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는 수도원에서 읽는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읽기는 주마등 같은 면은 훨씬 덜하고 신체적인 면은 훨씬 강한 활동이다.”(이반 일리치, 『텍스트의 포도밭』, 현암사, 84쪽)
이번 시간에는 『텍스트의 포도밭』 3장 ‘수사의 읽기’ 부분을 함께 읽고 토론을 했습니다. 여기서 일리치는 중세 수사들의 읽기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냅니다. 놀라운 것은, 중세 수사들에게 읽기란 신체적인 측면이 강한 활동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에게 텍스트는 입으로 맛봐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의사들은 구기 운동이나 산책 대신에 책 읽기를 처방하기도 했고요. 기독교 교부들은 성경 읽기의 경험을 꿀을 맛보는 경험과 연관시킵니다.
또 수사들에게 읽기란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성 베네딕트가 세운 수도원의 규칙에 따르면 수사들은 하루에 일곱 번 교회에서 만나 하나의 음조로 『시편』을 노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젖을 짜거나 쟁기를 갈 때, 버터를 만들거나 끌질을 할 때”(89쪽) 수사들은 단조로운 소리로 각자 자신이 고른 행을 중얼거립니다. “읽기는 그의 낮과 밤을 수태”(89쪽)시킵니다. 수사들에게 읽기란 지식 습득이나 정보 수집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책이란 지식을 담는 도구라기보다는 영적인 생활의 반려자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요. 또 읽기란 머리로 하는 활동이 아니라 몸으로, 또 일상으로 텍스트를 구현해내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후고에게 책이란 뭐였을까요?
토론 중 중세 수사들에게 이런 식의 읽기가 가능했던 건 ‘성경’이라는 하나의 보편적이고 권위 있는 텍스트가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들에게 진리는 성경에 있고 교회의 전통에 있고 수도원 생활에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문제가 단순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죠. 어느 한 쪽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수의 진실들이 존재하고, 균형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전만 파는 게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수사들의 읽기는 우리에게 텍스트와 관계하는 하나의 낯선 모델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시대에는 그 가치를 알아보기 어려워진 영적인 읽기의 방식을 말이지요.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읽기 방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는 기술도 필요하겠죠. 그렇지만 우리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앎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변환시키고자 한다면, 좀더 의식적으로 발굴하고 발명해야 하는 종류의 읽기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수사의 읽기가 아닐까요. 고전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마치 수사들이 성경을 씹고 맛보고 살아냈듯이, 어떤 텍스트 하나를 깊이 맛보고 살아내는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2. 중세의 지식인들
『중세의 지식인들』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12세기에 이르러 유럽 역사에 등장한 세속 지식인들. 이들은 두 가지 다른 지식인의 모델 사이에서 길항합니다. 먼저 탁발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세속 지식인들보다 앞서 등장한 계층인데요. 이들은 세속과의 단절을 꾀한다는 점에서 세속 지식인들과 구분됩니다. 이들은 ‘탁발’ 수도사인 만큼,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생계와 연관 짓지 않습니다. 자발적 가난과 후원에 의존하는 삶을 택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세속적 삶에 대한 부정을 표현합니다. 다른 한편에는 14세기 이후에 등장하게 되는 인문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도시나 대학이 아니라 궁정이나 시골의 별장에 머물면서 자기충족적인 앎을 추구합니다.
탁발 수도사, 도시의 지식인, 인문주의자. 저는 지식을 추구하는 자에게 이 세 가지 계기가 모두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규문이라는 공간에서의 공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토론 중 어느 샘이 지적해주셨듯, 도시 지식인들의 고유성과 탁월함이 그들의 취약성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탁발 수도사와 인문주의자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지만 자기 생계와 안정을 확보하고 있고, 확고한 신분으로 뿌리내려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도시의 지식인들은 애매합니다. 이들은 조합을 만들어 연대하기도 했지만 늘 교권과 왕권에 휘둘려야 했지요. ‘나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다’라며 민중들과 선을 긋기도 했으나, 살아가기 위해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도하는 자’보다는 ‘일하는 자’의 그룹에 더 밀접합니다.
그런데 이런 취약성은 그들의 앎을 보다 생생한 것으로 만들어줍니다.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지금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고민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예민하게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또 이는 자신의 지식을 증명해보이고 앎을 통해 많은 이들과 계속해서 교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저는 이러한 지식 생산의 조건이 골리아르들의 자유분방한 비판정신과 스콜라철학의 과학적 경향을 낳은 토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든 싫든 계속해서 자기 시대와 호흡해야 했던 이들이 바로 도시 지식인들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어쩌면 규문에서의 제 공부가 그동안 너무 자족적인 차원에 국한되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어떤 당위이자 올가미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의 문제’가 따로 있을 거라는 건 환상이 아닐까요. 공부에 대한 도덕적 환상을 버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고민하는지 그들과 지식을 통해 어떻게 교류할 수 있을지 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쩐지 제 공지 안에서 『텍스트의 포도밭』 얘기와 『중세의 지식인들』 얘기가 서로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한데요... 그만큼 제가 갈팡질팡 고민하는 중이라고 이해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