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이번 세미나 역시 각자 정리해온 과제를 읽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모순에 관해 공부하고 세 번째 시간에는 비교적 사실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다른 내용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내용에서는 특히 책에 서술된 단어들이 너무 어려웠고 우리는 니체, 들뢰즈, 칸트 등을 소환하며 많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3. 모순들
언설들의 정합성을 신용하는 지성사는 언설들을 조직화하고 숨겨진 통일성을 복원시켜 주는 일관성의 원리를 찾아내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삼습니다. (이 난해한 말은 지성사는 하나의 사태를 일정한 입장에서 해석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겠지요?)정합성 재건을 위해 일관성을 가정해야 하는 지성사는 모순들이 필요 이상으로 확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모순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말들의 사용에 있어서의 불규칙성, 양립 불가능한 다수의 명제들,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의미 작용들의 놀이, 체계화할 수 없는 개념들을 다루는 경우 등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푸코는 지성사에 있어서의 이런 모순은 숨는 또는 숨겨지는 어떤 통일성의 외관일 뿐이므로 제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고학에서의 모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고학에서 모순은 언설의 우발 사건이나 외관이기보다는 언설의 실존 법칙 자체를 구성합니다. 언설은 모순으로부터 모순과 함께 나타납니다.
‘언설이란 하나의 모순으로 부터 다른 모순으로 가는 길이다.’(212)
고고학적 분석에 있어서 모순은 극복해야 할 외관도 이끌어내야 할 원리들도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부터 그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를 그리고 어떤 수준에서 그들이 근원적인 것이 되고 결과가 아닌 원인이 되는지를 탐색함이 없이 그들 자체로서 기술해야 할 대상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고고학에서는 고정주의적 판단과 진화주의적 판단과 모순이 이루었지만 고고학은 이 두 판단이 어떻게 종들과 류들에 대한 어떤 기술 속에서 공통의 자리를 가지는 가를 보여줍니다.) 모순을 기술해야 할 대상으로 취함으로써 고고학적 분석은 그들의 자리에서 어떤 공통의 형태나 테마를 발견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고고학은 그들의 간극의 형태와 측도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성사와는 달리, 고고학은 상이한 불화의 공간들을 기술합니다. 따라서 고고학적 분석에서 모순은 상이한 유형들, 상이한 수준들, 상이한 기능의 층위로 구성됩니다. 모순의 상이한 유형들을 보면 어떤 모순은 파생적이고 어떤 모순은 외재적이며 이들 양자 사이에 내재적 모순이 존재합니다. 내재적 모순은 언설적 형성 자체의 내부에서 전개되면서 형성들의 체계의 점 속에서 태어나 하위 체계들을 나타나게 합니다. 이 모순은 고고학적 분석에 적절한 내재적 대립을 보여줍니다.
고고학적으로 내재된 모순은 하나의 단순하고 순수한 사실이 아니라 언설적 형성의 상이한 평면들에 배분된 복잡한 현상입니다. 상이한 수준은 대상들의 부조화, 언표행위적 양태들의 발산, 개념들의 양립 불가능성, 이론적 선택들의 배제가 존재합니다.
상이한 기능이 수행하는 것은 세 가지로 어떤 것들은 언표적 장의 부가적인 발전을 분명히 하고, 어떤 대립들은 언설적 장의 재조직화를 이끌어 내고, 다른 대립들은 비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비판의 역할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언설적 형성은 복수적인 불화의 공간이자 상이한 대립들의 집합입니다.(복수적인 불화의 공간, 상이한 대립들의 집합의 의미에 대해 설왕설레가 이어졌습니다. 푸코 박사님~~무슨 말인가요?~~ㅇ) 결과적으로 소실되었다가 복구되는, 용해되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모순이라는 테마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암튼 모순이란 존재는 다른 무엇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 자기 자리를 갖는 것으로 본다는 뜻이라는 건화샘의 의견에 푸코의 단어들이 도무지 어려운 저는 다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 그런 내용 같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4. 비교적 사실
고고학적 분석은 언설적 형성들을 개별화시키고 기술합니다. 고고학적 분석은 언설적 형성들을 비교하고 대립시키고 합니다. 고고학적 분석은 비언어적 실천들과 관계 맺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고고학은 인식론적인, 또는 건축학적인 기술들과는 구분됩니다. (이는 내적인 모순 없이 연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인 듯합니다.)
고고학적 연구는 언제나 복수적인 것을 지향하지만 그 분석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실행하는 바의 것들과는 매우 달라서 고고학에서의 비교는 언제나 제한적이고 국소적입니다. 고고학은 일반적인 형태들을 드러내고자 하기보다는 단일한 구조들을 소묘하고자 합니다.
난희 샘은 세미나의 과제에서 이를 고전주의 시대 일반문법, 부의 분석, 자연사를 비교할 때 그 목적은 상호간의 일련의 기술 가능한 관계를 가진 담론적 형성들의 잘 규정된 집합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었다며 ‘이거 아님, 저거 아님, 그것도 아님’(이거, 저거, 그거의 내용은 숙제방에서 찾아보시라.)이라며 ‘Q1→A1, Q2→ A2 ’의 방법으로 정리함으로써 우리는 그 기발함과 재미있음에 많이 웃었습니다.
고고학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형성규칙들의 수준에 나타나는 대로의 유비들과 차이들의 놀이이며 서로 구분되는 다섯 가지의 과제를 함축하는데 그 과제들은 1)전혀 상이한 언설적 요소들이 어떻게 유비적인 규칙들로부터 출발해 형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2)각 형성들의 고고학적 모델들을 정의하는 것. 3)서로 상이한 개념들이 그들의 실증성의 체계의 분지화 속에서 유비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 4)고고학적 이념들을 지적하는 것. 5)고고학적 상호관계들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또한 고고학은 언설적 형성들과 비언설적인 영역들(제도, 정치적 사건, 경제학적인 실천들과 과정들) 사이의 관계들을 드러냅니다. 이런 비교들은 문화적 연속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나 인과율의 매커니즘을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은 언표적 사실들의 집합 앞에서 그 집합을 지배하는 형성의 규칙들이 어떻게 비언설적 체계들에 연결될 수 있는가를 규정하고자 합니다.
18세기 말 정치적, 경제학적 사건들, 그리고 제도적 변화들과 동시대적으로 수립되었던 임상의학의 예를 들어본다면 이 관계는 ①의학적 대상의 분절 및 제한의 수준 ②정치적 실천과 의학적 언설 간의 관계 ③ 이 관계는 의학적 언설에 부여된 기능 속에서 또는 이 의학적 연설에 요구되는 역할 속에서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실천으로서의 의학적 언설이 어떻게 그에 외부적인 그리고 그 자체 언설적 성격을 지니지 않는 실천들과 연결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 다음 주는 선생님의 강의네요. 벌써 기다려집니다.)
크으 꼼꼼한 후기 감사합니다 현정샘~ 이번에 읽은 부분은 전반적으로 <말과 사물>에 대한 코멘터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자기 책에 대한 푸코의 (그러나 여전히 또 새롭게 어려운) 해설을 듣는 느낌이랄까요... 샘의 후기 덕분에 텍스트와 토론 내용을 복기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