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다이고쿠 다케히코의 『정보사회의 철학』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낯선 개념이 많아서 어렵기도 했지만, 우리가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이라 재밌었습니다.
저자는 마샬 매클루언의 미디어이론을 바탕으로 삼아 디지털 네트워크 미디어를 분석합니다. 매클루언은 토론토 대학 동료인 해롤드 이니스의 소통 이론에서 착안하여 “‘비가시/투명한 것’으로서 어떤 체험의 시작을 가능하게 해주는 광의의 기술적 환경”(21쪽)으로서의 ‘미디어’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매클루언은 자신의 이론을 “미디어가 메시지이다.”The Medium is Message. 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표현합니다.
매클루언이 말하는 미디어란 무엇일까요? 저는 언어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조건으로 이해했습니다. 음성, (손으로 쓴) 문자, 활자, 인터넷. 그런데 핵심은 이러한 기술적 조건이 우리의 언어적 경험 자체를 틀 짓는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존재 양식은 언어 위에 쌓아올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체험과 기억도 언어를 매개하고요.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사회적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푸코는 실어증 환자들은 사물들을 분류하고 질서 있게 나열할 수 있는 테이블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죠.
그런데 이때 언어란 그 나름의 역사성을 갖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형성된 언어적 규칙성 속에서 언어에 접근하게 되지요. 언어가 사물과 1대1 대응하는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언어는 제 나름의 규칙성, 계열화, 배치 속에서 사물들을 왜곡하고 변형하고 출현시킵니다. 그런데 언어적 경험의 역사성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매클루언은 여기에서 기술적 환경에 주목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발명한 모든 기술은 인간의 감각기관의 연장으로, 우리 체험의 질과 틀을 확대하고 변용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감각적 경험들은 각각의 감각들의 비율과 배합에 따라 “복수의 감각 간에 평형 상태를 이루는 균형잡힌 생태계”(23쪽)를 형성합니다. 인간 감각의 연장인 기술환경 또한 감각배합 비율에 따라 평형상태를 이룹니다. 이것이 매클루언이 말하고자 하는 미디어/환경입니다.
인간의 문명은 각 시대의 지배적인 미디어 기술에 따라서 각각 닫힌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해왔습니다. 음성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공동체, 이를 계승하고 변형한 문자 미디어 중심의 사회, 그리고 이후의 활자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개인주의적이고 내면 형성적이며 대상 묘사적인 사회.
저자의 핵심적인 주장은 네트워크 미디어가 활자 미디어를 대체하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네트워크 미디어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자는 지식의 이미지와 지식을 둘러싼 조건이 어떻게 변화했으며 또 지금 어떠한 변형을 겪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이를 설명합니다. 음성 미디어에서 지식은 소규모 공동체 성원들의 삶과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신화라는 범지는 “성원의 규범이나 생활의 지혜로 그것의 공유 여부를 판단”(53쪽)합니다. 그런데 문자 미디어의 경우에는 앎이 곧 삶이었던 관계는 끊어지거나 지연되고, 지식은 실재를 재현하는 역할을 부여받게 됩니다. 또한 기록과 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지식의 설계자와 그 이용자 사이의 역할 분화와 고정이 이루어지죠.
네트워크 미디어는 지식의 조건을 또 한 번 바꿔놓습니다. 지식은 이제 단순히 실재 세계의 사본이기를 멈추고, “현실 전체에 퍼져 있고 그것을 둘러싸며, 자신의 내부에 현실 세계를 허용”(58쪽)합니다. 네트워크 미디어의 디지털적인 성격은, 지식이 활자의 형태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전면적으로 존재하도록 했고,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유일한 하나의 범지로 모여들도록 했습니다. 지식은 실재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실재의 한 구성요소가 되고, 현실을 재구축합니다. 또한 설계자와 이용자 사이의 분리를 해소합니다. 네트워크의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성격이 누구든 지식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빅데이터에 의해 설계-이용-분석이 모두 일종의 데이터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요.
모든 것의 데이터화. 네트워크 미디어와 더불어 우리는 데이터 자체의 자율적 운동을 목격하는 중입니다. 단순한 짐작으로 온갖 데이터들이 수집됨에 따라 이제 데이터는 목적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체계성과 포괄성, 실용적 목적성을 넘어선 데이터의 무한한 흐름 속에서 인간 주체는 하나의 계기로 기능할 따름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보아야 할까요? 저자는 우리 시대 미디어가 규정하는 사고방식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는 조건을 사유하는 것이 곧 그 바깥을 열어놓는 일이겠죠(자기인식=자기비판). 우선 책을 따라가면서 네트워크 미디어가 우리의 인식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는지를 계속 질문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정보사회의 철학>을 끝까지 읽고 모입니다. 발제를 나눠 맡았습니다. 3장은 경덕샘, 4장은 저, 5장은 미현샘께서 발제해주시겠습니다. 간식은 난희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존재양식은 언어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도구와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하는 말입니다. 도구란 인간의 외부에 그 자체로 있으면서 인간의 의지로 작동하는 수동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요. 사실 우리의 존재양식이 그 언어(도구)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란 말에 도구와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인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위 말하는 정보사회를 살면서 느끼는 새로운 감각들 - 지식이 사본이기를 멈추고 즉각적으로 현실을 재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그리고 그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 을 건화샘 말대로 현재진행형의 사건을 다루는 책이라 너무 반가왔습니다. 지금 겪는 새로운 감각들이 두렵기만 해서 외면하기만 했는데요. 이 현상들을 무분별의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하나 분류해내면서 새롭게 정의하는 그의 언어들이 지금의 상황을 생각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주면서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현상 내부에 (사고를 규정하는 조건) 강력한 중력장을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우선 책을 따라가면서 네트워크 미디어가 우리의 인식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 질문해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