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다 읽었습니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들었던 조금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는데, 세미나를 하면서 그 실타래들이 조금 더 선명해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말끔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요
구체적인 이론들은 잘 몰라도 저희는 저자의 논지만큼은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탁월하고 명징한 방법은 물리학이다! 처음도 끝도 중간도 이 말이 메아리쳤죠. 공감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남네요. 알칼릴리는 왜 그 사실을 그렇게 반복해서 외쳐야 했을까? 이미 수십 년 이상을 몸담고 있었을 물리학 영역을 새삼스럽게 또 옹호해야 할 필요성은 무엇이었을까? 물리학의 정직함과 수정가능성이라는 미덕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그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이 의문을 붙들고 저희는 ‘과학’ 혹은 ‘과학적 태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저자의 입장이 확실했고 그 확고함이 의문을 남겼기에 더 할 얘기가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알칼릴리에 따르면 과학적 방법으로 알려진 앎은 다른 앎과 동등하게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과학지식이 오류 없는 진리이거나 신성한 정언이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정치나 일상에서 ‘과학’ 혹은 ‘과학적’이라는 표현은 그런 방식을 권위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남용되곤 합니다. 이것은 팩트이자 승인된 앎이니 더 우월하다는 식이죠. 하지만 실제로 과학이 돌아가는 방식은 그와 반대입니다. 과학 지식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즉 과학자들이 세상에 접근하는 수준에서는 대단한 겸허함이 엿보입니다. 과학적 방법에 따라 도출되는 앎은,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무지에의 자각’을 베이스에 두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컴컴한 우주 속에서 자신이 아는 바가 5%도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한, 그마저도 곧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철저한 자각을 갖고 작업합니다. 알칼릴리는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과학만의 엄격한 신중함을 다시 강조합니다. 어떤 확고한 이론도 단 한 번의 세심한 관찰이나 실험 결과만으로도 폐기되어 다른 세계관에 자리를 내 줄 수 있다는 점 말이죠.
“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확실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개방성에서 나온다.”(274쪽) 이 말은 저희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개방성’이 장착된 ‘확실성’. 이런 앎의 운동은 확실히 멋있는 것 같습니다. 알칼릴리가 강조하기로 물리학자들은 어떤 것도 지고불변한 사실로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한 이론은 더 나은 설명방법이 등장할 때까지만 유효하죠. 그러나 이것은 ‘우린 아무것도 확실히 알 수 없어’라는 식의 불가지론과는 무척 다릅니다. 그와는 다른 건강함이 있습니다. 불가지론은 ‘알 수 없음’을 말하면서 ‘확고부동하게 아는 어떤 상태’를 상정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앎은 필연적으로, 영원히 불완전하죠. 그러나 물리학은 그보다 밝은 실재론을 견지합니다. 우리의 의식이나 믿음, 주관적 경향, 인식의 한계로 좌우되지 않는 객관적 실재를 탐구하려 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바는 여전히 진리는 아니지만, 과학은 참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정립하는 신뢰할 만한 자신의 방법을 갖고 있죠. 1)현상을 설명하고 2)검증이 가능하고 3)반복이 가능하며 4)다른 현상에 새로운 예측을 내놓는다. 이 네 기준을 충족해야만 과학이론이 됩니다. 단순한 의견과는 다르죠. 이것을 디딤돌 삼아 과학이론은 다음 스텝으로 나아갑니다. 물론 베이스캠프일 뿐 언제든 이동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요. 과학은 바로 이 힘으로 독단론과 불가지론을 함께 빠져나갑니다.
“‘확신’이라는 단어도 과학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280쪽) 저희는 ‘확신’이란 말의 특별한 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과학자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믿고 싶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계를 통과함’이라는 의미죠. 모든 앎은 믿음에 의해 지지됩니다. 둘은 구분이 안 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만일 믿음에서도 서열을 나눌 수 있다면 과학자들의 믿음은 상당히 고급한 단계의 것일 것입니다. 거기에 자신의 개인적 기호나 집단적 성향이 개입할 일이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과학자 개인은 사람이기에 치우칠 수 있지만 과학은 공동적 작업이며 하나의 연구공동체로서 내부수정 절차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 모든 미덕, 정직과 합리적 의심, 수정가능성을 갖고, 편파성에 물들지 않는 깨끗한 과학이론, 앎의 진보와 같은 것들은 어디까지 유지될까? 사실 이것은 이론물리학처럼 수학으로 나타낼 수 있는 세계를 다룰 때에만 가능한 것 아닐까? 그것보다 한 발 더 우리의 현실과 엉켜있는 분야들인 응용물리학, 생물학 및 생명공학, 지구과학 및 기후학은 어떨까? 여기에는 우주산업, 군수산업, 에너지경쟁 뿐 아니라 의료권력과 정치이데올로기 등 온갖 자본과 권력이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과학적 방법’의 지고한 순수성을 말하는 것, 수식의 계산 오류를 점검하며 ‘정직’과 ‘의심’의 태도를 자부하고 권장하는 것은 어쩐지 조금 민망해 보일 정도입니다.
제게 든 가장 큰 의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알칼릴리가 강조하고 있는 과학적 방법의 우수성과 그렇게 도출된 이론의 가치는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우수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아닐까? 우리는 가설이 세워지거나 실험이 진행되는 단계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논문이라도 찾아 읽으면 좋겠지만 전문화된 용어와 지식체계는 장벽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알칼릴리가 강조하는 미덕을 그저 물리학자들에게 바라거나 믿는 방법 말고는 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때 우리가 가질 ‘믿음’은 별로 고급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직접 검증한 것은 아니니까요. 유튜브와 미디어에 범람하는 가짜뉴스와 음모론도 ‘과학’의 이름을 달고 다가옵니다. 우리의 알고리즘은 스스로 신빙성 있다고 주장하는 앎들로 넘쳐납니다. 누군가는 지구온난화가 인간활동과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근거도 부실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원자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백신의 무효성을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알칼릴리는 정보를 민주적으로 다루는 미디어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리고 강조하는 것은 과학자의 태도와 사명감입니다. 참된 과학자는 편파성을 떠나서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결과일지라도 그 주장을 지지한다는 말에 감명을 받긴 했지만, 제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저희 같은 대중들은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우리는 과학자들에게 정직과 의심을 넘어서 이러한 지식의 질을 가르는 작업까지 맡겨야 하는 걸까요? 그들에게 참되길 요구하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이 의문에 대해 호정샘의 대답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정보의 배경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적 사실을 100% 알더라도,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문제들에서 항상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지금 다가오는 것들을 가지고서 무언가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감당해야죠. 이게 더 중요한 부분이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만은 인지되어야 합니다. 이미 어떤 왜곡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단편적으로만 접하고 있음을요. 어차피 저희는 중생이기에 절대적 통찰은 쉽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윤리는 판단을 감당하고 다음 순간에 다가올 새로운 앎들에 적대적이지 않을 수 있는 열림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이론이 소개되지 않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뿌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주는 저희 세미나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읽으시면서 가장 궁금했던 개념들, 어렵긴 해도 더 알아보고 싶은 개념들을 가지고 또 만담을 펼쳐볼 건데요. 늘 궁금한 시공간이나 중력, 양자역학의 해석, 우주의 끝 등 단순하고 엉뚱한 것들도 좋으니 마음에 남겨둔 개념들을 마구 얘기하면 좋을 것 같네요. 각자 리서치를 해오시면 더 좋습니다.
금요일 저녁 7시 줌에서 만나요!
저 역시, ' 불확정성의 개방성'과 관련해,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총합해 윤리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라는 호정샘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했어요.
확실성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이겠죠. '어떻게 다 알겠어?' 하면서도 다 아는 듯이 행위하죠. 우리에게 변용밖에 없는데 말이죠.(이 순간만 또 이런말을 ㅋㅋ)
어려운 물리 이론들에 짓눌러 있었는데, 이 책에서 보석처럼 건진 한마디입니다.