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미나 소개
해민: 간략한 세미나 소개 부탁드려요.
민호: 21세기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생태 문제를 화두 삼아 어떻게 하면 시급한 상황 속에서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우리 나름의 실천과 삶의 기예들을 연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세미나입니다.
해민: 지난 생-기 세미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얘기해주시면 처음 보시는 분들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서요. 지난 생-기 세미나에서는 어떤 공부를 했나요?
민호: 지난 생-기 세미나에서는 지금 우리에게 시급하고 필요한 주제에 맞는 책들을 읽었는데요. 디지털 인프라 및 기술 시스템의 배치와 우리의 욕망에 대한 문제, 육식과 페미니즘, 후쿠시마 사태와 관련한 일본의 원자력 역사를 다룬 책들을 읽었어요. 소로와 제인 베넷의 책을 읽으면서 물질과 생명,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고, <세계 끝의 버섯>을 읽으며 지금과 같이 불안정하고 모든 것이 무너진 시대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송이버섯의 지혜를 빌려 탐구하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분해의 철학>과 <세가지 생태학>을 읽으며 성장과 발전이 아닌 분해와 부패의 관점에서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게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장황하게 설명하게 됐는데, 이렇게 생-기 세미나를 꾸려가면서 생태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의 안과 밖에 어떻게 개입되는지를 배울 수 있었어요. 그렇게 1년을 하고 나니 한 발자국 더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태 문제를 인간이 망친 것을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로 규정하는 관점을 넘어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술 철학을 공부하는 세미나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2. 인간과 기술을 사유해야 하는 이유
해민: 생태 문제를 인간의 문제로 규정하는 관점을 넘어설 때, 왜 기술을 사유해야 할까요?
채운: 동양 철학도 그렇고 서양 현대 철학도 그렇고 인간이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출발해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무아’죠. 그런데 이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없다는 말 만으로는 돌파하기가 어렵죠. 생-기 세미나에서도 기술이라는 문제가 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는데 그 둘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보자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실체가 없다는 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거죠.
‘나’라는 관념이 왜 환상인가 하면, 나의 행위, 앎, 몸, 감수성에 너무 많은 도구들과 존재들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요. 기억은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미디어 없이는 존재하지 않고, 지금 이 인터뷰를 할 때에도 녹음기나 키보드 없이는 할 수 없죠. 이전에 발명된 사물들의 개입과 관계 없이는 뭘 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감각, 앎, 신체, 생각, 먹기, 싸기… 모든 것이 기술적인 것들을 경유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술을 사유하지 않고서는 존재 뿐 아니라 생태의 문제도 넘어갈 수 없죠.해러웨이는 인간이 사이보그라고 했어요. 인간은 너무 많은 존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나 신체 자체가 테크놀로지 없이는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흐려지는 시대를 살아갈 때 기술을 사유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해주는 것들은 내가 연결되어 있는 무수한 고리들인데, 크게 보면 그것들이 다 도구고 기술이죠. 생태학의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근본적으로 묻고, 인간과 인간 바깥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의 연결을 사유하는 것이 기술 철학이에요.
3. 인간과 기술,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는 사고의 한계
해민: 저도 지난 생-기 세미나를 같이 했는데, 공부를 하면서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생태적 관점에서 기술을 말할 때, 기술 발전의 폐해를 떠올리며 기술에 대한 선악 판단을 하게 되더라고요. 나와는 분리된 기술이라는 실체가 있는 거죠. 이러한 생각의 한계는 무엇일까요?
민호: 생태학적인 문제 설정이 위험하고 표면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주체로서의 인간이 소환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문제 상황을 따로 설정하면, 인간은 문제 상황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그러니까 자연과 분리된 주체로 설정되게 되죠. 그렇게 되면 문제 해결이라고 말해지는, 처벌하고 규제하고 양심에 호소하는 대안들이 나오는데요. 이 대안들은 자본이 가장 잘 이용하는 대안이에요. 규제를 만들면 규제를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고, 양심을 다독여줄 트렌드를 제공하잖아요. 에코 트랜드와 지속 가능한 발전 같은 것이 모토가 되고요. 이게 지금 우리의 딜레마적 상황인 것 같아요. 이런 딜레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어디까지이며, 인간이 과연 이러한 문제 상황과 분리된 원인 제공자이자 책임자가 맞는가 하는 질문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채운: 덧붙이자면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대상화한 존재를 묻는 것이기도 해요. 우리는 무엇을 자연이라고 부를까요? 스마트폰은 자연일까요? 스마트폰은 지구의 온갖 광물질을 모아서 만든 것이잖아요. 스마트폰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지구 곳곳이 파헤쳐져야 하는 거죠. 우리는 테크놀로지를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거나 자연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니까 인간에 대해 묻는다는 것은 우리가 낭만화하거나 인간화하거나 이미지화하고 있는 자연의 존재에 대해서 묻는 것이기도 합니다.
4. 이번 학기에 읽을 책
해민: 이번 학기에는 어떤 책을 읽나요?
채운: 두번째 시즌에는 해러웨이와 라투르의 독특한 기술철학을 읽을 것인데요. 그 전에 기술을 왜 사유해야 하는지, 기술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구성할 수 있는 책들을 읽습니다.
『현대 기술, 미디어 철학의 갈래들』는 기술 철학 내지는 미디어 철학을 연구한 철학자들의 문제의식을 다루는 개론서입니다.
『기술을 의심한다』는 제목대로 기술을 의심하는 책이에요. 기술이 인간 존재를 사유화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스티글레르는 유명한 기술 철학자인데요. 『자동화 과정』이라는 더 두꺼운 책이 있는데, 그건 너무 어려워서 우선 대담으로 이루어진 책을 보려고 해요. 스티글레르는 어떻게 기술을 인간의 존재를 변화시키고 해방시킬 수 있을지의 관점에서 기술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문제를 제기해요.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페미니즘과 기술』에서는 기술과 과학적 배치에 젠더의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세탁기, 냉장고와 같은 가전 제품의 발명이 단순히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거죠. 가전 제품이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준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노동하게 하면서 이중적인 착취 구조를 만들어낼 수도 있거든요.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는 이번 학기 가장 추천하는 책인데요. 질베르 시몽동의 철학은 형상과 질료라는 구도를 넘어가요. 모든 사물이 어떻게 자기 나름대로 이 배치 속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를 갱신하고 변형시켜 나가는가를 물어요. 물레방아조차도 물이 떨어져서 도는 것이 아니라, 물과의 관게 속에서 자기 리듬을 만들어낸다고 말해요. 인간만이 의도를 가지고 행위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스스로의 변화와 생성을 거듭하는지를 보죠. 베르그손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고 들뢰즈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에요. 기술, 과학,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책입니다.
5.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해민: 이번 생-기 세미나에는 어떤분들이 오시면 좋을까요?
민호: 인문학 공부를 통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수준에서 한발짝 나아가고 싶은 분들, 인문학을 힐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싫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현실을 우리의 힘으로 돌파하고 싶으신 분들 이거 안 하시면 계속 뱅뱅 돕니다~ 인문학에서도 종교처럼 될 수 있어요. 우리 시대를 진단하고 살아갈 수 있는 언어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생-기 세미나 팀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끌렸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이전 인터뷰(QBS의 마이크 ON, "마이너 세계사 인터뷰")가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촬영: 문제현
질문: 허해민
편집: 허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