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역량이 곧 삶의 역량이고 자유의 관건이다"는 푸코세미나의 미다시 글을 보고 앞 뒤 볼것 없이 신청하고 달려온 세미나 첫날을 지나고 ~ 그렇게 '모르겠다. 모르겠다'를 반복하는 사이에 디디에 에리봉의 평전 '미셸푸코 1926~1984'도 어느새 다 읽었고, 9주차가 된 오늘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이번에는 칸트다. 역시나 쉽지 않음을 예감하며 지난주에 이어 오늘은 3강 판단력비판을 읽었다. 대박 이해 안가는 중에도 마음에 드는 몇군데를 억지로 찾아내서 후기로 대신하고자 함에, 먼저 여러쌤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2학기때는 부지런히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판단력이 선험적 원리를 갖는가>
칸트는 반성적 판단력의 선험적 원리를 합목적성이라고 했다. "한 사물이 오로지 목적들에 따라서만 가능한 사물들의 그런 성질과 합치함"을 합목적성으로 정의하며 이런 의미의 합목적성을 반성적 판단력의 선험적 원리라고 한다.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합목적성 원리에 따른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에 의해서 얻어진 명제이고,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은 지성의 범주나 이상의 자유처럼 객관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판정하는 주관 자신을 규제하는 원리이므로, 이를 칸트는 판단력의 "자기자율 "이라고 일컫는다.
"자연의 산물들에 있어서의 자연의 합목적성 개념은 자연에 관한 인간의 판단력에 대해서는 필연적인,그러나 객관들 자체의 규정에는 관계하지 않는 개념일 것이고, 그러므로 판단력을 위한 이성의 주관적 원리일 것이다. (구성적인 것이 아니라)규제적인 것으로서 이 원리는 우리 인간의 판단력에 대해서는 마치 그것이 객관적 원리인 것처럼 필연적으로 타당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아카넷. p231)
<인간은 무엇인가>칸트는 이성 비판을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인간은 세계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관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로써 우리가 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것은 인식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뿐이지만, 인간에게 가치 있는 일은 논리적 사고 활동뿐만 아니라,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도덕적 완전성, 그리고 인간의 이상이 마침내 실현된다는 희망 내지 확신을 가지고 역행하는 일임을 일깨워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카넷. p238)
칸트선생에게 "인간은 세계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관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로군요. 알쏭달쏭 무지개. 누구의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하얀 설원에 조심스럽게 한발을 내디뎌야할 것 같은 엄숙함이 서려있는 칸트. 저는 그런 '인간'은 자신없네요. 멋있기는 하지만 ᆢ
은주샘~ 고심하며 쓰신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칸트의 '자기자율'이라는 개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의 자율성이란 스스로에게 명령할 수 있는 능력, 세계를 판정하는 주관 자신을 규제하는 힘이라는 것. 와닿습니다. 후기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은주샘. 저를 비롯한 다른 분들도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ㅎㅎ 천천히, 각자의 리듬으로, 그러나 또 함께 푸코를 만나봅시다.
샘, 저도 어렵다, 모르겠다를 입에 달고 다녔었네요. 하면 할수록 어려워 뒷목을 부여잡은 적도 많았고요. 이 걸 왜하나? 하는 생각도 수시로 들었고요. 그럼에도 놓을 수없었던 이유, 저는 그것을 일리치방 건화샘을 글 '스마트폰과 쾌락의 활용'을 읽으면서 공감했어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가 평소 활용하지 않던 몸의 감각을 깨우고 "소모적이지 않은 "쾌락이라 그렇다라고 쓴 부분을 읽고요. 그 구절을 읽고 나니 몰라도 꾸준히 해야 하는 게 공부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긴 모르니까 하지... 음, 알아도 공부에 중독되면 하겠지요? ^^ 그러니 샘, 꾸준히 신나게(?) 같이 해보아요 "신나게"라고 쓴 부분이 억지스럽긴 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