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무진장 수요반'은 <노자> & <장자>와 서양 철학 텍스트를 함께 읽는 강좌 프로그램입니다.
1. 노장의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제현: 우선 노장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 위주로 질문해볼게요. 노장은 어떤 이미지로 떠오르시나요?
민호: 저는 동양 철학에 대한 이미지가 함축적인 언어들로 많이 다가왔는데요. 예를 들면, “말할 수 있는 도는 향상된 도가 아니다.”라든지, ‘기’라든지... 대단히 크고 혼란스러운 말을 많이 사용하는 인상이 강했어요. 그런데 노장이라고 하면, 흰 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들이 아이같은 맑음을 유지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도 배우고 나면 속세로부터 벗어나서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싶어 끌리는 마음이 있었네요.
말씀을 들으니, 제게는 인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철학자 이미지로 떠오릅니다. (?) ㅎㅎ.
희수: 제가 생각하는 노장은 ‘잘 하려는 마음’에 대해 부정하는 듯한 뭔가가 있는 거 같았어요.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 실은 헛된 게 아닐까. 그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갔거든요. 근데 그러면 ‘이제 우리는 뭘 할 수 있지?’에 대한 물음이 발생을 하는데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그와 관련한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마음이 끌렸어요.
제현: 저는 노장이 좀 좋은 의미로, 가볍고 힘을 뺄 수 있는 이미지로 다가왔어요. 요새는 고민인 게 너무 잘하고 싶으니까, 성격이 더러워지는 제 자신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것들에 있어서 ‘어? 저거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데?, 저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들이 자꾸 드는 거죠. 그런데 그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자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고치고 싶은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내가 마음만 조금 유하게 먹으면 문제될 게 없는데, 왜 나는 참지 못하고 계속 딱딱해지고 무거워지려고 할까. 그 이유가 스스로를 옭아매는 ‘잘하려는 마음’에 있다고 한다면, 노자장자가 그것을 풀어줄만한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2. 우리 시대에 노장이 필요한 이유는?
규창: 요즘은 눈에 띄는 위기가 너무 많잖아요. 어떤 윤리, 도덕을 바탕으로 펼쳐지고 있는 담론들이 참 많은데 그 결과가 우리를 더욱 무겁고, 신경 쓸게 많도록 만드는 거 같아요. 가령 기후정의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소비에 대해 무겁게 생각을 해야 하고, 동물권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뭔가 비거니즘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하고, 성과 이주 노동자에 대한 담론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역설을 마주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노장이 주는 매력적인 지점은 ‘~를 해야 한다!’라는 의식만으로는 결국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인 거 같아요.
노장이 유학을 비판하는 맥락도 비슷하거든요. 유학에서는 인의예지신, 효 등 ‘지켜야 하는 마음’을 강조하는데, 노장은 여기에 '세상이 지킬 것들을 다 지키는 방식으로 좋아지는가?’의 질문을 던져요. 노장에 따르면 인간이 걸어갈 길은 사실은 세상이 다 망가진 다음에 수습하려고 세워진 거지, 우리를 해방시키진 못한다. 오히려 어떤 명령들은 우리를 짓누르고 무겁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거죠. 이 시대에 노장은 너무 많은 윤리로부터 우리를 풀어주고,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겁니다.
3. 노장 텍스트의 특징은?
제현: 제게 동양의 학자들은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성을 내는 이미지로 그려져요. “예끼, 그게 아니야!”, “너는 아직도 OO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로구나!”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노장 텍스트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는 거 같아요. 힘을 빼주고 가볍게 만들어주는듯한,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 같으세요?
(모두가 박규창을 응시한다.)
규창: 아... 또 저로군요. 노장은 상대적으로 문학적이에요. 우리가 유학을 배울 때는 대체로 <사서>, <성리학>을 배우는데요. 이는 ‘공부란, 이렇게 해야 해!’라는 틀 속에서 정리가 되거든요. 다소 지침서같은 느낌이 있는데, 노장은 일단 틀을 벗어나서 시나 문학의 인상이 강하죠. “말할 수 있는 도는 향상된 도가 아니다.”는 ‘이게 뭔 말이야?’ 생각부터 들고 그 물음표가 색다른 느낌의 가벼움을 만들어내죠. 장자의 경우에는 완전히 상식 바깥의 일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느 날 바다에 잠겨있던 거대한 물고기가 갑자기 새가 되어 삼천리를 날아가고...) 사유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문체와 장르가 차이가 있죠.
민호: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일상의 어휘들이 장전에서 유래된 게 많다고 들었어요. 우물 안 개구리, 호접지몽, 조삼모사 등등...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진 것들인데 그것들이 여러 상황과 맥락에 얽혀서 여전히 쓰이고 있죠.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노장의 문학성 때문인 거 같습니다. 일상적 의미 외에도 다르게 해석할 여지 또한 많을 거 같고요.
희수: 아니 그런데 듣다보니까. 제가 그러면 노장을 <사서>랑 같이 하지 말아야하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ㅎㅎ. 너무 상극인 거 같은데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 점점 무거워지네. 유학과 노장을 같이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민호: 둘 다 하시면, 비교가 되어서 좋을 거 같아요! 먼저, 유학을 풀 때에는 노장적인 사유도 필요하고, 노장적인 사유를 해석하기 위해 언어와 상황이 필요하니까요. ‘1+1 = 2 이상’일 겁니다!
정옥: 맞아요. 길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학문과, 그 길을 왜 가야하는지 묻는 학문이 만나면 시너지가 엄청날 거 같아요.
희수: 그치? 마음이 가는 둘 다 해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새 욕먹을까 걱정했어 ^^
4. 노장이 말하는 공동체?
제현: 요새는 ‘혼자 살아도 무리 없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요. 집, 직장을 오가고, 어딘가에 소속된다기 보다는 자기개발해서 금세 이직하고... 그러다보니 자기는 강인해야하고, 다 잘할 수 있어야한다는 불안과 압박을 더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노장이 말하는 공동체는 어딘가 편안함을 주는 거 같아서 지금 우리 사회와 다른 점이 있는 거 같았어요. 노장이 말하는 공동체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규창: 노자는 소국과민, 즉 한 사람의 영향력이 닿을 수 있는 범위까지의 영역을 국가로 제시해요. 말하자면 우정 공동체같은 거죠. 적은 인원으로 굴러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훨씬 더 수고로울 수 있겠지만, 동시에 각자의 능동성이 훨씬 발휘되는 관계인 거죠.
정옥: 노자의 매력은 여성성, 유약함, 부드러움에 많이 빗대어 표현이 되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 점점 더 강하고, 굳세고, 모든 것을 할 줄 알아야한다는 힘이 강조되는 거 같은데 그 강고한 힘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는 거 같아요.
희수: 그래서 저는 규문에 처음 왔을 때의 느낌이기도 했네요. 형식적인 규율보다는 매번 적극적으로 물어봐야 하고('매사문(每事問)'하라!), 얹혀가지 않게 되는 거 같아요.
5. 올해 노장을 서양철학과 엮는 이유?
정옥: 동양의 사유가 방대한 덕에 지엽적인 곳에 묶이지 않게 도와주는데, 자칫하면 뜬구름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고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거죠. 서양철학의 언어는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힘이 있기 때문에 둘을 같이 잘 읽는다고 하면 품을 넓히되, 그 방식을 고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 같아요. 근데... 막상 공부할 때에는 각 텍스트의 단점만 보이겠죠... 보일 수도... 있겠죠. ㅎㅎ 노장은 왜 이렇게 추상적이야? 서양 철학은 너무 편협해! 이런 식으로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6. 암송을 하는 이유?
제현: 저는 이번에 암송을 하는 세미나를 처음 접하는데요. 그래서일까 조금 두려움이 있습니다. 일단 암송을 잘 못하기도 하고요. 외운다고 해도 금방 까먹게 되는데요. ㅎㅎ. 무엇보다 암송하는 목표를 잘 알지 못하면 동기부여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암송을 한다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요?
희수: 저는 이번에 주역 팀에서 64궤를 처음 암송을 했는데요. 얼떨결에 외웠지만 되게 좋았거든요. 우선 한문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에 문장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갔고요. 일상에서도 곰곰이 문자를 씹게 되니까 이상한 지점들, 생각해볼만한 지점들을 음미하게 되더라고요. 그 방법마저도 ‘머리로 무조건 외워야지.’ 이러기보다 걸으면서, 읽으면서 몸으로 외우면 수월했던 거 같아요.
정옥: 나중에는 결국 까먹게 되더라도, 체화가 된다면 어느 순간에 분명 연결되는 순간이 있는 거예요. 다른 텍스트를 볼 때에 갑자기 생각이 난다든가. 그런 순간에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죠. 시간이 오래 지나도 외웠던 대목은 ‘나 이거 외웠었는데?’ 하는 기억이 나요. 애쓰는 만큼요.
제현: 말씀을 들으니까 기존의 읽기 방식을 돌아보게 되네요. 저는 이전에도 여러 책을 쌓아두고 문장을 훑는 방식으로 책을 읽기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건 읽기보단 제 글에 필요한 문장을 찾는 행위였을 수도 있었네요. 하나의 문장을 오래 곱씹어보는 암송이 제가 기존에 읽던 습관을 반추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7. 노장에 대한 오해? 나는 자연인이다?
제현: 노장이 말하는 삶을 듣고, ‘그럼,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자연(?)으로 도피하라는 말인가?’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생각해요. 동의하시나요?
규창: 저는 노장을 현실도피의 차원에서만 읽는 것이 대단히 단편적인 해석이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가 벗어나고자 하는 일상이 뭔데?’ 이 질문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연에 들어가라!’가 아니라. 내 삶을 새롭게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현실의 틀을 문제 삼는 거 같아요.
민호: 노장에서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길을 의심할 수 있는 강력한 질문인 거 같고. 노장 자체에서 선명한 길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닌 거 같아요. 노장이야말로 현실을 고민하고 마주하는 대단히 능동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거 같습니다.
정옥: 이번 세미나의 부제목이 <시점의 전환, 일상으로의 초월>인 이유이기도 해요. 현실과 자연? 일상과 비일상? 우리는 그 경계부터를 의심해보는 거죠.
8. 세미나를 앞두고 각자의 다짐!
제현: 미술, 서양 철학, 영화 등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면서 의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고민해보는데 풀리지 않는 지점들이 있었거든요. 이번에 노장을 공부하면서는 서양 텍스트를 공부하면서 놓쳤던 것들, 태도들을 채워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대가 됩니다.
희수: 직장 생활을 하면서 40년을 더 잘하려고만 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 마음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어서 참 기쁘고요. 일요일의 <사서>와 화요일의 <노자&장자>를 함께 읽었을 때 어떤 새로움이 있을까, 그 과정들이 참 기대가 되네요! (+ 평일 수요일에 공부를 한다는게 상상이 안 가네요 ㅎㅎ)
민호: 저도 무언가를 잘해야 되고, 어떤 기준에 부합해야 하고 이런 강박이 대단히 강했는데요. 대학교를 그만둘 즈음에 학교에서 장자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다른 길을 간다는 그 불안감을 덜어주는 기운이 텍스트에 참 많이 담겨있어서 힘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이번에도 노장 세미나를 통해 제 안에 있는 주류적인 욕망을 좀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정옥: 노장은 제가 올해 하는 공부 중에서 가장 기대하는 세미나인데요. 저는 저 스스로 명확하게 생각했다고 느꼈는데 추상적인 언어로 자꾸 튀어나오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세미나가 제게 관념적인 개념을 선명하게 하는 훈련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규창: 저는 유학과 도가를 공부하면서, 그 둘을 너무 대립적인 것으로 여기는 시선에 대해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들었거든요.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는 유학과 노자, 장자의 경계를 어떻게 넘나들면서 사유를 키워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기대가 됩니다 🙂
정해진 노선을 걷기보다, 길 자체를 물을 수 있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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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인터뷰(QBS의 마이크 ON, "지혜의 헤르메스 인터뷰")가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촬영: 허해민
질문: 문제현
편집: 문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