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지식의 고고학』 서문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저는 시간도 좀 있고 해서 역자 서문을 꼼꼼히 읽어보았는데요. 생각보다 유익했습니다. 역자인 이정우님이 프랑스 철학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를 제시해주셨기 때문이에요. 프랑스 현대철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학’과 조금 궤를 달리 한다고 합니다. 순수사변의 영역에 머물기보다는 실증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형이상학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라는 점에서. 그래서 한 마디로 프랑스 철학은 ‘구체적’이라는 겁니다.
뭔가 좀 건드려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랄까 ‘현실적’이 되고자, 관념에 머물지 않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철학의 전통 안에 머물러 있으면 안전할 텐데, 머리 아프게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 실증성에 바탕을 두거나 그러한 실증적 학문들을 적극적으로 자기화하고자 했다는 게 대단해보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사회 전체와 문화 전체의 장 속에 위치시키고자 애썼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실증적 학문과 정치적 실천의 양극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었던 것이 프랑스 철학이었구나 싶고요. 푸코가 ‘지식-권력 복합체’를 다루려 했던 것도 이런 조건이나 분위기 속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좀 뒷북인 감이 있지만 푸코를 중심으로 20세기 프랑스 철학 전반을 좀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어도 좀 공부하면서 차근차근 좀 파보면 어떨까... 일단 상상만 해봅니다.
푸코는 역사학에서의 두 가지 새로운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론을 시작합니다. 장기적 기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아날 학파 및 신진 역사가들. 그리고 바슐라르, 캉길렘, 알튀세르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사의 방법론을 쇄신한 철학자들. 이들은 공통적으로 역사에서 ‘연속성’을 의심합니다. 연속성을 의심한다는 건 뭘까요? 궁극적으로 그것은 과거를 바라보는 주체의 자리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요? 가령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알고 있을까요? 분명 우리는 어떤 순간들, 느낌들, 내러티브들을 선별하고 특권화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편집해서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무엇을 겪고 있느냐에 따라서 이 기억은 얼마든지 재편집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내게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는 이유로 과거에 했던 고생을 보람찬 것으로 기억한다거나, 지금 나의 가치관을 과거의 내 행동을 판단하는 준거로 삼는다거나. 이렇게 본다면 정말로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와 더불어 운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을 규정하고, 또 현재적 사건은 과거를 새롭게 불러들이고.
그런데 역사에서 연속성을 상정한다는 것은 인식하는 자로서 ‘나’의 자리가 이처럼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내가 조금 헷갈릴 수는 있지만 ‘나의 과거’라는 것이 완벽하게 복원 가능한 방식으로, 명확한 중심 뼈대와 고정된 인과를 지닌 채로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성적으로’ 잘 조사하기만 하면 과거는 어쨌든 그 진면목을 드러낼 것이라고요.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태도는 인식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 또한 역사 속에서 구성되는 중에 있다는 것, 자신의 상식과 이성과 범주 또한 역사의 운동에 휩쓸려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주체의 자리는 정말 자명한가? 이런 의문이 남는 것입니다.
아마도 푸코와 그의 선배 및 스승들은 이러한 관점 속에서 연속이 아니라 불연속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상식, 자명성, 우리가 설정한 인과가 풀어지는 한계 지점은 어디일까? 어떻게 하나의 중심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수적 층들과 범주들을 사유할 수 있을까? ‘총체성’을 조망하는 자리에 자기 자신을 위치시키려는 야망을 포기한 대신에 이들은 자기 자신의 관점을 변환하고 복수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아직 정리가 잘 되지는 않지만 불연속을 사유한다는 게 무엇인지, 계속 읽어나가며 고민해보도록 합시다!
다음 시간에는 2장 '담론적 규칙성' 1~3번을 읽고 과제를 작성해옵니다. 무작정 푸코의 말을 옮겨적는 것 말고, 1페이지 내외로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각자 자신의 언어로 정리해옵니다. 그러니까 2장의 1번 '언설의 단위들, 2번 '언설적 형성', 3번 '대상의 형성' 각각에서 푸코가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한 두 문단 정도로 정리하는 게 좋겠죠? 그리고 다음주에는 『지식의 고고학』의 개념들에 관하여 채운샘의 특강이 있을 예정입니다. (당연한 거지만) 필참해주시고요. 간식은 성희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