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사물』을 다 읽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어요. 급조된 에세이라 20주 간의 『말과 사물』 읽기를 정리하기엔 처음부터 좀 무리였죠.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날림으로 넘어간 저는 특히 조금 찝찝하네요(^^;). 제 에세이는 빠른 시일 안에 수정+보완해서 적당한 곳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치만 우리에겐 아직 10주가 남았습니다. 마지막 4학기에는 『지식의 고고학』을 읽고 1년간의 공부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흠, 『말과 사물』을 닫으면서 동시에 『지식의 고고학』을 여는 이야기로 조금이나마 공지 내용을 채워야 할 텐데. 이 공지에서 뭘 말해야 할지 솔직히 좀 고민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지식의 고고학』을 펼쳐들고 읽다보니 아래의 구절들을 만났습니다. 친절하게도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 서문에서 자신의 앞선 작업들(『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의 의미와 『지식의 고고학』을 통해 수행하게 될 새로운 작업의 성격과 목표를 명확히 제시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 있어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이, 매우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 도안을 그린 바 있는 시도가 규정된다. 역사의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작동되는 탈바꿈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시도. 그를 통해 지성사의 고유한 방법, 한계, 테마가 의문에 부쳐지는 시도. 그곳에서 마지막 인간학적 구속들이 해체되는 시도. 그리고 그 대신 어떻게 이 구속들이 형성될 수 있었는가를 드러나게 해주는 시도. 이 과제들은 어떤 무질서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일반적인 분절이 분명하게 정의되지 않은 채 소묘되었다. 이제 이들에 정합성을 부여할 때이다―아니면 적어도 이를 시도할 때이다. 이 시도의 결과, 그것이 여기 이 책이다.”(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37쪽)
지적인 시도, 실천, 실험으로서 『말과 사물』은 무엇이었을까요? 푸코에 따르면 이는 우선 역사에 관한, 그것도 특히 지성사에 관한 책입니다. 에피스테메, 고고학적 공간, 인식가능성의 조건, 기호 체제 같은 개념적 도구들을 통하여 푸코는 우선 지성의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 있어서 급진적인 실험을 감행합니다. 주체를 출발점에 놓지 않는 것입니다. 인식의 역사를 연속성 속에서 파악하도록 하고 이질적 사유들을 동일화시키게끔 하는 인식주체의 지고성. 푸코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고서 특출난 개인들, 대립하는 학파들, 유구한 계보들을 출발점에 놓지 않고, 그들을 그렇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한 담론적 규칙성들,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사유의 공간들, 암묵적 전제들을 파고듭니다.
또 한편 『말과 사물』은 명백히 인간학적 전제들과 싸우는 책입니다. 그런데 싸움의 방식이 아주 독특합니다. 어떠어떠한 인간학적 전제가 잘못되었다거나 그것이 이러저러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이 아닙니다. 푸코는 인간학적 구속들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푸코는 지식의 진보나 사유의 탈신비화(독단론의 잠에서 깨기?)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인간을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식론적 배치의 변화가 인간을 탄생시켰다고 말합니다. 재현하는 능력을 지닌 언어인 담론이 모습을 감춘 자리에서 인간은 인식의 조건이자 지식의 대상으로서 출현합니다. 그리하여 푸코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학적 물음 자체가 공연히 인간의 그림자를 늘리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푸코는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정말로 인간이 존재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죠.
그렇다면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이제부터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요? 정합성을 부여하기. 라고 그는 말합니다. 확실히 『말과 사물』은 아주 정합적이지만 초점이 조금 불명확하긴 합니다. 푸코 자신도 “『말과 사물』에 있어서는, 방법론적 지표설정의 부재가 분석을 문화적 총체성에 의거한 것으로 믿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39쪽)라고 인정합니다. 마치 푸코가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라는 세 시기를 총체적으로 정의하기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을 통해 언표, 담론, 문서고 등의 개념적 도구들을 갈고닦고자 합니다. 새로운 비판과 질문, 실험을 위해 사유의 도구를 연마하는 과정. 아마도 푸코에게 『지식의 고고학』은 이러한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는 푸코와 함께 그의 방법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말과 사물』을,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공부한 푸코의 저작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사람들이 그토록 비분강개하는 것, 그것은 역사의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비밀스러웠던 그러나 결국 주체의 종합적인 활동에 연결되어 있던 역사의 이러한 형태의 소멸인 것이다. 그것은 의식의 절대성에 신화나 친족체계, 언어, 성 또는 욕구보다 더 안전한, 덜 노출되어 있는 피신처를 제공해 줌이 틀림없는 이 생성의 소멸인 것이다.”(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36쪽)
푸코는 『말과 사물』을 통해 무엇과 싸우고자 했던 걸까요? 마지막까지도 저는 이 부분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위의 구절을 읽으며 약간의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푸코는 말합니다. 사람들이 『말과 사물』을 심판하는 근거로 이용했던 ‘역사’란 사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형태의 역사, 의식의 절대성에 피신처를 제공해줄 수 있는 종류의 역사라고요. 푸코는 역사가 이런 것이라면 기꺼이 그것을 제거해버리고 싶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가 『말과 사물』을 통해 맞서 싸운 인간학적 전제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푸코는 근대적 사유가 근거하고 있는 이 토양에서 ‘철학’에 반하는 어떤 것을 감지한 게 아닐까요? 인간의 언어, 노동, 유기체로서의 몸, 경험 등으로부터 실증성을 정초하고자 하는 복잡다단한 지적 노력들. 여기서 ‘인간’은 다양한 형식의 사유들과 이러저러한 가치들이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는 토대의 구실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푸코가 느끼기에 자기 전제를 반복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유하기 위해서, 다르게 생각하고 나아가 다르게 존재하기 위해서 인간학적 구속들에 대한 비판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지식의 고고학』을 읽으면서 푸코의 문제의식에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드디어 개강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지식의 고고학』 서론을 읽고 푸코가 비판하고자 하는 역사와 푸코가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역사란 각각 무엇인지를 간략히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과제는 사람 숫자만큼 프린트 해주시고요(카톡방에 따로 공지하겠습니다). 간식은 제가 준비할게요!
미진한 마무리를 종합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공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정체성을 담보하는 역사를 매번 허물고 ㅡ그러기가 두렵겠지만ㅡ다시 쓰기를 반복한다는 것, 그럴 수 있는 조건은 어떻게 마련되는 걸까..이 글을 읽으면서 드는 의문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정리해 오고 프린트를 해오는 것이었군요...
에세이를 다시 쓰겠다는 건화샘의 각오가 비장하게 느껴지는데... 따라하기는 버겁고...생각이 많아지네요...에세이 기대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