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의 분석 2. 화폐와 물가 3. 중상주의 4. 담보와 가격
이번 주 토론에서 건화 샘이 우리에게 주요 논점으로 토론할 것을 요청한 건 이 세 가지이다.
-‘부’란 무엇인가.
- 화폐란 무엇인가
-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와 어떻게 다른가
6장에서는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시대에 ‘부’와 ‘화폐’에 관련하여 어떤 지식에 의해 구성되는가. 그리고 그 지식이 부와 화폐에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살펴보는 장인 것 같다. 우선 ‘부’에 대해서. ‘부’는 재화로 교환할 수 있는 것. 즉 화폐나 토지 등을 말하는데 르네상스 시대, ‘부’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 관념과는 지극히 다르다. 우리 시대의 ‘부’가 소유와 축적을 의미하는 거라면 르네상스의 富라고 하는 것은 잉여로 남는 것만 ‘부’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이 고전주의 시대에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푸코가 말하는 역사의 불연속성 (부와 화폐에 대한) 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화폐는 재현의 기호로서 실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즉 16세기 경제 사상은 “금속은 자체가 富임에 따라서만 기호로서, 그리고 부를 측정하고 기호로서 나타나므로 이 두 가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금속이 기호일 수 있었던 것은 금속이 실질적 표지”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에 부의 영역에서 르네상스와는 다른 중요한 구별들이 이루어진다. 화폐가 협약의 성격을 갖게 되고, 교환 가격의 이론과 고유가치의 이론을 구별하는 작업이 시작되며, ‘가치의 역설’이 간파된다. 효용이론에 가치가 결부되기 시작하고, 상업의 발전에 따른 가격의 중요성이 이해되고, 생산의 메커니즘이 분석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부’가 화폐에 달려있고 ‘부’를 나타내는 척도가 화폐인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생명, 생명과학도, 문헌학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경제학도 없었다.” 문제는 가치, 가격, 무역, 유통, 금리, 이자의 관념들로서, 이것이 “고전주의 시대에 ‘경제학’의 토대이자 대상인 부의 영역”(243) 이었다. 17~18세기, 화폐, 가격, 가치, 시장의 개념은 인식론적 배치의 일부분으로서 사유되었던 바, ‘부의 분석’을 밑받침하는 것은 ‘배치’이다. 이때 부의 분석은 일반문법이나 자연사와 같은 굴곡이나 리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폐, 상업, 교환에 관한 성찰이 실천과 제도에 연결되었다. 실천과 사변, 이것들의 토대는 언제나 어떤 지식, 즉 담론을 통해 저절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모호한 지식으로 이론으로 나타나는 지식이건 조용히 실천에 스며들어 있는 지식이건 이것이 지식의 가능 조건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논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실천과 사변, 모두에서 동일한 기반을 갖는 “지식의 이 근본적인 불가피성” 이라는 것.
그렇다면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시대에 지식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16세기의 지식은 신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발견해내는 것이었다면, 고전주의 시대에는 신이 만들어 놓은 뭔가에서 발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분류해 놓은 틀 속에 뭔가 집어넣는 게 ‘지식’”(채운 샘)이다. 이것은 고전주의 시대의 분류학으로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분류표 안에 지식을 위치시키느냐, 아니냐가 중요했다는 것. 즉 고전주의의 에피스테메는 일반적인 질서이다. 이런 식으로 구성된 지식은 부와 화폐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기호들이 닮음에 의해 확립되고, 닮음이 식별되기 위해 기호가 필요했던 르네상스에서 “경이롭고 철저한 계산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경제’라는 관념이 없었던 만큼 경제의 고유한 법칙도 없었던 시대, 디비나시오(점술, 예언)의 미묘한 섬광 속에서 지식이 단편적으로 주어지던 것처럼, 물건과 금속, 욕망과 가격의 관계에 대해서 인간에게 인식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경제 관념이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따라서 “고전주의 사유에서 부의 영역이 성찰의 대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16세기에 확립된 지형이 바뀌어야” (254) 할 필요가 있었다. 17세기에도 16세기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금속은 그 자체로 부의 표지였고, 귀금속이 모든 부의 감춰진 현존이자 가시적인 보증이라는 것 때문에 값이 나갔고, 모든 가격의 척도였으며, 값이 나가는 모든 것과 교환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화폐로 주조된 금속이 고유한 특징(귀중하다는 사실)의 이중화로 인해 두 가지 기능 (척도와 대체물)의 근거가 된 반면 17세기에는 이 상이한 특성이 교환의 기능이 된다. 즉 표상으로서의 기능에 한정되었던 화폐가 등가물로서의 교환기능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 시기에 “화폐를 부의 재현 및 분석의 수단이 되게 하고 부를 화폐가 표시하는 내용으로 만드는 의도적인 연관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상주의이다. 중상주의 시대는 “‘귀금속’의 고리가 해체되고 부가 필요와 욕망의 대상으로 전개되며, 화폐와 부의 상호 관계가 유통과 교환의 형식으로 확립된다. 즉 ”중상주의가 ‘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재현할 수 있으므로 욕망의 대상이기도 한 모든 물건, 필요성이나 유용성 또는 쾌락이나 희소성이 두드러진 물건”(256)이다. 말하자면 물물교환하던 물건들에 ‘가치’가 산정되고 화폐가 수량화된 ‘가치’의 매개 역할로 등장한 것이다.
모든 화폐의 참되고 본질적인 타당성은 유통 및 가치에서 비롯되는데 화폐는 그 자체로 부이지 않고서는 부를 표시할 수 없다. 그러나 재현은 표시되어야 기호가 되는데 화폐는 기호이기 때문에 부가 된다. 다시 말해 금속 화폐는 재현의 기능을 실현할 때라야, 상품을 대신하고 원료가 소비될 기회를 제공할 때, 노동에 대한 보수로 쓰일 때에만 실질적인 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와 금속 화폐의 관계는 금속의 귀중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제 유통과 교환 속에서 확립된다. (261) 이렇듯 중상주의 경험을 통해 부의 영역은 재현의 영역과 동일한 방식으로 성립한다. 중상주의는 재현의 분석이라는 방침에 맞추어 물가와 화폐에 관해 성찰하기 위해 오랜 노력을 하면서 ‘부’의 영역을 솟아오르게 했다.
이 시대 화폐가 담보로 규정되는 건 무엇 때문인가. 17세기 말, 화폐로 주조된 금속이 희귀해지면서 상업의 퇴보, 물가의 하락, 채무와 지대, 세금을 내기 어려운 상황, 그리고 토지의 하락이 초래되면서였다. 그 결과 1726년 안정적으로 통용될 금속 화폐가 칙령에 의해 새로 만들어지고 18세기에 처음 프랑스에서 통화량의 증가를 위한 평가절하, 재평가, 이자율을 낮추고 명목자본을 줄이는 일련의 조치들, 국채로 대체된 지폐의 출현이 나타난다. 이러한 독특한 배치에 의해 화폐가 담보로 규정된다. 화폐가 담보라고 말하는 것은 화폐가 공동의 동의를 나타내는 공인된 증표, 즉 순수한 허구이지만 화폐에 동일한 양의 상품이나 등가물로 교환될 수 있는 동일한 가치가 있다는 전제하에 화폐가 담보로서 규정된다.
따라서 화폐는 담보로서 어떤 부를 가르키고 부의 가치를 확정하는 것이다. 화폐와 상품과의 관계, 즉 가격체계는 화폐의 양이나 상품의 양이 변하자마자 함께 변한다는 것. 화폐가 갖는 재현 및 분석의 힘은 통화량에 따라 부의 양에 따라 변한다는 것. 그러므로 가치를 재현하는 교환의 영역에서 공정가격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상품도 대가로 지불해야 할 화폐의 양을 가리키는 어떤 본질적인 특징이 없다.
*** 후기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건화샘은 책을 그대로 베끼는 식의 발제를 지양하라고 했는데 전 후기마저도 책을 그대로 베끼는 식이 되어버렸네요. 어떻게 조금이라도 제가 소화한 대로 써보려고 했지만 지금의 제 역량으로선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도 어렵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