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는 『지식의 고고학』 4장 ‘고고학적 기술’에 와서 드디어 ‘지식의 고고학’의 정체를 밝히려는 듯 보입니다. 언표와 담론이라는 기본 개념을 날카롭게 벼린 푸코는 이제 ‘적용의 가능한 영역들’로 논의를 이어갑니다. 그 자신이 ‘고고학’이라고 이름 붙인 이 분석의 쓰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죠. 고고학을 정의하기 위하여 푸코는 그 이복형제 격인 ‘지성사’와 비교하고 구분하는 전략을 취합니다. 그런데 푸코가 그와의 긴장관계 속에서 고고학의 개념규정과 적용영역 등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지성사’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고고학을 지성사로부터 구분해내는 작업이 그에게는 왜 중요했을까요? 저는 그 힌트를 『푸코의 맑스』에 실린 인터뷰로부터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조금 길기는 하지만 한 번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당시의 문제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과학사가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한정지을 수 있을까 혹은 어느 정도까지 외부적 요소를 도입할 수 있을까? 과학이 하나의 역사를 가지며 역사적으로 결정된 사회 속에서 발달해 간다고 할 때, 과학 속에 도입되는 우발적인 영향들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은 다른 질문들로 이어졌습니다. 과학에 대한 합리적인 역사를 생산할 수 있을까? 과학사에 스며든 다양한 사건들, 우연들, 그리고 어쩌면 비합리적인 요소들 가운데서 명증성의 기준이 발견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어느 정도는 맑스주의적인 혹은 현상학적인 사유에 의해 진척된 것이라면, 나에게는 그 질문들이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내가 니체를 읽고 그에 대해 공감한 것이 정확히 이러한 지점에서 연결되었지요. 즉, 내게는 합리성의 역사뿐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에게 그것의 역사가 얼마만큼 진리에 다가갔는가(혹은 그것이 진리로의 접근을 얼마나 방해했는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진리는 담론 혹은 지식이 그 자신과 맺고 있는 특정한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거나 하나의 역사를 가지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보기에 니체의 가장 매혹적인 점은, 그에게는 과학, 실천, 담론의 합리성이, 그것들이 생산할 수 있는 진리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진리 그 자체는 담론의 역사에서 하나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담론과 실천에 내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갈무리, 65쪽)
그 배경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푸코가 학생이던 시절부터 프랑스에서는 ‘과학의 역사’가 중심적인 화두였던 모양입니다. 과학의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 과학과 역사를 화해시킬 수 있을까. 역사로부터 과학의 토대를 발견할 수 있을까. 추측해보건대 이런 질문인 것 같습니다. 과학이 그 자체 하나의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현상이자 그러한 실재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명증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만약 과학(지식)이 경제적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장(場) 속에서 발생하였고, 그러한 외부적 요소들과의 관계를 떨쳐낼 수 없다고 한다면 과학은 어떻게 스스로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단순한 의견들과 참된 지식을 구분하는 것, 지식의 토대를 구축하고 담론의 질서를 세우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인식론의 문제는 언제나 정치 및 권력의 문제와 뗄 수 없습니다.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에 맞선 플라톤의 투쟁은 아테네의 정치적 무질서를 뜯어고치려는 노력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 및 인식은 역사적 장(場), 담론적 배치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됩니다. 마치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시각(視覺)이 관찰의 특권적 도구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 것처럼요. 푸코의 시대가 독특하다면 그것은 지식의 토대와 조건에 대한 물음이 역사적 지평 속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네요. 이것은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말하듯이 ‘재현의 시대’가 저물어간 결과일까요?
현상학과 맑스주의가 ‘과학’의 문제에 덤벼들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푸코의 선배들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겠죠. 푸코의 스승인 장 이폴리트, 푸코가 청강생으로 수업을 듣곤 했던 메를로-퐁티, 푸코의 친구이자 선배인 알튀세르. 그런데 푸코는 아마도 이들의 작업이 여전히 조금은 순진하거나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리를 비-진리와, 지식을 비-지식과 가까이 놓아도, 진리에 대해 보다 덜 경건한 입장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진리 그 자체의 역사, 진리를 진리로 출현시키는 조건과 그것이 활성화시키는 권력효과 및 그것이 생산해내는 주체화의 양식에 대해서 질문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서양의 근대적 형이상학 안에서 작동하는 진리에의 의지를 금욕적 이상주의와 연관시켰을 때 니체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진리 그 자체가 담론과 실천에 끼치는 내부적 영향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는 것.
고고학과 지성사의 차이가 이로부터 비롯됩니다. 지성사는 탄생, 연속성, 총체성이라는 테마를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건 낙관적이건 간에 앎을 힘으로, 하나의 효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실체화하는 한 그것의 기원과 연속적 진화(혹은 퇴화)와 지식 일반의 총체적 역사를 다루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겠죠. 반면 고고학은 “언설을 그의 고유한 부피 속에서, 기념비로서”(196쪽) 다룹니다. 언설들은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의미하기 이전에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고유한 실존을 갖습니다. 그것을 말하거나 기록하는 주체, 상황, 맥락 속에서 언표행위는 자기 부피를 지닌 채로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인접한 다른 언표들과 형성하는 계열들에 따라서, 그것에 평행한 비담론적 조건들 및 실천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작용이나 정보값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실재성을 부여받습니다. 이것이 푸코가 진리 그 자체의 역사, 담론 혹은 지식이 그 자신과 맺고 있는 특정한 관계들로 이해된 진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인데요. 일단 지금은 머리에 스팀이 너무 차서 여기까지 써야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지식의 고고학』 4장 3~4번을 읽고 과제를 작성해오시면 되고요. 간식은 미현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
고고학이 지성사의 이복형제라~~~재밌네요. 건화샘 덕분에 (푸코와 맑스)뿐만이 아니라,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와 신간 (미셸 푸코)까지 잠깐 뒤적거려 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재밌네요.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간식담당이라~ 잘 알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