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속을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채운샘의 이번 강의는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를 보는 푸코의 관점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이 바로 불연속인데, 막상 이때 불연속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질문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반(反)목적론적이고 생성의 사유이고... 하는 식으로 아사무사하게 정리하고 있었지요. 이번 강의가 막연했던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1969년, 푸코와 들뢰즈는 각각 『지식의 고고학』과 『의미의 논리』를 썼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음조로 비슷한 사유를 펼쳐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건’의 개념이 있었고요. 사건이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푸코와 들뢰즈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빚을 지고 있던 구조주의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푸코와 들뢰즈, 그리고 그 동세대의 철학자들에게 구조주의는 주체중심적인 사유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탈출구 같은 것이었습니다.
구조주의는 주체가 구조의 생산물임을 보여줌으로써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는 사유를 뒤집었습니다. ‘구성적 주체’를 사유한 것이지요. 구조주의는 기호와 상징체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인식의 주체에 대해서 인식의 틀, 격자, 구조가 선행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차이’인데요. 구조주의에 따르면 인식은 차이화의 효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A라는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언제나 A'와의 관계 속에서라는 것이죠. 차이화란 단순한 비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비교는 비교의 항들이 되는 고정된 대상들을 전제하지만, 차이화는 각각의 대상들 자체가 인접한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출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A를 A로 만들어주는 것은 A가 A 아닌 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 틀, 격자를 다른 말로 ‘구조’라고 부르는 것이죠.
말하자면 구조주의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의 지평과 새로운 문제화의 가능성을 확 열어줬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구조에 의해 만들어진 거야!’라고 말함으로써 한편으로 사람들은 미시적 삶의 영역으로부터 정치와 사유의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또 경직된 ‘올바름’들과 무거운 거대담론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겠죠. 진보와 해방을 노래하는 인간중심적인 이상주의와도 거리를 둘 수 있었을 것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구조’만 가지고는 ‘생성’을 사유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관계성을 사유하고, 주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구조가 주체에 선행하는 것이라면 바로 그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고 또 변형되는 것일까요? 구조가 부동의 실체라면, 우리가 어찌해볼 길이 없는 숙명이라면 그것은 ‘주체’라는 올가미보다 덜 억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들뢰즈와 푸코는 ‘구조의 바깥’을 사유하고자 했습니다. 구조의 바깥을 우리는 사건, 생성, 불연속, 우발성 등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푸코는 이러한 ‘바깥’을 권력과 힘의 개념을 통해 사유했고, 들뢰즈는 욕망의 개념을 통해 사유했습니다. 구조의 바깥으로서의 생성, 불연속, 사건이란 무엇일까요? 채운샘은 바둑과 축구의 예를 가지고 쉽고 재밌게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가령 알파고의 버그를 일으킨 이세돌의 78수. 이 수는 여전히 바둑판의 격자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세돌이 놓은 돌이 다른 돌들과 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죠. 그러나 이 수가 놓이기 전과 후로 바둑판의 배치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금까지의 흐름, 배치, 방향을 뒤흔드는 돌연한 발생. 구조를 뒤흔들고 구조로부터 빠져나가는 힘이자 구조를 형성하는 힘이기도 한 불연속, 사건, 생성이 언제나 구조와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푸코와 들뢰즈가 도달한 사건의 사유입니다.
불연속을 사유한다는 것은 사건을 사유한다는 것이고 이는 또한 생성을 사유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연속으로부터 역사를 사유한다는 건 뭘까요? 그건 단순히 르네상스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가 다르고 고전주의 시대와 근대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불연속을 사유한다는 것은 ‘일어난 것’을 가지고 과거로 소급하는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기원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재에 이르는 연속적이고 등질적인, 이미 완료된 과정으로 보지 않는 것이죠. 불연속의 역사는 과거로부터 이질적인 힘들의 꿈틀거림을 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대별 지성사의 구조를 기술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건은 불연속을 연속에 대해, 사건을 구조에 대해, 생성을 존재에 대해 선행하는 것으로 사유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불연속의 역사가가 수행하는 작업은 상식과는 다른 계열을 구성함으로써 역사로부터 사건을 솟아오르게 하고, 이질적인 힘들을 풀어헤치는 일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역사가 자신을 포함한 동시대인들의 자명성을 교란시키고, 주체가 진리와 맺는 관계를 변형하는 일이겠죠.
다음 시간은 에세이를 제외한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식의 고고학』 결론을 읽고 과제를 작성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경혜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
추가로 에세이와 관련된 공지입니다. 푸코 세미나 마지막 에세이 과제는 언설, 언표, 고고학 세 가지 개념 중 하나를 택하여 충실히 정리하는 것입니다. 각자 어떤 개념을 정리하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두시고, 미리미리 자료도 모으고 예전에 작성한 과제도 들춰보면서 에세이 준비를 슬슬 시작하시면 되겠습니다.
건화샘의 체운샘 강의에 대한 정리를 읽어 보니, 불연속을 사유한다는 것에 대해 좀 더 선명해지는 듯합니다. 불연속을 사유한다는 것은 사건을, 생성을, 역사를 기원으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인고 등질적인, 이미 완료된 과정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연속의 역사가 수행하는 것은 상식과 다른 계열을 구성함으로써, 주체가 진리와 맺는 관계를 변형하는 일이다....아주 잘 읽었습니다.
건화샘의 체운샘 강의에 대한 정리를 읽어 보니, 불연속을 사유한다는 것에 대해 좀 더 선명해지는 듯합니다. 불연속을 사유한다는 것은 사건을, 생성을, 역사를 기원으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인고 등질적인, 이미 완료된 과정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연속의 역사가 수행하는 것은 상식과 다른 계열을 구성함으로써, 주체가 진리와 맺는 관계를 변형하는 일이다....아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