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방학이 다 흘러갔네요!
이제 우리는 『말과 사물』 2부에 돌입합니다~ 『말과 사물』 1부를 읽으며 ‘푸코 읽기의 어려움’을 제대로 느낀 것 같습니다. 쓴맛을 봤다고 해야 할까요. 르네상스, 고전주의 시대의 ‘인식 가능성의 조건’을 탐색하는 푸코의 고고학적 분석을 따라갔는데요. 푸코의 고고학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우리에게 서양 지성사에 대한 상식이 없어 푸코의 글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요. 또 새삼스레 푸코의 문체 자체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극히 실증적인 서술을 하다가도 갑자기 보르헤스, 벨라스케스, 돈키호테, 사드 같은 이들이 등장할 때면 『말과 사물』이 다루고 있는 것이 단순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서술하는 책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역사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문학적이고, 철학책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시공간의 좌표가 뚜렷한... 그런 책이네요.
『비판이란 무엇인가』라는 책(푸코가 1978년에 프랑스 철학회에서 행한 강연을 풀어낸 것입니다)에서 푸코는 자신이 철학자가 아니라 비판자라고 말했습니다.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참조하면서 푸코는, “비판이란 진실에 대해서는 그 진실이 유발하는 권력 효과를, 권력에 대해서는 그 권력이 생산하는 진실 담론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권리를 주체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과 관련된 활동”(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 동녘, 48쪽)이라고 말합니다. 푸코가 이때 말하는 비판이란 단순히 불의에 저항하거나 거짓을 폭로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리’, ‘과학’, ‘자명성’, ‘상식’이라고 불리는 것들과의 싸움을 함축합니다. 푸코는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는 일과 주체가 진실과 맺는 관계를 변형하는 일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삶을 살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한다고 한들, 우리의 사고를 출발점에서부터 제약하고 조건짓는 인식의 전제, 합리성, 자명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예속과 파괴와 착취와 무지를 재생산하게 될 테니까요. 푸코가 자신을 비판자라고 규정한 것은, 그가 어떤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변형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독특한 푸코적 의미의 ‘비판’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 걸까요? 그 구체적 방편은 무엇일까요? 푸코는 (역사철학이나 철학사와는 무관한) ‘역사-철학적 실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푸코는 또 한 번 아주 어려운 말을 하는데요. “이 역사-철학적 실천에서의 쟁점은 그것의 고유한 역사를 쓰는 일, 즉 진실한 담론을 조직하는 합리성 구조와 그것과 결부된 예속화 기제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의해 관통되는 역사를, 마치 허구를 통해 만들어내는 일”(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 동녘, 59쪽)이라고요. 물론 푸코는 이러한 역사-철학적 실천만이 비판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독특한 비판의 방법이라고 하죠.
이 방법은 한편으로 역사적 내용들에 입각하여 철학적 질문들을 탈주체화해줍니다. 자명한 주체의 자리에서 ‘나는 누구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좌표를 갖는 역사적 내용들에 준거하여 철학적 사유에 구체성과 역사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를 진실로 간주되는 것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역사적 내용들은 언제나 특정한 진실과의 관계 속에서 계열화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특정한 권력효과를 유발합니다. 가령 우리가 배우는 상식적인 역사는 ‘진보’의 관념을 전제하고 인류의 역사를 기술이나 정치제도의 발전사로 바라보도록 하죠. 아무튼 ‘역사’와 ‘철학’ 양쪽 모두에게서 토대나 뿌리 같은 것을 박탈하는 이러한 역사-철학적 실천이 바로 비판자로서 푸코의 방법론입니다.
『말과 사물』이 아닌 다른 책에 대한 얘기를 너무 길게 했네요. 어쨌든 제가 하고팠던 말은, 우리가 역사가 푸코나 철학자 푸코가 아니라 비판자 푸코의 작업에 더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는 거였습니다. 역사책도 아니고 철학책도 아닌 『말과 사물』 뒤에는 비판의 기획이 있었다는 거! 끝까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자신의 역사-철학적 방법을 좀더 광범위한 지성사 전반에 적용해보는 실험 혹은 연습을 수행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며 푸코적 비판이란 무엇인지, 진실에 대한 푸코 고유의 태도는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에는 7장 "재현의 한계" 1~3번을 읽고 과제를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간식은 청샘께 부탁드리고 과제출력은 난희샘과 소현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3학기에는 세미나 때마다 각자 질문을 3개씩 만들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 주에 읽은 텍스트를 관통하는 질문이면 좋겠지만, 어떤 부분이 어떤 지점에서 이해가 안 되더라 하는 식의 질문도 괜찮습니다. 그럼 남은 방학 잘 보내시고 다음주 월요일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