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인류를 위해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
앙상한 풍요
가난한 사람들은 남의 명령에 따라 꿈을 꾸지는 않겠다고 거부했다. 돈을 주며 꿈을 꾸라는 명령은 오히려 그들을 난폭하게 만들었다. 막대한 자금이 미국의 소수와 라틴아메리카의 다수를 미국식 중산층의 세상에 통합시키는 데 쓰였다. 그 세상이란 많은 이가 대학에 다니고, 일반적인 소비수준을 유지하며, 적당한 가구용품을 갖추고, 보험에 들고, 휴일에는 교회나 영화관에 가는 곳을 말한다. (29~30쪽)
풍요로운 삶을 동경한다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 시대의 풍요는 삶의 다양성을 키워내지는 못하는 듯 하다. 오히려 풍요는 어떤 삶의 방식을 옳지 못한 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면 ‘가난’과 같은 삶의 방식. 이 시대에 삶을 수식하는 풍요라는 말은 풍부한 함의를 지니지 못한다. 다만 ‘미국식 중산층의 생활방식’이라는 단일함을 표상한다. 풍요의 의미를 더 다양하게 가져가려 해봐도 ‘르네상스 이후 서구문화 같은 한 시대가 가진 통념’(머리말, 10쪽)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원한다지만 이 풍요로움을 가능케 하는 풍부한 이질성은 상상할 수 없다.
‘순수한 부자, 우리의 풍요가 만들어내는 상상력은 기껏해야 이 정도다. 태생적으로 맘껏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가난은 1도 모르는, 그런 배경을 동경한다. 무제한의 소유와 소비를 완벽한 삶의 조건으로, 아니 삶의 조건이 완벽히 세팅될 수 있다는 허상을 꿈꾼다. 태생적으로 ‘순수한 부자’는 학살, 착취를 정당화하는 제도와 법률, 살기 위한 저항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알고도 모른 척 하는 미국과 서구의 생활방식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순수한 부자’는 희생자의 피와 폭력으로 가능했다. 이 시대엔 풍요가 삶에 대한 위협이 되어버린 것 같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와 미국의 생활방식은 이질적인 것에 대해 또는 이방인을 만날 때 대단히 폭력적이었다. 지금도 폭력과 전쟁을 먹고 자란다.
깨달음이라는 혁명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말할 때는 사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말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가진 모든 힘들을 발현할 가능태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좀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되고, 다른 사람과 더 조화를 이루며, 더 사랑하고, 더 자각하는 힘 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타락할 가능성도 있다.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힘을 쏟으려는 열정은 타인 위에 군림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욕망으로 변질 될 수 있다.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은 삶을 파괴하는 욕망으로 타락할 수 있다. (『깨달음의 혁명』, 머리말, 11~12쪽, 에리히 프롬)
이 책 『깨달음의 혁명』 1~6장의 많은 글들이 라틴 아메리카와 식민지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미국식 생활방식을 이식하려는 시대(지금도 그렇지만)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민주주의 수호’ 또는 ‘자선’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베트남에 군대가 보내지고, 라틴아메리카에 선교단이 파견된다. 베트남에 군대 파견을 비판하고, 라틴아메리카 지원이 군사정권을 비호하는 일이자 미국내 빈민과의 전쟁이 경찰인력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밝히는 그의 글이 당시에 얼마나 위험하고 뜨거운 일이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이 폭력성을 직시한 일리치는 진보와 자선이라는 이름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오려는 선교사들을 막고자 한다. 라틴아메리카 주교장과 일리치가 나눈 대화. 일리치는 ‘필요하다면 라틴아메리카로 오는 선교사가 오지 못하게 헌신할 각오’를 밝힌다. 성직자의 신분으로 선교를 막겠다는 그의 각오가 놀랍다. 하지만 이어지는 주교장의 답은 더 놀랍다.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 선교사는 필요없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선교 행위가 그 대상들의 분노와 또다른 폭력을 낳고 있음을 우리는 누군가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가 교육하고 그것을 알려야 하는 이들이 이곳에 오는 선교사들이라는 것.’(32쪽) 마누엘 라레인 주교에게서 선교사들은 부정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새로운 씨앗을 잉태할 수 자들로 바뀐다.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자각할 때 그들의 행위는 미국식 생활방식을 멈추는 동력이자, 다른 삶을 시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194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물밀 듯 들어오는 푸에르토리코인들에 대해 쓴 ‘외국인 아닌 외국인’이라는 글이 있다. 수십 년 전 유럽에서 이주해 온 이들과 이 글이 쓰여진 195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이주해온 오는 이들 사이의 갈등을 본다. 일리치는 푸에르토리코인들이 살아온 역사적 배경과 그들이 일궈온 삶의 양식 – ‘그가 살던 곳에서 집이란 ‘안’에서 잠을 자고, 그 ‘둘레’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을 이어가는 오두막이다. 이 오두막은 일상 활동의 중심을 제공할 뿐 경계가 아니다.’(50쪽) 등 ―을 주욱 소개하다가 미국과 뉴욕 사회에 이민의 가치를 밝히며 글을 맺는다. 그의 삶에서 이민자는 ‘기여자, 공헌자’이며 ‘다리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이방인과 이민자들은 늘 수혜자였다. 그리고 이방인들 앞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베풀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선량한 이였다. 이민자에 대한 연민과 우월감을 오가며 그들의 다름이 사라질 것을 기다리는 자였다. ‘대학, 소비, 적당한 가구, 보험, 휴일과 영화관’같은 삶을 원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들이 빨리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 나에게 완전한 삶의 조건처럼 작동하는 미국 중산층의 생활방식에 그들도 ‘통합’되기를 바랐다.
‘시골 버스에 오른 도시 신부에게 어느 집 염소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려주는’(66쪽) 만남을 ‘침묵의 문법’에서 일리치는 들려준다. 이번 세미나에서 오랜 시간 우리에게 이야기를 나누게 한 이 ‘소리와 침묵’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염소가 병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도시 신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우리는 묵직한 맘으로 한참을 멈춰있게 된다. 이 대목을 읽던 나에게도 ‘침묵의 공명’이 인다. ‘이런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궁금증이 동한다. 그리고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기까지 있었을 그 지난한 시간과 그 버스에서 내린 후 이어질 삶까지 이것저것을 상상하게 된다. 쉽게 단정지을 수 없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그 말 속에 머문다. “언어를 배우는 일은 소리보다는 침묵을 배우는 일”(64쪽)이라며 소리와 침묵의 관계를 역전시키고,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침묵”(74쪽)을 통해 ‘스스로 무력’이라는 말로 무력의 맥락을 전혀 다른 곳에 가져다 둔다.
일리치의 말은 낯설다. 일리치의 삶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말들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보며 우리도 이 말을 우리 삶의 새로운 맥락 속에서 실천할 날을 기다린다. 일리치가 숙제처럼 내준 말, ‘무기 대신 돌멩이와 몽둥이’(38쪽)를 드는 ‘깊은 차원의 불복종을 증언’하는 삶을 이야기하며 『깨달음의 혁명』 첫회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경희쌤의 따뜻함이 글에서 느껴져요~❤️ ‘침묵의 공명’ 함께 공부할 수 있어 기뻐요
경희샘의 꼼꼼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던 중 한군데 놀라운 곳이 있어 몇번을 읽었어요. 일리치와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 의장이었던 마누엘 라레인 주교와의 대화 부분입니다. 샘의 글에서는 '마누엘 라레인 주교에게서 선교사들은 부정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새로운 씨앗을 잉태할 수 있는 자들로 바뀐다'고 했던 부분이죠. 선교사들이 와서 그들의 방식대로 라틴 아메리카를 조직할 것은 필연이므로 성직자인 우리가 그들을 오히려 교육하자는 입장 말입니다. 일리치에게 그 주교장은 동지였을까요? 그런데 주교장 개인의 입장은 그랬을지 모르지만, 교회라는 조직은 결국 '돌맹이나 몽둥이' 가 아닌 '무기'를 선택하고 말았죠. '무기 대신 돌맹이나 뭉둥이를 들자'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참 일리치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수단과 목적, 과정과 결과, 행위와 존재가 분리되지 않는 삶이 바로 일리치의 길이라는 생각 또한 드네요.
나는 이방인들 앞에서 연민과 우월감을 오가며, 나와 같은 삶의 방식(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한 미국식 중산층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길 바랬다... 다른이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들을 줄 아는 일이야 말로 '침묵의 공명'이다라고 저는 경희샘 후기를 읽었습니다. 🤗
자선이라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러 단체에서 이루어지는 자선바자회, 자선패션쇼, 자선행사를 보면서 저게 진짜 누구를 위한 일인지 의문을 품은 적이 많았습니다. 왠지 전 즈그들끼리의 잔치같아 보였거든요. 내가 안쓰는 상품들을 기부함으로써 기금을 마련하여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 이면에는 나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 그런 물질적인 도움은 필요없는 상위층에 서있는 존재로서 정작 수혜자는 보이지 않는, 상품으로 둘러싸인 이벤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자기위안의 행위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함과 부유함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그들도 나에게 어떤 도움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한 채 벽사이에서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각자 어느곳을 향하고 있는지... 이것이 돈을 주고 꿈을 꾸라는 명령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그의 삶에서 이민자는 ‘기여자, 공헌자’이며 ‘다리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이방인과 이민자들은 늘 수혜자였다. 그리고 이방인들 앞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베풀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선량한 이였다.”
다른 샘들 말씀처럼 이 부분이 정말 와닿습니다. 일리치는 정말로 푸에르토리코인들의 ‘기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기여는 굉장히 독특한 것인데, 일리치가 밝히듯 많은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뉴욕에 ‘정착’하러 온 것이 아니었죠. 일리치에게 이건 과연 미국식 생활방식에 적응하지 않고 자기 고유의 이질성을 지닌 채로 뉴욕이라는 도시와 결합할 수 있을지를 실험하는 문제였던 것 같더라고요. 일리치의 섬세하고 유연한 시선이 새삼 놀랍습니다. 이민을 이방인이 현지에 통합되는 과정이 아니라 뉴욕 사회가 변할 수 있는 계기로 본 게 아닐까 싶네요. 저출산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사회도 이런 실험이 필요하게 되지 않을까 혼자 상상해봅니다 ㅎㅎ;
샘의 글을 읽고나니 주교장의 선택이 결국 무기를 드는 행위로 일리치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그 선교라는 활동이 유지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문득 어떤 행위를 단호하게 멈춰야 하는 순간에 멈추지 못하는 관성이 작동하고 그런 선택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주교장의 답을 그렇게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