하게 우리의 상식을 뒤흔들어 놓는 것 같네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