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BS 대망의 첫 코너는, 규문의 프로그램을 인터뷰하는 '마이크 ON'입니다.
공지글로는 차마 전달되지 않는 선생님들의 말들을 조금 더 진솔하게 들어보는 시간인데요.
저희가 만나볼 첫 번째 프로그램은 '절차탁마 Q' 입니다.
눈 내리는 날, 즐거운 대화가 오가던 '절차탁마Q'팀과 QBS!
1. 프로그램 소개
제현: '절차탁마Q'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정옥: '절차탁마Q'는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하 문사철)을 같이 읽는 세미나예요. 작년에 저희가 글쓰기와 역사 프로그램을 같이 했었는데, 문학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문학을 읽을 때, 역사와 철학을 함께 읽으면 이해도가 확실히 달라져요. 작년에 했던 프로그램에서는 다양한 삶의 양식을 볼 수 있는 문학과 그것의 베이스인 역사를 엮어서 공부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자기 언어로 해석하는 데에 한계가 생기더라고요. 무언가를 해석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사철이 기획되었어요. 그런데 사실 문학에도 역사와 철학이 녹아있고, 철학도 이야기와 역사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세 개가 다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특화되는 지점들이 있으니까, 그것들을 같이 엮어서 이렇게 문사철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이런 프로그램이 거의 없지요. 어디에도 없어요. 옛날에는 전인교육이라거나 (너무 ‘라떼는’인가ㅎㅎ)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같은 것을 배우는 것이 기본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점점 분과화되면서 내가 아는 것 하나만 잘 알면 된다는 생각이 굳어졌잖아요. 그걸 넘어서 통합적인 사유를 하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공부, 이게 문사철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모두가 거쳐야 하는 프로그램.
제현: 그렇네요.ㅋㅋ 자긍심이 있어야 프로그램이 시작되잖아요.
정옥: 아유~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어. 사실 작년에 문사철 올라갔을 때 이게 박 터질 줄 알았어요. 공부를 하다보면 한 번씩 내가 이 부분에서 도약을 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저는 문학과 역사를 함께 공부할 때 그런 도약이 생겼던 것 같아요.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조금 자신감도 생기고, 이렇게 공부하니까 너무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니까 이게 되게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걸 아는 것 자체가 이미 공부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공부에 대한 자세가 이미 되어있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ㅋㅋ
제현: 도발적인 멘트로 마무리를 해주셨습니다! ㅎㅎ
정옥: 되게 좋은 프로그램인데 많아 안 와서 너무 안타까워. 진짜 대박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줌에서 소회의실을 어떻게 나눠서 토론을 하지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니까요?
제현: 이렇게 듣다보니 엄청 흥미가 생기는데 확실히 공지글은 많이 깎이고 길다 보니 전달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2. 읽는 분량에 관한 해명
정아: 근데 저희 프로그램 보셨을 때 어떠셨어요? 솔직하게.
해민: 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궁금해서 해볼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 주에 한 권씩을 읽더라고요. 그걸 세 달 안에 다 읽을 수 있을지...
정옥: 그걸 말하면 어떡해! 오프 더 레코드야.
정아: 아니 근데 이 부분을 많이들 모르실 것 같아요. 저희 프로그램이 학기마다 주가 달라요. 다른 프로그램들은 10주, 9주 이런 식으로 가는데 저희는 1,2학기는 7주씩이고 3학기는 12주, 4학기는 14주거든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때에는 14주에 걸쳐서 읽는 거죠.
해민: 그런데 거기에 다른 책도 두 권씩 더 읽잖아요.
정아: 저희도 조금 걱정을 했던 게 프로그램을 처음에 딱 보면 텍스트가 너무 많다고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철학은 채운샘이 강의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제현: 모르면 모르는 채로 읽는 게 부담감이 내려갈 때가 있긴 하거든요.
정옥: 철학을 문학하는 날 같이 하잖아요. 같이 엮어서 정리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뭔가를 남기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이틀에 나눠서 하기로 한 것도 텍스트가 많기 때문에 읽을 시간을 확보해주려고 역사를 따로 뺀 거예요.
3. 절차탁마Q 세미나에 끌린 이유
제현: 선생님들께서 각자 세미나에 끌리신 이유가 궁금해요.
경희: 작년에 문학과 역사를 같이 공부했을 때 문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여기에 또 하나 철학이 덧붙여지는 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니체 책을 보면 우물이 나오잖아요. 이 우물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거야 했는데, <연옥의 탄생>에 우물이 나오더라고요. 이것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 <2046>에서도 구멍이 나오는데, 그것도 연결될 수 있겠다 싶고.정옥: 우리 작년에 괴테 읽을 때에도 괴테가 시칠리아를 건너갔다 오면서 죽음에 대한 사유를 많이 했는데, 시칠리아가 연옥이나 지옥을 형상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 사유를 했구나를 볼 수 있었고.
경희: 맞아요. 맞아! 그리고 루쉰의 검은 별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왜 나오는지 너무 이해가 안됐었는데, 루쉰과 관련한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책을 같이 읽으니 루쉰이 처했던 역사적 배경과 연결이 되면서 그 장면이 너무 잘 이해가 되는 거예요. 루쉰이 왜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는지가. 그러니까 뭔가 하나를 한 가지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으로,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기대가 돼요.
정아: 저는 아직 세 개를 같이 한다는 게 뭔지 감이 안 오긴 해요. 그래서 기대감, 설렘, 궁금함이 더 커요. 저희 세미나 설명글 중에 역사하고 문학은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철학은 그 경험들이 이루어지는 조건을 묻는다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공감이 많이 됐어요. 저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했는데, 구체적인 모습을 내 삶을 가지고만 생각을 하면 너무 좁은 거예요. 구체적으로 잘 안 들어올 때도 있고, 그런데 문학하고 역사를 보면 구체적인 모습들이 다양하게 드러나니까, 철학 개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어요.
경희: 전 중세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근대에 대한 관심이 출발이었기는 하지만 근대의 연장인 중세도 궁금한 거예요. 그리고 저희가 중세와의 경계를 분명하게 그어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데, 19세기까지도 오래된 중세로 보기도 하거든요. 아날학파 학자들은 그렇게 시대 구분을 해서 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중세와 근대를 같이 놓고 공부하고, 또 역사의 주변부인 이슬람 중세의 역사가 들어와 있는 것도 좋고, 3·4학기에는 동양과 서양이 크로스되는 것도 좋아요. 요약하자면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다는게 좋은 것 같아요.
정옥: 구체적인 정념을 일으키는 아주 디테일한 문학에서부터 거시적인 역사와 철학까지를 봄으로서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는, 인간인 내가 살아갈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공부인 것 같아요. 시야가 넓어지는데 그것이 붕붕 뜨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것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관점이 커진다는 것이 문사철의 장점인 것 같아요.
4. 문사철을 함께 공부해야 하는 이유
제현: 작년 한 해 함께 공부해보니 어떠셨나요?
정옥: 물리적으로 힘들었어요. 읽어야 할 텍스트의 양이 많았고, 교과서적인 역사서가 많았거든요. 그거를 다 정리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더라고요. 그리고 또 역사를 정리했다고 해서 그게 또 다 외워지는 게 아니잖아요. 역사를 읽고, 정리하고, 암기하고... 그런데 타자로 치고 쓰는게 신체적인 일이잖아요. 그래서 좋았어요. 올해는 역사책이 시대를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아마 읽는 재미가 클 거예요. 그리고 느슨하게 공부하면 오히려 이탈하게 되는데, 빡세서 팀웍도 좋고 이탈자도 없었어요. 그리고 확실히 빡세게 공부하니까 노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어요. 여행도 두 번 갔죠. 남원도 가고 제주도도 가고.
5. 문사철의 쓸모에 대해서
제현: 저는 학교에서 ‘문사철’ 단어를 쓸 때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는 경우를 많이 봤던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취업률 낮은 학과, 문사철.’, ‘문사철 정원미달’ 이런 식으로 인문학이 ‘쓸모가 없다’는 듯이 볼 때에 말예요. 규문에 계신 선생님들 대부분이 반발심을 가질 거라 생각 하지만, 여기계신 선생님들께서는 특히 하실 말씀이 많을 거 같은데요. 문사철은 우리 사회에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정옥: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요의 시대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가장 큰 문제는 불안, 우울, 이런거잖아요. 조건은 너무나 좋은데 자기 자신을 어떻게 못하고, 누가 미운 걸 어떻게 못하고, 남과 비교해서 생기는 울분을 어떻게 못하고. 동양에서는 위기지학을 이야기하는데, 공부는 나를 위한 것이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요. 자기 배려의 학문, 그게 문사철이죠. 쓸모 없지 않다. 너무나 쓸모 있다.
제현: 공대에서 가장 취업이 잘되는 삼인방을 '전화기(전기, 화학, 기계)' 라고 부르고, 가장 취업이 안 되는 과는 문사철이라고 불러요. (인문학의 분과라는 용법보다는 얕잡아보는 느낌이 드는) '문사철'은 '전화기'에 비해 정말 상극인 거죠.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전화기를 꿈꿀 수는 없잖아요?
정옥: 하나를 정말 잘해, 그러면 그것만 하면 먹고 살 수 있어 하는 관념들이 있는데, 그럼 뭐해요. 취업 잘해서 1,2년 안에 그만두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제 주변에서 많이 봐요. 연봉 초봉을 한 7,8000 계약하고 들어갔어요. 근데 13개월 하고 그만둬. 퇴직금을 받아야 하니까. 딱 그만큼 버틴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극복이 안된다는 거죠. 전화기를 통해서 사회 진출을 한다고 해도 나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데. 정작 자기가 공허하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죠.
6. 세미나 진행방식
정아: 세미나는 공지된 대로 월요일과 목요일에 진행되는데, 월요일은 오프라인이고 목요일은 온라인이에요. 월요일 1교시에는 문학 세미나를 하는데, 해당 책을 읽고 10개의 문장을 선택해와서 왜 그 문장을 골랐는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하고 2교시에는 철학 강의를 듣는 시간이고요. 질의 응답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요. 문학 토론하다가 해결 안된 부분도 답변해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목요일에는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고, 발제문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돼요.
정옥: 에세이는 문학을 중심으로 쓴다고 보면 돼요. 인물 중심의 에세이를 쓴다거나. 한 인물은 캐릭터이자 사유잖아요. 그러니까 사유를 어떻게 이렇게 하게 되었나, 그 베이스를 보게 되는 것이겠죠. 그리고 문장을 뽑아 오는 것도 사람마다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다를 거예요. 그런데 작년에 했을 때 같은 문장을 뽑아올 때 되게 재밌었어요. 엄청 두꺼운 책을 읽을 때에도 공교롭게 똑같은 문장을 뽑아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되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혼자 읽을 때와 같이 읽을 때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완전히 다른 시각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도 굉장히 재밌죠. 혼자서는 절대 못 읽는 책을 읽게 된다는 것도 좋고요.
+ 분량 걱정에 대해.
정옥: 멍 때려도 뚫고 들어오는 문장이 있는데 그거 데리고 오는 거야. 내가 되게 불완전하잖아요. 그러니까 함께 하는 거예요. 이 빠진 걸 가져오지만 상대는 또 다른 것들을 가져오니까. 다 빠져가는 와중에 남는 것이 분명 있을 거예요. 콩나물도 물 다 빠져나와 있는데 크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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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허해민
질문: 문제현
편집: 허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