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는 사유를 재현한다.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 언어의 가장 큰 특징은 ‘사유’를 ‘재현’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럼 16세기의 언어는 어땠는가? 16세기의 언어는 사물과 ‘유사’했고 그랬기 때문에 확실하고 투명한 사물의 ‘기호’였다.(71) 언어는 본디 문자, 사물 위의 자국, 세계에 퍼져 있고 세계의 가장 지우기 힘든 형상들 중의 하나인 표지의 단순한 물질적 형태로 존재했다.(80) 언어는 사물 자체였고, ‘닮음’의 형상으로 다른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였다. 그래서 그 기호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말하면, 즉 ‘해석’하면 그것이 ‘지식’을 형성한다. 자연 사물 자체가 ‘해독’해야 할 기호로 가득 찬 것처럼, 문자로 기록된 텍스트 또한 그 기호의 비밀을 발견하는 ‘주석’ 작업을 요구한다.
고전주의 시대 언어는 더 이상 사물과 유사하지 않다. 언어는 사물과 닮음으로써 그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이길 멈추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호’이다. 이 기호는 무언가를 ‘재현’한다. 재현할 수 있는 힘으로 다른 것을 재현하는 기호, 이것이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의 지고성은 무엇보다 그것이 ‘사유’를 재현한다는 데에 있다. 이 말은 언어가 어떤 사유의 ‘내용’을 그저 ‘표현’하고 있다는 것인가?(이때 언어와 사유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푸코는 “사유가 스스로를 재현하듯이”(129) 언어는 사유를 재현한다고 말한다. 언어는 무언가를 나타내는 ‘의미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자체에 있는 ‘재현가능성’으로 다른 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사유를 다시 불러오고 가리키는 것이 말이지만, 말은 우선 내부 쪽에서, 다른 재현들을 나타내는 그 모든 재현 사이에서 사유를 다시 불러오고 가리킨다.
고전주의 시대의 언어는 자신이 나타내야 할 사유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접해 있어서, 사유와 평행하기에 그치지 않고, 사유의 망에 사로잡혀,
사유의 전개 자체와 일체를 이룬다. 고전주의 시대에 언어는 사유의 외부적 결과가 아니라 사유 자체이다.(130) 언어가 동시성을 연속성으로 나타내는 기호라면, 사유 역시 인식이 연속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의미일까? 사유가 스스로를 재현하듯이 언어는 사유를 재현한다. 언어의 전개 자체가 사유다.
2.비평이 주석을 대체한다.
16세기의 언어는 이차 언어에 의해 해석되어야 했다.(주석) 고전주의 시대는 16세기 언어의 그 실제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아니, 사라졌다.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기호여서 그 기호를 해석해야 하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언어는 언어의 ‘재현하는 역할’로만 남는다. 재현만 남는데, 재현은 재현을 드러내는 언어 기호에 따라 전개되고 이런 식으로 ‘담론’이 된다. 재현의 본질적인 담론성, 이제 이 담론성에 질문을 해야 한다. 담론에 의해 실현되고 결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담론에 대해 제기되는 물음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즉 그것이 어떤 재현을 가리키는가, 어떤 요소를 마름질하고 선취하는가, 어떻게 분해하고 합성하는가, 어떤 대체 작용에 의해 재현으로서의 역할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가이다. ‘비평’의 시대가 열렸다.
무척 헤매었던 토론이었는데 무척 간명하게 정리해주셨네요. 고전주의시대 언어가 '재현할 수 있는 힘으로 다른 것을 재현하는 기호'이고 , '자신이 나타내야 할 사유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접해 있어서, 사유와 평행하기에 그치지 않고, 사유의 망에 사로잡혀, 사유의 전개 자체와 일체'를 이룬다는 부분이 확 와닿습니다. 고전주의 시대 재현이 순수재현이라는 말과도 맥이 닿겠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든든한 새벽샘! 지난 시간에 읽은 부분의 핵심을 후기에 정리해주셨군요. "언어의 전개 자체가 사유"라는 것, 말은 이해를 한 것 같은데 여전히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네요 ㅎㅎ 언어가 담론이며 재현이 본질적으로 담론성을 지닌다는 말이 헷갈렸는데, 샘이 정리해주신 것처럼 고전주의 시대에는 재현과 언어 양쪽 모두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즉 그것이 어떤 재현을 가리키는가, 어떤 요소를 마름질하고 선취하는가, 어떻게 분해하고 합성하는가, 어떤 대체 작용에 의해 재현으로서의 역할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가" 같은 질문들이 제기되었다는 뜻인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