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르네상스’를 이끈 수도원
수도원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유럽 혹은 속세를 벗어난 외딴 곳으로 멀리 우리를 보내버립니다. ‘유럽을 만든 은둔자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수도원의 탄생』을 읽다보면 ‘유럽을 만든’이란 표현을 알듯말듯 합니다.
은둔이라는 말에 수도원은 세상과 고립된 채 삶을 영위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잘못된 생각은 아닙니다. 하지만 900년과 1050년 사이에 수도원은 ‘서유럽의 정치·사회’생활에서 영향력이 정점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중세 수세기동안 지식, 예술, 경제, 생활방식, 정치 전반에 걸쳐 수도사들은 역할은 두각을 나타냅니다. ‘유럽을 만든’이라는 표현대로 수도원의 삶의 방식은 속세와 긴밀한 관계를 주고받습니다.
‘12세기 르네상스’로 불리는 사상적 문화적 운동은 이미 11세기에 시작되었고, 13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이 운동은 중세 전성기, 곧 위대한 격변기의 예술적·문학적·문화적 표출이었다. ‘12세기 르네상스’는 종교운동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운동의 출발은 성직자의 교육과 교양의 개선이었다. 운동의 성과는 교회 기관의 개선과 재편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운동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대학의 설립을 들 수 있고, 장식과 예술적 완숙미가 돋보이는 웅장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범위 안에서 성장했고, 각 방면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다가 몇몇 세속적인 요소들과 연결되었고, 마침내는 많은 그릇된 교리들과도 관련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정신적인 위대함과 세상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각국의 언어로 쓰인 매우 다양한 문학작품의 생성에도 기여했다. (크리스토퍼 브룩 『수도원의 탄생』, 이한우, 청년사, 161쪽)
이 책의 7장, ‘수도원이 ’12세기 르네상스‘에 끼친 기여’라는 제목의 가장 첫 페이지입니다. 이 페이지뿐 아니라 이 책을 읽다보면 수도원과 관련한 나의 이미지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묻게 됩니다. 수도원은 세속과 동떨어져 금욕적인 생활을 했던 은둔자들의 암울한 공동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글에서 수도원은 세상에서 네트워크의 허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네요. 배타, 고립, 단절을 삶의 방식으로 하는 소수의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었나 봅니다.
게다가 수도원의 울타리 안에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다고 하는데요. ‘뛰어난 사업 재능을 가진 사람, 위대한 사상가와 작가의 재능을 가진 사람, 탁월한 장인들’을 만날 수 있다고 저자는 적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수도원공동체로 돈과 사람이 몰린 데는 사회, 경제, 종교적 여러 이유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미지를 통해서만 알고있던 수도원에 대한 저의 앎이 편견과 선입견으로 작동했단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12세기 예술과 건축은 고대로마와 비잔틴 뿐 아니라 이슬람의 문화를 받아들인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시공간적 감각과 다른 문화가 공존할 수 있었던 시대였지요. 수도사들은 예술, 건축, 지식 등에서 ‘12세기 르네상스’를 견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12세기 수도회들 중에는 가장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인상적인 건축물을 남긴 시토회가 있습니다. 이 시토회에서 노동은 중요하고 필수적인 교리였습니다. 생활방식도 그리고 클리니 수도원은 독서와 노동을 동일한 가치로 삼았습니다. 11세기에서 12세기로 바뀌는 시점에 신흥 수도원은 수도사들을 책 필사 작업에 참여시킵니다. 필사와 독서는 수도원의 전형적인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삶에서 독서가 노동과 동일한 가치로 요구되는 삶이라니 지금 우리의 배움이나 독서라는 읽기와는 참 많이 다른 감각입니다.
‘읽을 의무’
이반일리치는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13세기 이후 문화적으로 정의된 읽기를 ‘성직자 계급과 그들이 가르친 사람들에게만 제한된 능력’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수도원 초기부터 후고가 살았던 12세기까지 성직자 생활 방식을 나타내는 학자식 읽기와는 다른 읽기 방식이 있었지요. ‘읽기 자체를 위한 읽기’.
후고가 말하는 읽기는 전통적으로 성직자보다는 수사와 연결되는 행동입니다. ‘성직자의 읽기’는 법의 운영이나 성직자의 신앙 고백 암송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반면 수사에게 읽기는 진지하게 삶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으로 전례와 함께 작동했지요. 읽기가 전례에서 개별적 행동으로 이행되던 시기에 살던 후고는 읽기를 ‘보편적 의무’로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근대 제도교육이 보편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후고의 읽기는 수백 년 동안 성장해 온 수사식 읽기의 정점을 이룬 것이라고 일리치는 평하고 있는데요. 후고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십 년 후에 성직자 생활 방식의 학자식 읽기가 자리 잡습니다.
후고에게 읽기는 개인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모범적 기능같은 것이었지요. ‘모든 사람’이 어떤 특정한 것을 배우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관념이 교회의 교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슬람은 배워야 한다는 의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공동체에 있건 홀로 있건 하루에 다섯 번씩 낭송해야 하는 기도를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읽기는 곧바로 행위며 전례였지요. 12세기 파리에 살던 후고는 배울 의무를 ‘읽을 의무’로 정의했다고 합니다. 숱한 배움이 ‘읽음’으로 정의될 때 그 읽음은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감이 잡히지 않네요. 읽기는 암송이나 예배, 묵상 등과 관련하여 여러 형태로 행해졌습니다. 중세는 ‘읽을 의무’, 물론 지금과는 다른 읽기지만, 그것이 삶의 주요한 원리로 보편적으로 요구될 수 있는 시간대였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의무로 부과되는 것은 노동입니다. 보편제도 교육도 노동력을 얻기 위함이니 결국 부과되는 것은 노동이지요. 쉼이라는 것마저 노동에 종속되어 노동에 재투입되기 위한 것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현재의 삶은 노동이라는 단일하고 얄팍한 층만 허락하는 것 같습니다. 수도원의 하루 일과를 보면서 처음에 우리보다 단순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노동 외에 명상과 예배, 여가 시간, 읽기라는 배움과 같은 여러 다양함이 적절히 배치된 생활 공간이자 삶의 방식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내 생활을 더 복잡하게 느껴지네요. 왜일까요?
암흑기라는 중세에 대한 편견은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그 시대에 대한 무시나 적의로 작동했지요. 이 세미나를 신청하면서 터무니없는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길 바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젠 중세를 바람직하게만 보려는 시선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중세에 대해 극과 극을 오가고 있네요. 그래도 중세와 관련한 책을 읽으며 알게 되는 세세한 사건들은 그곳에서 삶이 영위되고 펼쳐졌던 곳임을 일깨워줍니다.
읽기는 행위이자 전례였던 후고의 시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형태의 읽음으로써 온몸으로 새겨지는 텍스트를 삶과 함께해야 한다는 태도, 자세일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이 지식을 쌓고 나를 세우는 것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지혜를 터득하고 나를 해체하기 위한 것인지 계속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수도원의 삶의 단 일부라도 알게 되어 그 안의 세계를 조금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현재는 관광지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도원을 직접 걷는 것보다는 그 시대 수도원에서 울려퍼지는 수도사들의 암송 소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희쌤~~ 후기 잘 읽었습니다!! 중세 세미나 아자아자!!
휵샘의 아자아자!가 무척 와닿습니다. 정말 아자아자!하는 마음으로 마음 모으기~~책과 텍스트의 차이는 거기 책이 있어 읽어야 하는 것이라면, 텍스트는 읽는 사람의 눈과 만나 비로소 한권의 다른 책이 되어가는 것. 우리는 '책'을 매개로 한 권의 거대한 책을 만들어가는 와중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전 현재의 보편 교육이 노동력 생산 역할을 하는 것을 점점 떠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현재의 학교 선생님이나 학생들 중 자신을 도구로 생각하는 것에 저항감을 가지지 않는 분들은 거의 없고, 그런 개별자들이 움직이는 시공 속 교육은 그들이 뭍어날 수 밖에 없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 없는, 다만 읽는다는 것이 목적 자체인 중세적 읽기도 가능한 때가 오지 않았을까도 싶어요~🩶
곧 세상이 망할 것 같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세상이 왜 아직 망하지 않는지 알 것도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