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근대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역사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전주의 시대 에피스테메가 ‘질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면 근대의 에피스테메는 ‘역사’입니다. 고전주의적 인식은 사물들을 분리하고 통합하는 동일성과 차이를 영속적인 공간에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19세기가 되면 인식은 상이한 유기적 구조들을 서로 연결하는 유비를 시간적 배열에 따라 늘어놓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생물학에서나 경제학에서나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나름의 내적인 질서를 지닌 유기적 구조입니다. 푸코는 이번에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서 드러난 불연속의 징후에 대해 이야기했죠. 스미스는 교환가치를 분석하는 척도로 ‘노동’, 즉 인간의 시간과 노고를 제시했습니다. 이 자체가 특별하거나 새로운 일은 아니었죠. 중요한 것은 스미스가 노동이라는 절대적 단위를 삽입함으로써 “고유한 필연성에 따라 성장하고 그 자체의 내적 법칙에 따라 발전하는 유기적 구조의 내적 시간, 자본과 생산의 시간”을 열어젖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필요, 심리, 욕망과 무관하게 물건들 사이의 등가관계를 확립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제 빵이나 옥수수, 다이아몬드처럼 사람들의 실질적 필요에 응답하는 고유한 사용가치를 지닌 대상들이 아니라, 일정한 양의 노동단위들이 유통되고 교환됩니다.
생물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라마르크 같은 학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특징’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자연사에서는 자연물들의 가시적 구조를 통해 그것들을 분류하고, 도표 위에 위치시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각 개체나 종의 내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개체들 사이의 인접관계를 확립하는 것, 영속적인 도표의 공간을 구축하는 것, 질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죠. 그런데 이제 특징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구조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의 유기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해집니다. 그러니까 이제 특징은 동일성과 차이의 비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지표가 아니라, 생물들의 내적 구조를 파악하게 해주는 지표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죠.
이제 인식의 주안점이 동일성과 차이, 순서에 따른 일관된 도표를 그리는 것에서 생산과 자본, 생물의 내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으로 옮겨왔습니다. 이제 지식의 공간에는 분류표 상의 표본들이 아니라 유기체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공간적 질서 속에 나란히 놓여 있던 사물들이 이제 불연속적인 유기적 구조를 지닌 채 나타납니다. 이 유기적 구조들은 동일성의 평면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위에 배열됩니다. 인식은 이제 질서의 완전한 재현, 완벽하고 투명한 분절과 지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기원, 진화 최초의 출발점, 망각과 회귀 사이에 놓이게 됩니다. 아마도 이제 어떤 대상을 ‘인식’ 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보편적 질서 안에 위치시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것을 시간적 흐름 속에서, 그것을 존재하게 한 원인 속에서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초장부터 푸코는 우리의 혼을 쏙 빼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만큼 재밌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드디어 이 책의 핵심 부분까지 온 것 같습니다. 애덤 스미스 이래로 “인간 자신에게 생소해진 인간을 다루는 인간학, 그리고 인간의 의식과 무관한 메커니즘을 다루는 경제학”(318쪽)이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물의 유기적 구조에 대한 인식이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 사이의 근본적인 분할을 초래한다”(326쪽)는 건 또 무슨 말인지, 계속 곱씹어보게 됩니다.
다음주에는 『말과 사물』 7장을 끝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이번 부분은 더 어렵더라고요. 시간을 내서 미리미리 여러 번 읽어보시고 과제도 반.드.시. 작성해주십시오. 다음 주 과제 출력은 설샘과 후남샘이십니다. 간식은 은주샘께서 맡아주셨고요. 지난시간과 마찬가지로 각자 (성의 있는) 질문을 3개씩 준비해오셔야 합니다. 그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