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말과 사물』 4장 ‘말하기’를 절반 정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는 중인데요. 이제 입이 아플 지경이지만, 너무 어렵습니다. 일단 여전히 ‘재현’이니, ‘기호’니, ‘담론’이니 하는 용어들이 뻑뻑하게 느껴지고요. 그런 어려움 때문에 한 문장 한 문장 푸코의 말들을 해독하듯 읽다보면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찜찜함이 듭니다. 어쨌든, 어려운 와중이지만 세미나는 도움이 됩니다. 이해됐다고 생각한 것을 설명하려다보니 석연치 않은 부분이 드러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떻게든 파편적인 이해를 부여잡고 설명을 이어가다보면 푸코의 사유가 조금 더 스며드는 기분도 듭니다. 각자가 이해한 방식과 이해한 부분이 달라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이해한 것들이 조금 확장되는 듯도 하고요. 그만큼 세미나에 빠지지 않고 참여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장은 언어를 다루고 있습니다. 푸코에 따르면 고전주의 시대에 언어는 투명하고 비가시적인 것이 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와 비교해보면 분명해집니다. 가문의 문장(紋章), 신의 계시, 뱀을 쫓아버리는 문자의 신비한 힘. 르네상스 시대에는 언어(문자) 자체가 물질성을 지니고 있었지요. 언어는 단순히 지시하고 재현할 뿐만 아니라 그 나름의 힘을 가지고서 사물들의 세계에 개입합니다. (순전히 제 상상이지만) 맹세의 말 같은 걸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맹세나 서약의 의례에서 ‘말’은 발화 주체의 생각이나 의도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구속력을 갖지 않습니까? 자, 이에 비추어 고전주의 시대에 언어가 투명해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해볼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언어는 사유를 담는 ‘그릇’ 같은 것이 됩니다. 푸코는 이와 더불어 언어가 그 자신에 대해 맺는 관계가 ‘주석’에서 ‘비평’으로 넘어왔다고 말합니다. 즉 이제 그 자체로 효력을 지니는 텍스트들, 성경의 구절이나 고대의 텍스트들을 수집하고 재가동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재현의 도구인 언어를 다듬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언어의 물질성이 아니라 언어의 재현가치가 문제가 됩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언어는 자신이 나타내야 할 사유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접해 있어서, 사유와 평행하기에 그치지 않고, 사유의 망에 사로잡혀, 사유의 전개 자체와 일체를 이룬다. 고전주의 시대에 언어는 사유의 외부적 결과가 아니라 사유 자체이다.”(미셸 푸코, 『말과 사물』, 130쪽)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고전주의 시대의 언어는 르네상스 시대의 언어와 단절합니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의 언어, 우리 시대의 언어와 고전주의 시대의 언어는 또 어떻게 다를까요? 인용한 구절이 그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3장을 다시 떠올려보면, 거기서 푸코는 포르 루아얄에서 기호의 기본적 이미지가 그림이나 지도와 같은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지도는 그것이 재현하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와 가치를 지닙니다. 지도가 그 자체의 질서와 규칙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도 자체가 재현하는 대상과의 관계로부터 기인합니다. 다음으로 지도는 그 자체로 재현하는 힘을 지닙니다. 가령 길을 묻는 사람에게 지도를 그려서 알려주는 이유는, 지도 그 자체가 찾아가야 할 길을 담아내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자 이제 언어가 사유의 지도라고 생각해봅시다. 모르겠다고요? 네, 저도 여전히 어렵네요.
우리 시대에 기표와 기의,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은 끊임없이 어긋난다고 여겨집니다. 문법에 따라서 정확한 문장을 구성한다고 해서 그 문장의 의미가 명백해지는 것은 아니죠. 책에 적혀 있는 문장들을 모조리 읽어낸다고 해서 거기에 담겨 있는 저자의 의도가 파악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에는 달랐습니다. 푸코에 따르면 고전주의 시대의 언어는 연속적인 순서에 따라 재현을 분석합니다. 그러니까 언어란 동시적으로 부과된 인상이나 경험 같은 것들을 부분적이고도 연속적인 방식으로 질서화하는 재현의 도구입니다. 언어는 사유의 분석이며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활동입니다(136쪽). 그러니까 말과 글에서 중요한 것은 발화 주체나 저자의 의미작용이 아니라 이 질서화의 작업입니다. 언어란 사유나 감정, 의도 같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한 매체라기보다는 그 자체 사유의 외화인 것이죠.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고유한 영역, ‘순수하게 문법적인 차원’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언어는 황무지 상태의 과학이고, 과학은 잘 만들어진 언어라는 말을 곱씹어봐야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말과 사물』 4장을 끝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 채운샘 특강이 있으니 필참 바라고요. 간식은 새벽샘, 과제 출력은 성연샘과 청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