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權度量, 考文章, 改正朔, 易服色, 殊徽號, 異器械, 別衣服. 此其所得與民變革者也. 其不可得變革者則有矣. 親親也, 尊尊也, 長長也. 男女有別, 此其不可得與民變革者也. 성인은 백성들이 편안히 여기는 바를 억지로 제거하지 않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를 억지로 남겨두지 않으므로 권(權, 무게를 다는 저울)과 도(度, 길이를 재는 자)와 양(量, 부피를 헤아리는 단위)을 정립하고, 문장을 고찰하고, 정월을 바꾸며, 의복의 색깔을 바꾸고, 깃발의 칭호를 달리 하고, 예기와 병기를 달리 하고, 의복을 구별하는 것은 백성들과 의논하여 변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변혁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친척을 친애함과 높은 분을 높임과 어른을 어른으로 받드는 것과 남녀간에 분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백성의 요구가 있어도 의논하여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16.4.2)
<述而第七>12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富)가 만일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말채찍을 잡고 수레를 모는 천한 일이라도 내가 하겠다. 그러나 만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
<예기> 中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대전'과 '소의'편을 읽었습니다. '대전'에는 예의 원칙이 나왔다면, '소의'에는 <소학>의 원전이라 할만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마당을 쓸고, 손님을 맞으러 나가고, 어떻게 인사하고, 다른 사람을 공경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세한 조목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전편의 대의에 눈이 먼저 갑니다. "성인은 백성들이 편안히 여기는 바를 억지로 제거하지 않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를 억지로 남겨두지 않"기 때문에 자잘한 도량형이나 의복의 색깔은 얼마든지 의논하여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고, 예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친척을 친애함과 높은 분을 높임과 어른을 어른으로 받드는 것과 남녀간에 분별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아무리 사람들이 요구해도 바꿀 수 없다고 못 박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구별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리를 찾고,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만약 모두가 같은 것을 욕망하고 같은 일을 하려고 한다면 공동체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위계를 나누어 살게 될 뿐이겠지요.
<예기>에 나오는 각종 세세한 조목들을 읽다보면 가끔 숨이 막힙니다. 마치 내가 어떻게 걸어야 하고 손과 발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동작과 태도 하나하나를 외부에서 입력받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 조목을 단지 억지로 해야 하는 도덕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노예를 자처하게 됩니다. 특히 돌아오는 이익을 생각하며 그런 도덕률을 따를 때 노예가 되는 느낌이 강하고, 끝내 강한 '현타'를 맞기도 하지요^^;; <예기>에서 권하는 신중한 태도, 자잘할 정도로 세세하게 권유하는 조목들은 오히려 편안함과 즐거운 인생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처방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의 태도가 이익에 얽매여 있진 않은지,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먹어져 있지는 않은지 늘 살피고 경계하는, 그렇게 해서 자유로운 생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죠.
공자는 <논어>에서 이익을 말할 때면 '좋아하는 것'과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유명한 말, "부(富)가 만일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말채찍을 잡고 수레를 모는 천한 일이라도 내가 하겠다. 그러나 만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고 말입니다. 공자에게는 부유함과 좋아하는 것이 꼭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꼭 부를 바탕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요.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신중함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예기>에서는 구별과 신중함으로, 공자는 부유함과 좋아함의 구별로 말한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예기> 中 p. 343~p.368
<논어> 편집본 챕터 2.
읽고 공통과제 써 옵니다.
토요일 아침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