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채운샘 특강이 있었습니다. 채운샘께서는 푸코가 ‘언표’와 ‘담론’이라고 하는 낯선 용어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를 설명해주셨습니다. 『지식의 고고학』은 어떤 것을 진리로 만드는 내적·외적 힘관계들을 다루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언어를 중립적이고 투명한 대상으로 보는 관점과 충돌하겠죠.
언어학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랑그’, 보편적이고 추상적이며 실체적인 언어입니다. 현실적으로 발화되고 사용되고 높거나 낮은 음조로 말해지고, 왜곡과 변형을 겪는 것은 ‘파롤’의 차원입니다. 언어학은 이런 파롤의 차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의 대상으로서 랑그를 우선시합니다. 구체적인 상황,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장(場)으로부터 분리된 ‘언어’ 그 자체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채운샘께서는 우리가 사전검색을 할 때의 태도가 이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단어가 말해진 맥락을 벗어나서 그 단어가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정말이지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는 ‘존재’하는 걸까요? 존재한다면 어떤 그것은 어떤 차원일까요?
푸코는 실체로서의 언어, 과학의 대상으로서의 중립적인 랑그를 부정합니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언어는 언제나 어딘가에 기입된 채로 존재합니다. ‘배가 고프다’라는 단순명료한 문장도 누구에 의해서, 어떤 상황 속에서 말해지느냐에 따라 의미의 층위가 달라지겠죠. 가령 빈민이나 난민들에게서 말해질 경우에 이 문장은 정치적 발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언표(言表, énoncé)는 영어로 statement입니다. 사전검색을 해보면 성명, 진술, 기재...라고 나오네요. 푸코가 서론에서 말했듯, 언표는 정말로 기념비(monument), 물질적 파편인 것입니다.
채운샘께서는 또 ‘sentence’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sentence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선고이기도 합니다. 법정에서 판사가 ‘피고를 징역 1년 형에 처한다’라는 문장을 읊는 것은 동시에 피의자를 범죄자로 변형시키는 선고행위이기도 하죠. 이때 판사의 발화행위는 의미작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물질성을 갖습니다. 판사의 발화는 현실에 변형을 가하는 하나의 사건이죠. 이렇게 그 자체로 물질은 아니지만 물질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언어, 사건으로서의 언어를 푸코는 언표라는 말로 개념화하고자 했던 것이죠. 꼭 판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모든 언어는 명령어라고 합니다. 우리는 발화행위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해석과 변형을 가하고, 서로에게 힘을 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가 물질성과 관계되어 있고 그 자체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은 또한 언어가 언제나 희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해진 것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극소수라는 것인데요. 이 말은 우리가 랑그의 규칙이 허용하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도나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걸까요? 그건 우리가 언어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굉장히 납작한 이해 방식이겠지요. 우리는 언어를 이용하여 소통하고 표현하지만, 반대로 언어적 배치가 허용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담론적 희박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채운샘은 이런 관점에서 의문에 붙여지는 것이 지식의 진보라는 관념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시대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착각이라는 말이죠. 지식이 많고 적음이나 진보된 정도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우리는 결국 우리 시대의 지식을 규정하는 희박한 담론적 장 안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문서고와 에피스테메에 대한 저의 이상한(?) 질문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에피스테메가 문서고라는 개념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별 근거 없이 넘겨짚었는데, 사실 두 개념은 층위가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문서고가 우리에게 주어진 선험적 장을 의미한다면 에피스테메는 앎의 가능성의 조건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층위가 다른 개념을 끌어들이게 된 것은 『말과 사물』에서 『지식의 고고학』으로 넘어오면서 푸코의 관심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말과 사물』에서 그가 인식 가능성의 조건을 역사적으로 탐구했다면, 『지식의 고고학』에서는 담론을 형성하게 하는 외적이고 내적인 조건, 담론을 가능하게 하는 힘들의 배치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4장 ‘고고학적 기술’ 1~2를 읽고 과제를 작성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은주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
개념 정립에 많은 도우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