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말과 사물』 1부 2장 <세계의 산문>으로 세미나를 했습니다. 굉장히 열심히 읽어 오시고 또 그에 못지 않게 열심히 세미나를 함께 했는데, 정리를 하기가 어려워서 후기를 쓰는 게 몹시 조심스럽습니다. 이번 주 세미나 분위기는 마치 스터디 클럽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해도 될까나 ^^)고, 푸코가 연구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장별로 세세한 질문들을 주고 받으며 모르는 것들과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건화샘이 푸코의 연구 방법과 비교할 수 있는 보조자료도 만들어 와서 나중에 같이 읽었답니다.
우리가 아는 보통의 철학사, 지성사, 사상사와 푸코의 연구 방법은 어떤 점에서 다를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보았습니다. 앎이 형성되는 방식에 집중하는 연구라는 생각과 인식의 주체와 인식 대상이 되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 연구와 서술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는 의견들을 나누었고 책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르네상스 에피스테메가 닮음을 지식으로 구성했다고 했을 때, 지금의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그 시대의 지식은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구성되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그래 그땐 그랬었구나' 하고 단순하게 인정하는 차원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샘들의 의지가 발현되어서 그랬을까요? 질문들이 더 다양해 지는 듯 싶었습니다.
먼저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에 대해 묻고 답하기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전체 5장 가운데 앞 부분 1,2,3장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말이 '기호'와 '표징'이었습니다. "닮음은 표징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표징이 해독될 수 있도록 표시되지 않는다면, 어떤 닮음도 관찰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61쪽) 르네상스의 지식은 기호로 뒤덮힌 세계에서 표징을 발견하고 그 기호들을 해석하고 닮음의 관계에 따른 규칙을 찾아 내는 것. 푸코가 개괄한 닮음의 4가지 법칙(부합, 경합, 유비, 감응)에 따르면 르네상스의 지식 체계는 결국 하나를 설명하는데 온 세계를 필요로 하고, 그로 인해 르네상스의 지식은 "과다하고 동시에 절대적으로 궁핍"하며 "무한하므로 과다"(63쪽)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알겠는데 모르는 것 같고, 모르지만 알 것도 같은 힘듦 속에서 그래도 함께 계속 레고~~
"닮음은 세계의 깊은 곳으로부터 사물을 가시화하는 것의 비가시적 형태였다. 그러나 이 비가시적 형태를 밝히기 위해서는 그것을 깊은 비가시성에서 끌어낼 가시적인 형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계의 모습은 문장(紋章), 특징, 지표, 모호한 말, 이를테면 터너가 말한 "상형 문자"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직접적 닮음의 공간은 방대한 책이 펼쳐진 것과 같아지는데, 그 책은 표기 기호로 온통 덮여 있고, 매 쪽마다 기이한 형상들과 교차하고 때로는 되풀이된다. 그것들을 해독하기만 하면 된다." (59쪽)
지금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는 지식의 분류 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그런 의미에서 단절된 에피스테메가 있었음을 알아가는 구불구불한 과정들. 16세기 에피스테메에 대해 열심히 알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어렵게 이야기를 나눈 지점이었던 소우주와 우주가 지식의 범주를 한계 짓는 역할을 했으며 점술과 박학이 대단히 실제적인 해석을 제공하는 지식이었다는 에 대해 토의를 이어갔습니다. 마치 타로 카드의 상징을 해석하는 것이 지금과는 다르게 생활에 밀접한 지식으로 작용했었을 것이며, 기호로 가득 찬 세계,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고 읽어내고 해석하는 것이 16세기 에피스테메였기에 기호학과 해석학은 겹쳐져 있었다는 것에 대해 활발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으로는 4장과 5장, 문자와 언어에 대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자를 인식하는 16세기 지식 체계에 대한 것과 '언어는 무엇인가요'? 라는 물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16세기의 문법 연구는 자연과학이나 비전(秘塼) 분야와 동일한 인식론적 배치에 기초를 두고 있다."(71쪽) 16세기 에피스테메에서 문자는 어떤 것을 반영하거나 묘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문자 자체가 사물과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지점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부분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자체에 물질성을 가진 언어는 무엇을 지시하고 반영하는 것과는 달랐다는 점. 지금 우리에게 '사자' 라는 글자(혹은 말)은 사자라는 개념, 그러니까 이미 약속된 관념을 의미하지만, 16세기에 사자라고 말하면(혹은 쓰면) 그것은 곧 사자 그 자체였다는, 이미 계시된 사물과 같다는 것. (이렇게 쓰지만 진짜로 이해하고 있느냐고 물으시면......'글쎄요' 라서 죄송합니다 ㅜ.ㅜ) 저는 세계에 새겨진 기호들과 그것들을 해석하는 지식 , 사물이자 계시된 문자를 해석하는 권위있는 텍스트들과 그 텍스트에 대한 끝나지 않는 주석 작업이 16세기 지식을 구성하는 방법이었음을 아는 선에서 4,5장을 정리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발전이 덜 되어서, 우리보다 진보하지 않은 미개한 상태라서 16세기에는 지식을 그렇게 구성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어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의 인식 체계가 학습을 받으면서 사회화되는 모습과 16세기 지식을 비교해 보아도 괜찮을까? 라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어도 너무 낯선 16세기 에피스테메이기에 말입니다. 그러한 생각과 질문에 대해 말과 사물 서문에 있는 문장이 답이 될 것 같아 이를 옮기며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고고학의 차원에서는 누구나 알다시피 실증성들의 체계가 18세기와 19세기의 전환기에 대대적으로 변했다. 이는 이성이 진보를 거듭했지 때문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 양태와 사물을 분류하고 지식의 대상으로 정립하는 질서의 존재 양태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19쪽)
책 내용과 토론 내용이 잘 버무려진 후기네요! 르네상스 에피스테메에 대한 푸코의 연구는 우리로선 낯선 사유의 방식을 더듬더듬 만지고 느껴보도록 해준 것 같습니다.
세계의 산문..우리에게 너무나도 낯선 16세기 사유를 어떤 식으로 토론을 하셨는지 분위기가 결석을 한 저에게도 잘 전달됩니다. 구불구불, 더듬더듬, 좌충우돌? 열띤 논의를 하시는 모습이 선하네요~ "언어는 무엇인가?"는 계속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경혜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